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 비단보
권지예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08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붉은 비단보>를 마주한 순간부터 가슴이 콩닥거린다. 두근두근, 심장박동이 이는 그 느낌이 아니었다. 기다란 초에 작은 불꽃이 바람에 휘날려 꺼질듯, 꺼지지 않는 그런 느낌이 온 몸을 타고 흘러내리는 것처럼 느껴졌다. 안정된 느낌 보다는 무언가 속사포처럼 퍽! 하고 터질듯한 느낌은 이 책을 읽는 그 순간까지 계속 되었다. 책을 놓고 밥을 먹을 때에도 다음 내용의 궁금증 때문에 이 책을 놓을 수 없었다. 다이나미이트처럼 파박하고 터질듯한 그 열기를 이 책으로 하여금 계속해서 불안감을 느끼며 읽어나갔다.

항아를 중심으로 초롱, 가연 이 세 소녀가 여인이 되고 각자의 운명의 갈림길에 설때까지도 운명이라는 실타래는 세월이 흐르면 흐를수록 더 조여나간다. 조선시대라는 이름과 운명의 소용돌이 속에서 그어떤 남정네보다 출중한 '재능'을 가졌던 세 소녀들은 틀 속에 갖혀 여인이라는 이름아래 나비처럼 힘찬 날개짓조차 펴지 못했다. 항아의 이야기를 읽다보면 언뜻 심사임당의 모습이, 초롱의 모습에는 황진이가, 가연의 이야기에서는 허날설헌에 얽힌 이야기가 생각난다. 자아가 강하고 예술적인 끼가 다분했던 그들은 소녀에서 여인으로, 여인에서 한 지아비의 아녀자로, 한 아이의 어머니로 태어나는 과정이 숨막히게 그려진다.

자신이 갖고 태어난 '끼'라는 녀석때문에 자신이 타고 들어간 운명의 소용돌이가 더 거세게 다가오는 그 모습은 여류 예술가들의 아픔이었을 것이다. 자존감, 고독, 불타오르는 혼을 그 누구의 구애없이 승화할 수 없는 시대를 탓해야 할까? 자신의 의사에 관계없이 나이가 차면 '시집'이라는 이름아래 얼굴도 모르는 한 남자의 아녀자로 걸음을 옮기는 모습이 유독 아프게 다가온다.

항아와 준서. 그리움을 넘어 사랑이라는 말 조차도 꺼낼 수 없는 그 시대, 꼬여버린 실타래는 결국 사랑의 꽃망울을 맺지 못한채 평생의 한으로 남았을 것이다. 준서, 초롱의 오라비인 그는 서자라는 이유만으로 출사를 할 수 없었고 사모하는 이를 두고도 큰 소리 조차 내지 못한채 돌아섰던 한 남자역시 시대의 굴레에 갖혀 있었다.

조선시대 때 고된 여인의 삶을 그린 이 책은 자아가 강했던 예술가로서 삶을 지향했던 여인들의 짧은 생애를 보여주는 것 같아 안타까웠다. 나비가 되었다면 훨훨 날아갈텐데. 그리움마저도 끝까지 놓지 않았던 그림으로 승화했던 항아의 모습이 마지막까지 아른거렸다. 책을 다 읽고서 항아와 준서의 모습을 그려보았다. 두 사람이 함께 했다면 정말 두 사람은 긴 여생을 함께하지 못했을 것이다. 이상과 현실의 차이는 컷고, 세상은 결코 녹녹치 않았을 것이다. 그리움이 짙어 한순간도 놓을 수 없었던 마음의 한조각마저 짊어지고 살았던 항아와, 준서, 가연 그리고 초롱의 모습까지 살아가는 아픔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는 소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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