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정
커리드웬 도비 지음, 엄일녀 옮김 / 문학동네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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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커리드웬 도비의 <함정>은 불친절하다. 얽힌 실타래 속에서 누군가의 중재도 아닌 자신의 말만을 내뱉고는 바턴을 이어받는 이어달리기의 주자처럼 누군가에게 마이크를 건네곤 사라져 버린다. 막과 막 사이를 오가는 것처럼 컷트되는 이야기들이 흥미로우면서도 이야기가 흘러갈수록 점점 더 깊은 수렁으로 몰아넣는다.

<함정>은 독재정권이 쿠테타로 전복되고 독재정권에 전속 화가, 요리사, 이발사가 포로로 잡혀 버린 상황과 그들의 이야기가 영사기가 돌아가듯 짤막하게 그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총 3부로 나뉘어져 1부에서는 화가-요리사-이발사의 순서대로 그들의 이야기가 오간다. 2부는 3명의 포로가 아닌 그들의 가족, 그들과 묶어져 있는 사람들인 이발사의 형의 약혼녀 -요리사의 딸 -화가의 아내가 화자가 되어 말을 이어간다. 그리고 마지막장 3부는 이발사-화가-요리사의 이야기들이 끝을 맺고 있다.

그들이 이야기를 풀어갈때마다 권력을 넘어선 그들의 행동은 인간의 가장 원초적인 욕망이 뒤따른다. 짙은 욕망의 이야기는 울컥 눈살을 찌푸리게 만들고 농도짙은 관능을 만들어 낸다. 권력의 중심 안에서 일어나는 일들은 결코 즐겁지도, 아름답지도 않다. 동물의 습성처럼 누군가를 밟고 나를 일으켜 세우는 본능만이 충실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화자가 되어 이야기를 풀어가는 실타래속에서 그들이 겪어나가는 일이 아닌 남녀가 만나 '사랑'을 나누는 행동들이 계속해서 이어나간다. 사랑을 나누는 행위는 결코 그들에게는 사랑이 아닌 몸으로 하는 행위의 주체일 뿐이라는 것을 은연중에 보여준다. 본성의 추악함 마저도.

<함정>을 읽으면서 얇은 책이니 좀 가볍게 읽을 수 있겠다 싶었는데 가벼운 깃털처럼 가벼운 소설이 아니라 발을 디디면 빠져나올 수 없은 깊은 수렁에 빠져든다. 친절하지 않는 오만함을 보여주는 책인 것처럼 쉽게 페이지를 넘길 수 없었다. 그녀의 데뷔작<함정>은 커리드웬 도비가 석사논문으로 쓴 것을 판권이 팔리면서 그녀가 쓴 글을 독자들이 읽을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다. 파격적이고 불친절한 그녀의 이야기는 다듬어지지 않는 원석 같은 느낌이지만 사람의 욕망과 권력의 힘을 잘 보여주는 실험적인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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