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녀들, 자살하다 민음사 모던 클래식 48
제프리 유제니디스 지음, 이화연 옮김 / 민음사 / 2011년 6월
평점 :
절판


 늦은밤 아픈 허리를 부여안고 제프리 유제니디스의 글을 읽고 서평을 썼다. 어제는 왠일인지 막힘없이 글을 썼고, 완성된 글에 확인버튼을 과감없이 눌렀다. 다썼다고 두손을 번쩍 올리며 기지개를 펴고 있을즈음 한큐에 썼던 나의 글은 블로그 점검 시간에 걸려 바람처럼 사라져 버렸다. 혹시나 싶어 아침일찍 일어나 확인해 보니 흔적조차도 남지 않았다. 다시 기억을 되짚어 그녀들이 있는 곳으로 달려간다.

죽음의 무게는 상당하다. 누군가의 죽음을 보는 것 또한 영원히 잊을 수 없는 기억이며, 내가 죽는 것 또한 용기가 필요한 법이다. 제프리 유제니디스의 <처녀들, 자살하다>는 300페이지도 안되는 얇은 책이지만 쉬이 페이지가 넘어가지 않는다. 처녀들 즉, 리즈번 다섯 자매를 의미한다. 그녀들의 이야기는 서실리아의 자살미수 사건으로부터 시작된다. 열 세살 아이가 스토아 철학자처럼 욕조에서 자살을 시도하다가 미수에 그쳤지만 그후 그녀는 자신의 의지대로 스스로 목숨을 내던졌다.  

리즈번 자매들은 열세 살 서실리아에서 부터 열네 살 럭스, 열다섯 살 보니, 열여섯 살 메리, 열일곱 살 터리즈까지 다섯자매가 목숨을 스스로 목숨을 끊어버린 이야기다. 죽음을 소재로 한 이야기를 마주대할 때면 오싹하거나, 검은 그림자가 드리운 음울하고 침울함이 감돌겠구나 하는 예상과 달리 그녀의 책은 그녀들의 자살 소동이 벌어지기 이전에도, 이후에도 일상의 그것처럼 자연스레 흘러간다.

그 집은 지나친 여성스러움 때문에 머리가 어지럽기는커녕 말끔하고 무미건조했으며 묵은 팝콘 냄새가 희미하게 났다. - p.33

우리 동네에서는 지금껏 장례식이 한 번도 없었다. 적어도 우리가 태어난 뒤로는 그랬다. - p.43

"도덕적 죄의 관점에서 자살이란 의도의 문제야. 그애들이 마음 속에 어떤 생각을 품고 있었는지, 그 애들이 정말로 하려고 했던 게 뭔지 알기란 매우 어려운 일이란다." - p.47

리즈번 자매들은 우리의 쌍둥이였고, 똑같은 가죽을 가진 동물처럼 우리와 같은 공간에 존재했다. 우리는 그들에 대해 아무것도 몰랐지만, 그 애들은 우리에 대한 모든 것을 알고 있었다. 마침내 우리는 리즈번 자매들이 실은 소녀의 탈을 쓴 여인들이라는 것, 그들이 사랑도, 심지어 죽음까지도 이해한다는 것, 그리고 우리가 할 일은 그저 그들의 마음을 사로잡을 만한 소음을 만들어 내는 것 뿐이란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 p.53

우리가 그들을 간헐적으로 엿보는 사이사이에도, 그들은 계속 살아가고 있었고 우리가 상상할 수 없는 방향으로 성장했으며 철저한 검열을 거친 가족 서가에 있는 책이란 책은 모조리 다 섭렵했던 것이다. - p.146

이 책을 처음 읽을 때만 해도 서실리아가 왜 죽었을까? 에 대한 이유에 대해 고심했다. 그녀는 왜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고 했을까 하는 이유를 찾기 위해 읽었다면 그녀의 죽음 이후 럭스가 몸을 내던졌을 땐 Viegin(처녀)를 스스로 내던졌다는 이중적인 의미로 들렸다. 제프리 유제니디스의 글은 오묘하다. 하나의 퍼즐을 맞췄다 싶으면 이야기는 어느새 꽈리를 틀어버린다. 죽음을 맞닥들이면 우리는 제일먼저 떠난 이를 애도한다. 그러나 저자는 서실리아의 죽음을 통해 마을에서 벌어지는 소식을 뉴스처럼 전한다. 서실리아가 목숨을 던지기 이전에는 죽음을 가까이 볼 수 없었으며 그렇기 때문에 사람들이 장례절차에 대해 관심조차 없었다고. 그러나 그 일이 닥친 이후로 장례절차를 치루는 사람들의 파업소식은 개인에게 영향력을 미쳤다.

그녀들의 성장통은 마치 불꽃놀이를 하듯 폭죽이 하늘위로 솟구치는 것처럼 그녀들이 몸을 던져 그녀들의 부모님, 아니 마을 전체에 파문을 던져준다. 리즈번가 다섯 자매들이 살던 집은 묘하게도 동물원의 원숭이처럼 보이지 않는(보이는) 눈이 둥실둥실 떠다닌다. 남자아이들의 익살맞는 눈빛, 호기심 그리고 금단의 구역에 발을 들이고픈 욕망이 숨쉰다. 아이들의 부모는 그 일이 있는 후부터 자매들에게 잠깐의 통제와 검열만 있을 뿐 언제나 같은 흐름의 하루를 보낸다. 그러나 그녀들이 어렸을 때와 달리 시기가 지나면 부모라 할지라도 아이들의 행동을 막을 수 없다는 것을 그들은 잘 알고 있다.

통제와 검열의 숨막히는 거미줄이 다섯자매의 목에 칼처럼 스며들어왔고, 리즈번가의 다섯 자매들은 죽음을 통해 성장통을 이겨냈다. 이겨냈다는 말보다는 '해방' 했다는 말이 더 알맞을 것이다. 그녀들의 죽음은 마을의 쇠퇴의 길목에 접어든 암시였다는 부정적인 의미가 깃들었지만 그녀들이 준 파문은 인간의 삶이 빛이 있다면 어두운 그림자 즉, 죽음이 있다는 것을 사람들에게 인식 시켰다는 것이다. 장례절차가 필요없을 정도로 죽음을 목도하지 못했던 사람들이 리즈번가의 여인들이 스스로 목숨을 내던지를 것을 보며 결코, 그들에게 죽음이란 아무상관도 없는 '일'이 아닌 것이라는 의미도 지니도 있다.

<처녀들, 자살하다>는 이중주의 의미가 아닌 여러색채의 의미가 가미되어 있다. 퍼즐처럼 조각을 맞추다가 다시 새로운 그림이 그려지는 것처럼 제프리 유제니디스는 죽음이라는 것이 애도가 아닌 인간을 인간처럼 볼 수 있는 거울로 사용하고 있었다. 해가 뜨고 지는 것처럼 인간의 삶이 있다면 죽음도 있다는 것을 처녀들, 자살하다를 통해 작가는 투영시키고 있다. 책을 읽으면서 문득 유디트 헤르만의 <알리스>가 생각났다. 죽음이라는 주제를 가지고도 다양한 색채를 내는 모습이 함께 비교하며 읽는 것도 좋을듯 하다. 다른듯 하면서도 인간에게 맞닿은 '죽음'이라는 존재에 대해 애도외에 던져줄 수 있는 화두에 대해 두 작가는 각기 다른 방식으로 이야기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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