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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분 지나고까지 ㅣ 현암사 나쓰메 소세키 소설 전집 10
나쓰메 소세키 지음, 송태욱 옮김 / 현암사 / 2015년 8월
평점 :
문장이 가져다 준 설레임과 서늘함.
『춘분 지나고까지』라는 제목은 새해 첫날부터 시작해서 춘분지나고까지 쓸 예정이라 그냥 그렇게 붙인 것에 지나지 않는, 실로 허망한 것이다. - p.18
우리나라의 춘분은 24절기 중의 하나로 양력 3월 21일경 부터 청명 전까지의 15일간을 말한다.(지식백과 참고) 그러나 나쓰메 소세키의 책 <춘분 지나고까지>의 춘분이라고 번역한 히간은 24절기 중 하나로 춘분이나 추분을 중심으로 앞뒤 각각 3일을 합친 7일간을 말한다. 그러나 히간이라고 하면 주로 춘분을 말하고 이 기간에 일본에서는 히간카이라는 법회를 열고 신자를 절에 참례하고 설법을 듣고 성묘도 하는 풍습(p.18)을 이야기 하고 있다. 나쓰메 소세키 선생은 <춘분 지나고까지>라는 제목을 지을 때 기간을 정해두고 쓸 예정이었기에 그냥 아무런 의미를 두지 않았다고 하지만, 정작 이 책이 제목으로 나왔을 때 아무런 의미가 부끄러웠던지 작품을 읽기 전에 상세한 의미를 전하고 있다.
<목욕탕에 다녀온 후> <정거장> <보고> <비 오는 날> <시나가의 이야기> <마쓰모토의 이야기>에 이르기까지 각각의 단편은 하나의 옴니버스 이야기처럼 이어져 있다는 생각이 들만큼 유기적인 관계를 맺고 있다. 각 인물이 등장하는 형태는 물론 게이타로를 주축으로 모리모토, 스나가의 이야기가 마치 통속소설로 읽히기도 하고 때로는 탐정소설처럼 추리를 요할만큼 궁금증을 자아내기도 한다. 그러나 나쓰메 소세키 선생 특유의 느릿느릿한 발걸음과 먹고 살아가기 위한 밥벌이의 고달픔에 대한 비애를 누구보다 소세키 선생의 어법으로 조곤조곤 이야기를 내뱉는다. 농담어린 그 말투와 이야기가 자칫 잔잔한 미소를 띄울만큼 웃기기도 하지만 한편 그 속에 스며든 물기는 소세키 선생이 얼마나 고민하고 생각하는지를 다시 한 번 되새기게 하는 부분이다.
"예, 당신은 씻는게 아니라 말 그대로 탕에 담그기만 하니까 특히 그렇겠지요. 실용을 위한 목욕이 아니라 쾌감을 탐하기 위한 목욕이니까요." - p.24
"뭐, 간단히 말하자면 이 세상을 원숭이나 마찬가지로 살아온 거지. 이렇게 말하면 우습지만, 분명히 자네보다 열 배나 많은 경험을 쌓아 왔다고 생각하네. 그런데도 아직 이 모양으로 해탈하지 못한 것은 전적으로 무학, 다시 말해 학문이 없기 때문이지. 하기야 교육을 받았다면 이렇게 무턱대고 변화무쌍하게 살아올 수 없었을지도 모르지만 말이야. " - p.37
게이타로는 지금껏 무엇 하나 자신의 힘으로 뚫고 나왔다는 자각이 없었다. 공부든 운동이든 그 밖에 무슨 일이든 본격적으로 시작해서 끝까지 해낸 적이 없다. 태어나서 딱 한 번 갈 데까지 가본 것은 대학을 졸업한 것 정도다. 그조차 애써 하지 않고 그저 똬리를 틀고 있다가 대학에서 끌어내준 것 이어서 도중에 꼼짝할 수 없게 된 답답함이 아닌 가까스로 우물을 파냈을 때의 시원한 마음도 몰랐다. - p.88~89
나쓰메 소세키의 문장을 마주하다보면 게이타로가 느끼는 것처럼 자신을 우물안의 개구리로 느끼고 불안정한 상황을 이겨내지 못하고 그 상황의 무게를 짊어지고 사는 사람으로 그려진다. 조그만 힘만 가해도 뚫어질 종이 벽을 못내 뚫지 못하고 그 자리 내에서 계속해서 맴도는 무게감과 고독감 그리고 그 속에서 살며시 스며드는 햇살에 희망을 느끼는 사람으로 그려진다. 그래서 그들의 인물은 쾌활하지 못하고 엉뚱하지만 자유롭지 못하고 어딘가에 매어 있는 새 같다.
게이타로는 비로소 자신이 위험한 탐정소설 속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주인공이 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동시에 다구치가 자신의 사회적 이해관계를 지키기 위해 굳이 남의 눈에 띄지 않게 이런 짓을 해서 훗날 이용할 남의 약점을 쥐고 있으려는 게아닐까 하는 의심이 들었다. 그렇게 생각하자 그는 남의 개로 부려지는 불명예와 부도덕함을 느끼고 겨드랑이에서는 괴로운 진땀을 흘렸다. - p.109
소세키의 책 만큼이나 좋았던 것은 책 속에 수록된 정혜윤 CBS 라디오 프로듀서의 해설이다. "당신의 눈이 빛을 찾고 있다면 어둠을 포용해야 한다"는 문장이 다. 스나가와 지요코의 사랑은 서로 마주보기의 사랑이 아니다. 서로에게 마음을 두고 있지만 서로가 원하는 것이 다르고 그들이 그리는 이상향이 서로 다른 세계를 바라보고 있다. 서로 사랑하고 있음에도 인간은 삶에 있어서 너무나 많은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만약 스나가가 지요코와의 결혼을 결심했다 할지라도 훗날 그들의 사랑이 오롯하게 해피엔딩을 맞이할 커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서로의 자아와 자유로운 삶을 추구함에도 늘 누군가와 함께 인연을 맺고 함께 살아갈 것을 갈구하는 것 또한 인간의 본성이 아닌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