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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콤 쌉싸름 사중주
유즈키 아사코 지음, 김난주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16년 5월
평점 :
품절
서른을 앞두고 있는 네 친구의 달콤쌉싸름한 하모니.
유즈키 아사코의 소설은 아이가 소녀가 되고, 갈대 같이 흔들리는 사춘기의 미묘한 여고생이 어느새 여자사람으로 변모한다. 소녀였던 아이의 모습을 따라가다 보면 나의 유년시절이 떠오르게 되고, 그와 맞물려 어렸을 때 읽었던 책들이 매개가 되어 그려진 작품이 그녀의 소설 <서점의 다이아나>다. 지금은 무서운 중 2병이라고 하지만 내가 사춘기를 겪을 무렵에는 여고생들이 가장 복잡미묘함을 가득 품은 여고생들을 가리키는 단어였다. 진한 블루의 색감과 네 편의 단편이 연작처럼 모아졌던 <종점의 그 아이>역시 여자아이의 성품과 심리를 너무나 잘 그려냈기에 다음 작품은 어떤 색채로 여자들의 모습을 그려냈을까 하는 궁금증이 많이 들었던 작가였다.
시기적으로 <서점의 다이아나> <종점의 그 아이>를 지나 작가는 <달콤 쌉싸름 사중주>에서 서른을 코앞에 두고 있는 사키코, 유카코, 마리코, 가오루코 이렇게 네 명의 단짝 친구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음식을 매개로 그려냈다. 현실의 팍팍함이 느껴지기도 하지만 그럴 때마다 그들이 먹었던 유년의 음식들이 등장하게 되고 세명의 친구들은 그 맛을 찾아 동분서주한다. 다행히도 그 시절의 맛을 제대로 느낄 수 있게 만들어준 네 친구의 상황들이 각각 옴니버스 식으로 이루어져 있기도 하고 때론 한 편의 소설처럼 맞물려 있다.
피아노 선생님인 사키코가 불꽃축제에 놀러갔다가 옆에 자리한 한 남자와 이야기를 하게 되고 그가 건네준 유부초밥을 받게 된다. 그 남자와 이야기를 하고 싶었지만 남자와 함께 온 일행이 쓰러지게 되고 아수라장이 된 그 곳에서 그 남자와 인연의 증표는 오직 고슬고슬한 밥이 촉촉하게 잘 뭉쳐진 유부초밥 하나였다. 연락처도 이름도 알아낼 기회를 얻지 못했다는 아쉬운 마음에 세 명의 친구에게 이야기를 하고 난 후 그 초밥을 조금씩 맛보는 친구들은 이내 그 초밥을 만든 사내를 찾아 행방을 수소문한다. 음식을 잘 만들어 블로거로서 유명해 요리책까지 내는 발군의 실력을 가진 유카코는 그 초밥의 맛을 상기시켜 만든 재료들을 하나씩 따라해보고, 가오루코는 단행본 에디터로 동료 에게 초밥이 유명한 맛집을 소개받는다. 그렇게 수소문해 그 남자가 하고있는 쌀집과 이름을 알아낸다.
사막에서 바늘 찾기처럼 어려운 일을 친구들이 손수 발 벋고 나서서 사키코의 일을 도와 주고 사키코는 그에 힘입어 그 달콤한 초밥남과 사귀게 된다. 유카코가 음식 블로거로서 표절 시비에 휘둘려 모든 희망을 잃고 있을 때 그녀의 좋은 추억이 담긴 과자 아마쇼쿠를 찾아 나서기도 하고, 백화점에서 화장품을 판매하는 마리코에게 남자친구 옷에서 풍기던 하이볼향 때문에 그가 바람이 피는 것을 의심해 세 친구들이 나서기도 한다. 편집자인 가오루코가 결혼과 일을 동시에 하는 커리우먼으로 지내지만 동시에 일을 완벽하게 해 내는 것이 쉽지 않고 이내 지쳐버리지만 우연히 그녀의 집에 배달된 고추기름으로 그녀의 삶에 작은 여백이 생겨 그녀를 더 활기차게 만든다. 그러다 설 명절 시어머니에게 대접할 설음식을 친구들이 도와주기로 했으나 각각의 사정으로 큰 어려움에 봉착하게 되는 이야기를 현실적으로 그려내기도 했고 때로는 동화처럼 우연과 친구들의 마음이 더해져 큰 어려움을 성큼 이겨낸다는 이야기다.
