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트] 아이사와 리쿠 상.하 세트 - 전2권
호시 요리코 지음, 박정임 옮김 / 이봄 / 2015년 10월
평점 :
품절


진짜 감정을 오롯하게 알아가는 시간.


 열네 살 소녀의 이야기를 다룬 <아이사와 리쿠>는 이전에 봤던 만화들과 많이 달랐다. 샤샤삭 가볍게 스케치를 한 듯 연필의 질감이 많이 묻어나 있고 무엇보다 아이사와 리쿠라는 열네 살 소녀는 내가 지금까지 봐왔던 여타의 소녀들과 달리 자기의 감정이 전혀 없다. 수도꼭지를 틀 듯 눈에서 눈물이 쏟아지는 아이의 감정은 그저 반 아이들에게 보여주는 거짓된 행동일 뿐이다. 직장에서 잘 나가는 세련된 아빠와 뭐든지 흠집 없이 모든 것을 완벽하게 해내는 엄마가 있지만 가족간의 관계는 리쿠의 감정처럼 이질감이 느껴진다. 서로의 행동이 상대방을 위한 눈속임일 뿐 그 무엇도 세 사람을 연결해 주는 끈이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더 이질적이고 왜 리쿠가 자신의 감정을 오롯하게 느끼지 못하고 남들에게 보이기 위한 행동을 하며 남들 눈에 띄는지 조금이나마 알 수 있는 장면들이 계속 반복되고 있다. 


 

마치 수도꼭지를 살짝 틀 듯

눈물을 흘릴 수 있다.


정말로 아무 일도 없었고 아무렇지도 않았다.


마음속은 고요하고 차가우누데 눈물을 왜 이토록 따듯할까.

이상했다.


같은 반 친구들은 그녀를 특별한 존재로 생각했다.

그리고 그녀도 자신을 특별한 존재라고 생각했다.


슬픔이 무엇인지

전혀 이해하지 못한다.

하지만 그녀는 슬픈 듯한 상황에서는 누구보다 뜨거운 눈물을

고이게 할 수 있었다.  p.3~6

 

 

리쿠의 시선을 따라 들어가다 보면 왜 리쿠가 누군가에게 마음을 털어 놓지 못하고, 누군가와 교감을 나누지 못하는지 알게 된다. 강박관념이 있는 엄마의 시선과 가르침 때문에 리쿠는 스스로 다른 사람과 벽을 두는 것은 물론 타인이 쓰던 물건이나 동물들까지도 거리를 둔다. 마치 누군가가 만진 그 곳에 그녀의 손이 닿는다면 세균에 감염이 되어 자신에게 큰 치명상을 입힐 것 같은 마음이 계속 해서 리쿠의 머릿속에 내재되어 있다.


밖에서 보는 아빠의 모습은 집안에서와 달리 엄마가 아닌 회사 동료를 애인으로 두고 있다는 것을 알고 리쿠는 엄마를 대신하여 눈물을 흘리거나 새를 새장에서 꺼내 움켜쥐게 만든다. 그것이 내 감정이 아닌 엄마라면 아마도 이렇게 할 것이라 생각하며 행동하고 있다. 스스로 한 행동을 엄마나 아빠에게 말하지 못하고 그저 충동적으로 한 행동으로 오해를 받는 리쿠는 간사이에 있는 고모 할머니 댁으로 내려가게 된다. 자신이 있던 곳과 달리 집안 모두 시끌벅적한 것은 물론이고 간사이 특유의 사투리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는다. 처음에는 그들이 다가가는 자리 만큼 물러섰던 리쿠는 서서히 그들이 내민 손을 따라 조금씩 발걸음을 좁혀간다.


사촌동생인 도키 짱이 단호박 같았던 리쿠의 마음을 서서히 두드렸고, 흔들리지 않을 것 같은 리쿠가 도키 짱의 마음을 알아가면서 거짓된 감정이 아닌 진짜 슬픔이 무엇인지 알아가는 과정을 만화로 담았다. 무엇보다 메마른 감정의 아이사와 리쿠의 이야기가 처음에는 굉장히 이질적으로 느껴졌으나 이내 그녀의 감정을 담은 문장과 그림이 마음을 뭉클하게 만든다. 진짜 감정이 무엇이고, 진짜 슬플 때 눈물을 흘려야 하는 것을 열네 살인 리쿠가 도끼 짱을 통해 알아가는 과정들이 애잔하게 다가온다.


열네 살 소녀인 리쿠가 우리나라 나이로 생각한다면 중학생에 지나지 않을텐데 너무나 빨리 어른의 세계를 파고 들고 있고, 감정의 깊이를 느끼지 못한 무감각한 세계에서 살고 있는 소녀라는 점이 안타까웠다. 리쿠의 엄마 또한 강박적으로 간사이 지방을 멀리하고 떠나왔음에도 간사이 지방 출신인 남편을 만나 결혼했다. 그럼에도 그녀의 남편은 간사이 지방 특유의 사투리를 쓰지 않는 점을 강조했고, 꿋꿋하게 살고 있지만 두 사람 사이에서 보여지는 감정은 무관심이다. 서로의 마음을 보듬어 주지 않고, 리쿠의 아빠 또한 애인과의 사이에서 아내 사이에서 중심을 잡고 있지만 애인과의 관계 또한 돈독해 보이지는 않는다.


다행인 것은 리쿠가 리쿠의 엄마처럼 살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사람과의 사이의 벽을 조금씩 허물어가는 과정 속에서 자신이 살고 있는 세계가 얼마나 비현실적이고 감정의 과잉이 없는 무감각한 세계에서 살고 있는지를 스스로 깨닫게 되었다는 점에서 그녀의 마지막 눈물이 뭉클하게 다가온다. 비로소 진정한 눈물을 흘린 열네 살 리쿠의 뜨거운 눈물을 볼 수 있어서 정말,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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