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하의 여행자 하이델베르크 김영하 여행자 1
김영하 지음 / 아트북스 / 2007년 6월
평점 :
절판


 그의 책을 살 때 한가지 계획이 있었다. 언젠가 여행을 하게 된다면 이 책을 소지품과 함께 넣어가야겠다고. 차창밖의 풍경들을 지나치며 음미하며 읽어보리라 생각을 하며 샀던 책이었다. 그러나 어디 계획대로 착착 맞아 떨어지던가. 올해는 더욱더 여행갈 기회도 별로 없었고, 또 차만 타면 쓰러져 자는 나에게는 무리데스요~!하는 외침이 들려왔다. 정확히 말하자면 책을 읽다가도 차창밖의 풍경에 시선을 빼앗겨 늘, 책을 읽다가도 풍경을 쳐다보게 된다. 그러다 슬슬 눈이 감기지만.하하

김영하의 <여행자>는 마치 한 도시에서 만난 남자와 여자의 모습이 비춰진 흑백영화와 같다. 흑백 영화를 책으로 보며, 사진으로 두 남녀의 모습을 투영한 모습을 상상하며 읽을 수 있는 책이다. 한 남자의 모습은 그의 모습 같기도 하고, 마치 그가 여행을 하며 만들어낸 인물 같기도 하다. 그가 만들어낸 이야기를 따라 다가보면 나도 모르게 하이델베르크라는 도시에 서서 길을 따라 걷고 있었다.

여행책을 많이 읽어봤지만 또 다른 느낌으로 다가온다. 그의 작품 중 최근에 출간된 <네가 잃어버린 것을 기억하라><랜덤하우스, 2009)의 여행 에세이와는 또다른 그의 책은 단편선 하나와 하이델베르크의 사진과 그의 추억담과 카메라의 이야기가 결합된! 독특한 형식을 갖고 있다. 오직 하이델베르크에 대해 알고 싶은 여행자라면 다른 책을 읽는 것이 더 유용할 것이다. 이 책은 여행정보는 하나도 없으며, 한 도시에서 벌어지는 실제와 허구 사이에서 벌어지는 또 다른 이야기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남자의 이야기를 따라 카메라가 시선을 맞추고 따라가는 그 모습은, 낯설지만 혹은 익숙한 모습으로 다가온다.

단편으로 이야기를 끝내는가 싶더니 그는 마치 보너스 트랙처럼 카메라에 대한 추억담을 짤게 늘어 놓는다. 오래전 그의 아버지가 산 추억의 카메라부터 지금 그가 쓰는 카메라의 이야기까지. 그의 이야기를 읽고 있자니 이렇게 카메라의 종류가 많았던가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여행할 때 뒤에 메고 있는 가방만큼이나 지금 이 순간을 담아야 하는 카메라의 중요성을 깨달은 나는 그의 추억담에 다시 빠져든다.  

평소, 책을 조용히 읽지만 이 책만큼은 처음부터 끝까지 소리내어 읽었다. 나래이션을 하듯, 영화속의 주인공이 되어 책을 읽다보니 어느새 엔딩 크레딧이 올라갈 시간이 되어 버렸다. 여행할 기회가 있다면 도시의 발걸음을 따라 감상을 끄적이기 보다는 <여행자> 처럼 짧은 이야기든, 긴 이야기든 이야기를 통해 그 도시를 표현하고 싶어졌다. 그처럼.

그의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좀저럼 접하지 않는 형식과 생각들이 좋다. 가벼움과 무거움 사이에서 순간의 줄을 놓지 않고 팽팽히 당길 수 있는 그의 글은 놓칠 수 없는 즐거움이자 알아가는 기쁨이다.


무엇을 하든 시간은 흘러 갑니다. - p.10

내가 도시를 사랑하는 만큼 도시도 나를 사랑하기를, 너그럽게 이 철없는 여행자를 품어주기를 기원한다. - p.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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