이전에도 유즈키 아사코의 책을 읽을 때마다 깊이 공감하고 느꼈던 주제여서 재밌게 그녀의 책을 읽었지만 30대를 앞두고 있는 네 명의 단짝들이 만들어낸 달콤하고 쌉사름한 이야기에 훨씬 더 많은 공감이 가던 주제였다. 같은 나이 때이기도 하고, 음식을 매개로 한 이야기가 달콤하면서도 쌉싸름한 그녀들의 현실이 깊이 눈에 들어왔다. 어느 때는 친구들이 모여 함께 화이팅을 외치며 도와 줄 수 있는 부분이 있지만 어느 시점에서는 혼자서 해결해야 하는 숙제들이 많이 늘어난다. 그럴 때마다 자신이 처한 상황에서 어른으로서 혹은 어른아이로서의 행동들 때문에 많이 자책하게 되는데 그럴 때 나를 포함한 네 명의 친구들이 함께 어우르며 삶을 살아간다는 것이 큰 위안이 되었다.
함께 울고 웃을 수 있는 네 명의 친구들을 통해 또 한 번 삼십이라는 나이가 이제는 아이가 아닌 어른으로서 생활해야 하는 나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지만 언제나 시간이 지나도 내 마음 속 나이는 성장 중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내내 책을 읽으면서 단 맛이 나는 유부초밥과 하이볼, 아마쇼쿠, 고추기름이 맛보고 싶었다. 요즘 쿡방이 대세라고 하던데 이제는 쿡책이 대세던가. 읽는 내내 슬며시 미소가 지어지는 책이었다. 서른이라는 나이를 먹다보면 으레 밝은 빛이 슬며시 꺼지듯 우울한 빛이 맴도는 책이 많았는데 유즈키 아사코의 이 소설은 이전 작품 보다 훨씬 더 은은하고 강렬한 빛을 머금고 있다. 그래서 더 눈길이 가고 손길이 가던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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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얘들아, 우리 쭉 이렇게 지낼 수 있을까."
물론이지, 하는 동의를 기대하면서 친구들을 돌아보는데 마리코는 손톰을 만지작거리면서 매정하게 대답했다. "무슨 바보 같은 소리야. 어떻게 같은 장소에 중곧 있을 수 있겠어. 사람은 변하는 동물인데. 인생은 부침의 연속이야." 그말에 창백해진 사키코의 얼굴을 보고, 그녀가 웃으면서 덧붙였다. "아이구, 이런 바보. 그런 표정 짓지 마. 사는 환경이 어떻게 변하든 이렇게 사이좋게 지내면, 그런면 되는 거잖아."
"·····그럴 수 있을까."
"암, 그럴 수 있지. 우리 넷 다 이렇게 설격도 취미도 다른데, 10년 이상이나 같이 잘 지내고 있는 걸 생각해 봐. 만나봐여 별 볼일 얘기만 떠들고 있지만, 오랜 시간을 들여서 차근차근 쌓아온 관계라고. 그야말로 '유즈앙의 고추기름처럼." - p.187
"사귀기 시작할 때 뭐랬는지 알아. 아무것도 해줄 수 없지만 맛있는 쌀은 평생 먹여주겠다고 그랬어. 그의 그런 강함에 끌렸어. 그와 함께라면 무슨 일이 있어도 살아갈 수 있겠다 싶었어. 나도 강해질 수 있을 것 같았고. 현실을 잘 인식하고 사는 현명한 사람이니까. 나 그사람 존경해." -p.26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