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오신화 펭귄클래식 14
김시습 지음, 김경미 옮김 / 펭귄클래식코리아 / 200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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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렸을 때 동네 도서관에 앉아 읽었던 만화 중에서 기억에 남는건 단연 <금오신화><인현왕후전>이었다. 우리의 고전을 쉽고 재밌게 그려놓아 '학습'보다는 '재미'있어서 본 책이었다. 책 뿐만 아니라 고전동화나 만화도 '옛날 옛적에'를 비롯해 설화나 민담, 책을 각색해 만든 만화를 보며 자랐고, 그것이 친숙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고, 흘러 요즘에는 김시습의 <금오신화>를 접하려니 다른나라 언어를 읽는 것 마냥 어색하고 고개를 갸우뚱할만큼 책의 내용에 집중하지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금오신화>를 읽을 즈음 K본부에서 하는 <공주의 남자>와 1박 2일에서 나온 경주 남산편을 보면서 그의 자취를 뒤돌아 볼 수 있었다.

춘추전국시대 같은 혼란기나 태평성대했던 안정기의 흐름은 어느나라나 다 있지만 그 시대, 그때의 사람들은 저마다 빛과 어둠을 안고 살았다. 태조가 조선을 세우고 태종 이방원이 왕권을 강화하고, 3남인 세종이 왕위를 이어 받으면서 '평탄한' 나날이 지속 된 줄 알았다. 그러나 병약한 문종이 어린 아들 단종에게 보위를 물려줄 때는 다시 피바람을 예고했다. 아버지 세종이 수양대군의 야심을 알아보고 그에게 대군으로서 자리를 이어가기 바랐던 바램과 달리 그는 어린 조카의 왕위를 찬탈했다.

그의 왕위 찬탈은 많은 사람의 목숨을 앗아가고 지금말로 하자면 모든 지식인이 일어났다. 그때 우리가 잘 알던 사육신과 생육신이 탄생했고 김시습은 생육신 중 한사람이다. 태어난지 여덟 달만에 글을 깨우치고, 세 살때 시를 지었던 아이는 어릴적부터 신동이라 불렀고 세종대왕이 극찬했다. 세조가 조카의 왕위찬탈을 하지 않았더라면, 아니 문종이 일찍 아이를 낳아 단종이 장성했더라면 도덕적으로 위배되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만약이라는 가정아래 현실에서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다면 김시습은 연애소설을 빙자한 그의 속내를 가미한 <금오신화>의 탄생은 없었을 것이다. 군신으로서 임금을 모시고 신하로서의 도리를 다하며 학문을 정진할 수 있었겠지만 현실에서는 조선시대의 상황에 맞지 않는 막장드라마가 쓰여진다.

만복사저포기_ 저포 놀이가 맺어준 사랑, 이생규장전_ 이생이 엿본 사랑, 취유부벽전기_부벽정에서의 짧은 만남, 남염부주지_염마왕과의 대화,  용궁부연록_ 물거품처럼 사라진 용궁 잔치에 대한 짧은 단편이 수록되어 있다. 시대가 암흑기 일수록 우리는 현실을 빛대어 쓸 수 없는 사회현실 때문에 곧 잘 현실에 없는 가상현실이나 신화를 차용하곤 한다. 김시습 또한 자신의 있는 그대로의 이야기를 쓸 수 없는 시대, 즉 세조의 간악함과 당대 지식인들이 하나둘씩 쓰러져 갈 때마다 느끼는 아픔을 담을 수 없기에 그는 닿을 수 없는 현실과 이승에서의 사랑을 그린 것을 아니었을까. 

그는 분명 그 시대를 타도하지 못하는 지식인의 아픔과 모든 속세의 인연을 끊어버리고 장님이 되고, 귀머거리가 되어 사는 삶을 택했는지도 모르겠다. 사람의 얼굴이 다르듯 시대의 흐름에 따라 각기 다른 행보를 보인다. 목숨을 내놓고 치열하게 싸운 사람들, 자신의 이익을 위해 새로운 물결을 받아들인 사람들, 속세의 인연을 놓은 이들. 나라면 그 시대 어떻게 행동을 했을까? 갈팡질팡하며 시대를 가늠하지 못해 골몰했을 것이고, 흉흉한 민심과 근거없는 소문들 사이에서 두려움에 떨었을지도 모른다. 

그의 글을 읽을 때만해도 사내대장부라면, 교묘하게 속내를 감추는 것이 아니라 당당히 목소리를 내어 '행동가'로의 면모를 드러내야하지 않는가에 대한 불평불만이 있었다. 살아있으면서도 벼슬을 받지 않고 물렸던 사람 중 한 사람이었던 그는 이후 벼슬을 하려 했으나 폐비 윤씨 사건이 일어나자 다시 유람길에 올랐다. 시대가 지나도 도덕적인 평탄함이 오지 못했고 유망했던 한 사람을 결국 관리가 되지 못하고 자연의 일부로 되돌아간다.

무엇이 그를 쓰게 만들었으며, 그는 왜 우리나라 최초의 소설인 <금오신화>남겼는가?에 대한 물음은 그의 글을 통해 알 수 있다. 다섯 편의 상황은 2%에 가깝게 뭔가 아쉬운 상황이 연출된다. 전쟁에 목숨을 잃거나, 지조를 지키려다 목숨을 잃어 이승에 떠돌던 귀의 모습으로 나타나 주인공을 사랑하는 여인들의 모습은 손에 잡힐 듯 하면서 잡히지 않고 이내 사라진다. 김시습의 현재 상황과도 맞닿아 있으며 아련하고 안타까운 마음이 투영된다. 슬픈 현실에 환상을 품었지만 결국 현실의 모습에 좌초되는 모습은 그가 겪는, 혹은 그 시대의 사람들이 겪는 삶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마음을 담아 쓴 시들은 그들의 마음을 담아 짧고 명확히 썼지만 읽는 내내 흐름이 끊기고 마음에 와 닿지 않았다. 시간이 많이 흐르고 흘러 영겁의 시간은 사람도, 시간도 그 시대가 갖고 있는 글자의 뜻마저도 변한 것인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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