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서함 110호의 우편물 - 개정판
이도우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7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처음 북박스라는 이름으로 파란 표지였던 이 책은 개정판으로 아기자기한 양장본으로 다시 출판 되었다.)

 한 번, 두 번....스무번 가까이 책을 읽었을땐 어느새 숫자를 세는 것이 무의미해졌다. 처음 내가 이 책을 만난건 도서관에서 책을 마주 대했다..사람들의 손때가 묻어있는 파란 표지로 이 책을 만났다. 로맨스라는 장르 소설에 빠져 들다가 어느 시점까지 읽다보니 주인공 이름이 헷갈리시 시작했다. 그러더니 급기야 내용들이 뒤죽박죽 섞이기 시작했다. 그렇게 조금씩 질려가고 있을쯤 누군가의 리뷰글을 보고 도서관에서 가서 습관적으로 책을 골랐다. 사서함 110호의 우편물(이하 줄여서 사서함이라 칭함.)을 읽을때까지만 해도 나는 딱히 어떤 류의 책을 좋아하는지 몰랐다. 이야기가 재밌거나 주인공이 매력적인 인물이면 더할나위없이 좋았고 문제나 작가에 대해서는 그저 조금 참고만 됐을 뿐 깊은 영향은 못 미쳤다.

서평을 쓰기 전에 얼마전부터 책을 한권씩 읽어보시는 엄마께 자의반 타의반으로 사서함을 안겨 드렸다. 눈이 나쁘셔서 하루에 조금씩 읽던 엄마가 처음에는 책이 심심하다고 하셨다. 그래서 좀 더 진도를 나가보시라고 권유 드렸는데 한참을 읽어보시더니 이 책의 진가를 느끼셨나보다. 이 책은 긴 문장이 연결되지 않으면서도 짧은 문장이 동글동글한 물방울의 느낌을 준다. 마치 처름 읽을때는 잔잔함이 물결치다가 페이지가 넘어갈 수록 항아리에 물이 가득 채워지는 느낌이다.

방송국에서 일하는 두사람, 라디오 작가 공진솔과 라디오 PD 이 건, 두 사람의 사랑이야기다. 두 사람의 이야기 속에 건의 친구인 선우와 애리의 사랑, 건의 할아버지인 이필관옹의 사랑, 진솔의 친구인 가람의 사랑이야기가 함께 나온다. 무지개빛 만큼이나 다른 색깔의 빛 속에서도 진솔과 이 건의 사랑은 느릿하면서도 달콤하다. 사랑의 시작은 진솔이 먼저했지만 점차 자신도 모르는 사이 번져가는 건이의 사랑은 심장이 콩닥콩닥 거리며 간질거린다.

작가인 그녀와 시인이자 PD인 건의 말투는 글 속에서 작가가 그리는 만큼이나 작가의 시선인지 진솔의 마음인지 분간이 안 갈 정도로 동글동글해진 글자가 나에게 툭! 하고 다가오는 것 같다. 처음으로 책장을 덮었을 때는 이 책이 너무도 사랑스러워 한동안 나도 진솔이와 건이와 같은 연애를 해 보고 싶은 충동이 들 만큼 사랑스러운 소설이었다. 한눈에 반하는 사랑도, 목숨을 걸 만큼 사랑하는 사람도 만나고 싶은 건 사람이라면 누구나 다 그런 감정을 느껴보고 싶지 않을까. 아쉬운건 그런 사랑이 현실에서는 몇만분의 일처럼 느껴지는 것이 안타까울 뿐이다.

그런 운명적인 사랑은 아니지만 불이 붙듯 한눈에 팍! 하고 터지는 사랑보다 잔잔하지만 상대방에게 배려를 하며 조금씩 다가가는 진솔과 건의 사랑 같은 사랑을 하고 싶다. 조금씩, 조금씩, 점점...젖어드는 사랑. 이 책을 손과 발을 합한 것 보다 더 많이 읽은 이유는 아마도 두 사람의 사랑법이 내 마음을 흔들었기에 손에 들면 볼 수 밖에 없었는지도 모르겠다. 건의 올곳음과 시니컬해보이지만 실은 가슴 가득 따스함이 있는 남자가 좋아서.

사랑해서 가슴이 따뜻하고, 사랑해서 가슴이 아릿한. 그렇지만 다시 사랑을 하고 싶은 두 사람의 사랑이야기는 촉촉한 감동을 넘어 라디오 부스 어디선가 그 둘이 있을 것만 같은 착각을 일으킨다. 주파수가 흐르는 곳 어디선가에 존재할 것만 같은 존재감. 그리고 두 사람을 더욱더 깊게 이어준 이필관옹.

로맨스 소설을 보다보면 늘 여주인공 보다는 남자 주인공이 좋았다. 하지만 사서함에서는 건이만큼이나 진솔이 좋았다. 진솔이 이야기 하고 있는 사랑은 사랑을 해도 그 속에 외로움도 있고 쓸쓸함을 느낀다는 그말이 현실감있게 느껴졌다. 사서함은 로맨스소설이지만 장르소설 답지 않은 일반소설의 느낌이난다. 처음부터 끝까지 '사랑'을 주제로 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사랑을 통해 그 달콤 씁쓸한 맛을 느끼게 하는 어루만져지는 잔잔한 문체 때문에 그런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곤 한다.

<사랑스런 별장지기><사서함 110호의 우편물> 이 두 작품을 접하면서...계속해서 사서함을 읽으면서 이도우 작가의 다음 작품을 기대하고 있다. 토독토독. 봄비 내리듯 스며드는 문체는 책을 펴고 읽는 순간 마음에 스며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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