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관타나모 다이어리
마비쉬 룩사나 칸 지음, 이원 옮김 / 바오밥 / 2009년 6월
평점 :
품절


 부끄럽게도 <나의 관타나모 다이어리>를 통해 관타나모 수용소에 대해 알게 되었다. 국제문제나 시사에 관심이 없다보니 미국의 핫 이슈로 떠올랐던 '관타나모 수용소'에 대해 들어보지도 못했다. 지금이라도 이 책을 통해서 멀리 떨어져 있지만 그들에 대해서 알았다는 어찌나 다행스럽고, 부끄러운 일이었던지. 세상 사람들이 어떻게 살고, 어떤 문제가 일어나는 것 보다  끊임없는 이야기에 목을 메고 있었다. '재미' 위주의 책을 읽지 않으려 했는데 요즘 들어 '소설'만 미치도록 읽고 있으니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나의 관타나모 다이어리>를 읽으면서 최근에 읽었던 <나 누주드, 열살 이혼녀>가 생각났다. 관타나모 수용에 대한 맥락의 이야기는 아니지만 현재, 이시간에도 내가 모르는 곳에서 많은 사람들이 인권을 위협 받는 사실이 놀라웠다. 21c 첨단 미래를 꿈꾸는 시점에서 우리는 자본과 언론의 공격속에서 본 모습을 찾기 보다는 '인간의 미덕'을 잃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떠올랐다. 세상이 보여주는 진실 보다 카메라를 통해, 글로 통해 보여지는 이면의 세계에 대한 확립이 아닌 그림을 조작하고 확대되는 모습을 보아온 것일까 하는 자괴감마저 든다.

우리가 알고 있는 진실은 도대체 어떤 것일까? 라는 물음속에 그녀의 다이어리는 착실하게 그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그들이 쓴 글이 아니기 때문에 그녀가 그들에게 이야기를 듣고, 자신의 생각과 함께 체험을 바탕으로 수기 형식으로 썼기 때문에 제 3자가 보는 것처럼 조금 동떨어져 보이는 시선이 보인다.

미국에 태어나고 자랐던 그녀지만 그녀는 아프카니스탄계 이민 2세로서 자신의 뿌리를 깨닫고, 자신이 자랐던 미국에 대해 돌이켜 볼 수 있던 경험이 아니었을까. 같은 뿌리의 사람이 아무런 죄도 없이 수용소에 갖혀 인간의 가장 기본권도 누리지 못한채 생활하는 모습은 충격적이었다. 그들은 하나의 인간으로서 보호받는 것이 아니라 미국 정부에 있어서 번호로서 매겨지는 하나의 물건에 지나지 않았다. 발로차고, 때리고, 심지어 죽이고도 자살이라고 칭하기도 했다. 멀리있는 가족에게 편지가 오면 일일이 조사하고, 펼쳐보며 줄을 긋는다.



 너무나 심한 고통을 겪었고 심념과 자아와 존엄과 인간성에 모진 학대를 당했던 '주마'라는 한 '인간'을 만났고 함께 있었다는 사실을 당신이 항상 기억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그는 투옥되어 고문을 당했고, 고향과 가족과 어린 딸을 뺏겼습니다....

 

쿠바의 관타나모에는 나와 똑같은 고통과 불운에 빠지 수백 명의 수감자들이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주십시오. 그들은 아무런 죄도 이유도 없이 붙잡혀서 고문을 당하고 억류되어 있습니다.


p. 225 주마 알뎁 라티프 알 도사리의 편지 中


마이매미대학에서 로스쿨을 다니고 있던 그녀가 로스쿨을 졸업하고 현재 뉴욕 타임즈, 워싱턴 포스트, 윌스트리트 저널등 유력 신문의 저널리스트로 활동하고 있다고 한다. 그녀의 소개글을 보며 미국의 어두운 면을 찾아 많은 사람들에게 빛이 될 수 있도록 활동했으면 하는 바램이다. 글이 쉽게 읽히지만 무거운 주제였던 만큼 나의 생각과 습관들을 돌아보게 되는 계기가 된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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