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피아노 교사
재니스 Y. K. 리 지음, 김안나 옮김 / 문학동네 / 2009년 10월
평점 :
영국인 식민지 홍콩을 배경으로 한 <피아노 교사>는 1940년대 후반과 50대의 무대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세 남녀의 사랑이야기를 담고 있다. 전쟁이라는 큰 폭풍 속에서도 그들의 세계는 균열의 틈 조차 보이지 않는다. 책 속에서 보여지는 다양한 계층들의 일상과 상류계층 들의 모습은 자연스럽게 보이기 보다는 이질적으로 비춰진다. 작가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그들의 일상은 늘, 풍족함에도 불구하고 무언가 결핍되어 살아간다.
그 속에서 일어난 하나의 큰 폭풍은 그간의 정의된 모든 것을 파괴하고 균열시키고 그들은 변해갔다. 클래어, 트루디, 윌의 관계처럼. 그들의 관계속에서 이야기를 읽다보니 밖에서 전쟁이 터지는지, 사람이 죽어나가는지 주인공들의 주고 받는 말 속에서 심각성을 알게 되었고, 그들의 운신의 폭도 작아졌다. 수용소 안에서 윌이 웅크리고 있을 때, 트루디는 전쟁을 온 몸으로 체감한다. 보일 듯 보여지지 않는 글을 통해 미궁속으로 빠졌다가, 때로는 사막의 모래바람처럼 매마르게 다가오다 보니글을 읽고 난 후에야 그 느낌이 다시 맴돌곤 했다.
그녀는 과연 무슨 일을 했던 것일까? 왜, 윌은 그녀를 믿지 못한 것일까? 나중에야 후회를 할꺼면서. 점점 물음표 가득한 물음만이 이 책을 읽고 난 후의 감상이었다. 어떤 식으로 전쟁이 터지면 정의 된 모든 것은 균열이 간다. 함께 이야기를 나누고, 웃었던 방금 전까지만 해도 나에게 무게를 두었던 사람들은 전쟁을 통해 한순간에 없어져 버린다. 그리고 살아남은 사람에게도 그 여운은 전해진다.
이 소설을 보면서 나는 영화 <나비효과>가 생각났다. 누군가의 존재 때문에 영향을 받고, 그 영향을 통해 내 인생이 뒤바뀌는. 윌과 트루디도 그런 사랑이었고, 인연이었다는 말 밖에. 사막처럼 매마르다고 느꼈던 문체는 파스칼 메르시어의 작품 <레아>를 느꼈던 적이 있었는데 이 작품은 그와는 조금 다르지만, 감정이나 사람들의 묘사 또한 절제되어 있다. 그래서 슬픈 장면임에도 불구하고 담담하게 다가오는 면이 있지만 문장, 하나하나를 읽다보면 가슴이 먹먹해져 온다.
순식간에 덥쳐오는 파도처럼 누군가의 빈자리가 여실히 느껴졌던 <피아노 교사>는 클래어와 윌의 이야기를 통해 한 여자가 그 시절, 그들과 함께 존재했음을 알 수 있었다.
"나는 한 번도 문을 잠그지 않았어, 당신 때문에." 윌이 그녀에게 말한다. "혹시 당신이 살아 있을 가능성이 티끌만큼이라도 있다면.......그보다 더 이상한 일들도 일어났으니까. 당신이 나에게 돌아올 수 있게 되어 우리 집으로 찾아왔을 때 내가 집에 없다면, 그래서 당신이 떠난다면, 나는 기회를 놓치게 되리라는 생각 때문에 도저히 문을 잠글 수가 없었어. 그래서 이사도 못했어. 사람들은 왜 내가 과거에 집착하며 그 집에 계속 사는지 의아하게 생각했지." - p.452~25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