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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원의 도시들
코맥 매카시 지음, 김시현 옮김 / 민음사 / 2009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늦은밤, 코맥 매카시의 <평원의 도시들>을 읽고 있었다. 거실에는 티비의 목소리가 간간히 들렸지만 아랑곳하지 않고 책장을 넘겼다. 한참을 책에 빠져 있다보니 티비에서 추석특집으로 영화를 하는지 더빙된 목소리가 흘러 나온다. 귀를 쫑긋 기울여 영화를 듣다보니 한 멕시코에 사는 아홉살 난 소년이 미국 LA에 간 엄마와의 전화 통화였다. 4년전에 엄마는 불법으로 미국에 체류중이며 가정부로 일하고 있고, 소년은 멕시코에서 할머니와 산다. 어느 날, 아침 할머니는 주무시다 돌아가시고 소년은 엄마가 있는 LA로 가려고 국경을 넘기로 한다. 소년은 국경을 넘을 수 있을까? 미국에 있는 엄마를 잘 찾을 수 있을까?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보게 된 영화가 바로 <언더 더 세임 문>이다.
국경을 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는 코맥 매카시의 <국경을 넘어>를 통해 알게 되었다. 아마도 그의 작품을 읽지 않았더라면 어젯밤 <언너 더 세임 문>을 끝까지 보지 않았을 것이다. 소년이 엄마를 찾아가는 우리식으로 이야기하면 이야기 전체의 줄거리는 '엄마 찾아 삼만리'이지만 그 보다 더 유심히 본 것은 멕시코인들이 미국으로 가기 위해 얼마나 힘겨운 사투를 벌이는 가 였다. 불법 체류자의 신분으로 살아가는 그들은 열심히 일해도 그에 상응하는 임금을 받지 못하고, 언제 잡혀 갈지 모르는 불안감을 갖고 생활하는 모습들이 보여진다. 잡히면 그 즉시 멕시코로 추방당하는 그들의 모습이 그 어느 때보다 더 실감나게 다가왔다.
영화는 국경을 넘는 것이 초점은 아니지만 수 많은 멕시코인들이 국경을 넘다가 추방당하는 모습들이 이어진다. 우여곡절 끝에 소년은 엄마를 만나는 것으로 끝이난다. <국경을 넘어>에 이어 <평원의 도시들> 또한 묵직하다. 영화는 소년과 엄마를 비추고 있지만 끝까지 소년은 도와준 아저씨의 희생으로 엄마를 만난다. 그가 쓴 국경 시리즈는 <평원의 도시들>로 끝이 난다. <모두 다 예쁜 말들>의 존 그래디와 <국경을 넘어>의 빌리가 함께한다. 국경 시리즈를 읽는 독자라면 그들의 만남이 새삼 반가울지도 모르겠다. 전편과 다르게 <평원의 도시들>은 존과 막달레나의 사랑을 주제로 담았지만 그 조차도 쉽게 허락하지 않는다. 존과 빌리의 운명은 과연 어떻게 될까.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 무심함, 희망조차 가슴에 심을 수 없는 것일까.
국경 3부작에서 <국경을 넘어>와 <평원의 도시들>을 만났다. 코맥 매카시의 글은 가볍지 않아 좋았고, 묵직해서 그 여운이 오래갔다. 대화를 하는 건지, 생각을 하는 건지 알 수는 없지만 마치, 바위와 대화를 하는 것처럼 친절하지 않는 옆에서 지시를 하는 것처럼 들려오지만 그들의 목소리가 좋았다. 사막의 메마른 바람이 불어오듯 갈라진 틈 사이로 한 방울 적셔줄 물줄기를 만나진 못했지만 이상하게도 손길이 자꾸 간다. 이 작품을 필두로 계속해서 그의 작품들을 읽어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