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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속에서도 걷고 싶은 길 - 길의 시인, 신정일의 우리 땅 걷기 여행
신정일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9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길을 걷다가 뒤를 돌아 볼 때가 있다. 내가 걸어왔던 길을 내려다 보고 있으면, 사람의 발이 참으로 대단하게 느껴진다. 신기함을 넘어 위대함까지 느껴진다. 바퀴가 달린 자동차나 자전거가 아닌 마음만 먹으면 언제 어디서든 길이 아닌 곳에서도 사람의 발을 내딛는다. 파리에 갔을 때 나는 몽마르트 언덕을 올라가며 피카소가 지나다녔고, 고흐가 지나던 길이라며 몹시 흥분했던 기억이 난다. 시간을 초월할 뿐 내가 알고 있는 유명한 예술가가 지나다녔던 거리, 폴짝폴짝, 마음이 두둥실했던 나를 돌이켜 보면 왜? 외국에서만 그런 느낌을 받았는가 하는 것이다.
우리는 곧잘 우리 것 보다 남의 나라 문화를 동경하기도 하고 그 문화에 대해서는 잘 알면서 정작 우리가 더듬었던 발자취에 대해서는 시큰둥한 반응을 보이곤 한다. 처음엔 나도 그랬다. 우리나라의 여행지 보다는 다른 나라의 성이 좋았고, 옹기종기 솟은 예쁜 마을이 좋아 보였다. 하지만 여행을 다녀오고 나니 우리의 것이 더 소중하게 여겨진다. 한비야의 <바람의 딸, 우리땅에 서다>를 읽으면서 길을 따라 발걸음을 옮기고 싶었다. 얼마전에 1박 2일에서 제주도 편을 보면서 올레길을 함께 걸어 보고 싶을 만큼 풍광이 빼어난 제주도의 풍경에 시선을 빼앗겨 버렸다.
<꿈 속에서도 걷고 싶은 길>을 쓴 저자 신정일씨의 전작인 <대한민국에서 살기 좋은 곳 33>을 접에 접했었다. 전작의 내용이 대한민국에서 명당이라고 일컫는 곳을 전국 곳곳에서 33곳을 담아 쓴 글이라면 <꿈속에서도 걷고 싶은 길>은 팔도의 걷기 좋은 길을 세심하고 섬세하게 담겨져 있다. '우리 땅 걷기' 대표인 그는 구석구석 발걸음을 옮기면서 역사의 중점이 되었던 곳이나 이중환의 택리지에서 명당이라고 일컫은 곳을 조목조목 담았다. 유명한 시인의 글귀나 옛 선비들의 발자취가 담긴 숨결 하나도 놓치지 않아 저자를 따라 발걸음을 옮기고 나면 시간을 초월한 옛 시간을 함께 동반하고 있는 느낌마저 든다.
걸음은 사람을 속이지 않는다. 내가 가는 발걸음, 처음 발을 딛었을 때는 살랑거리는 봄바람처럼 가벼운 발걸음이었다면 점점 더 더딘 발걸음이 되기 마련이다. 힘이 들수록 그 추억이 오래 지속 된다고 누가 말했던가. 언제 어디서 발걸음을 옮겼다 하더라도 가본 곳에는 늘 정겨운 시선이 있고, 사람이 있다. 내가 가보았던 그곳, 내 발자국이 찍혔던 곳이라 생각하면 나도 모르게 친근함이 느껴진다. 역사가 숨쉬고 있고, 누군가의 발걸음이 베어져 있는 곳을 조심스레 걷다 보면 어느새 길이 끝나 있었다.
묵묵히 자신의 걸을 걸으며 우리의 역사를 생각하고, 우리의 문화를 생각하는 힘!이었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 이야기처럼 길을 걷고, 걸으면서 우리땅에 대한 인문기행을 찾아 떠나는 저자의 발걸음이 대단하게 느껴졌다. 나 또한 시간을 내어 한 걸음씩 발걸음을 옮겨 꿈속에서도 걷고 싶은 모든 길을 다 다녀보고 싶었다. 즐겁고 행복한, 다정한 길의 기행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