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한 해즈빈
아사히나 아스카 지음, 오유리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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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즘 들어 내 머릿속에 잡념이 많아 졌다. 잠을 자려고 베게를 베고 누워 있으면 생각의 꼬리가 꼬리를 물어 어느새 다른 이야기로 꽈리를 틀고 있다. 나는 1년 365일 중에 사람이 365일을 즐겁고 행복한 일만 가득하지 못하다는 것을 살면서 깨닫곤 한다. 햇볕이 쨍쨍한 날이 있으면 비가 주룩주룩 내리는 날도 있듯이 사람의 감정도 그 주기가 있다. 그 주기를 사람마다 어떻게 컨트롤 하느냐에 따라 그 사람이 즐거운지, 우울한지 그건 본인의 생각과 행동에 따라 다르다고 생각하는 주의다. 물론 처한 환경에 따라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 있고 없는 변수를 제외하고서.

<우울한 해즈빈>을 읽다보면 작년에에 읽었던 <도피행>이 생각난다. 두 소설이 갖고 있는 상황이 틀리지만 결혼하고 나서 나를 찾아 나서는 것에서는 닮은꼴 같은 작품이다. 사실, <우울한 해즈빈>을 읽으면서 리리코가 결혼후에 느끼는 여자들만이 갖고 있는 불안의식이나 소외의식이 느껴지지 않았다. 그녀가 왕년에는 잘 나갔던 커리우먼이었지만 지금은 결혼 후에 자신이 하고 있던 일을 그만두고 전업주부가 되어있는 리리코. 해즈빈으로 불리는 그녀. 그녀가 결혼후 느끼는 상실감이었다.

그 현실이 그녀에게 큰 상실감을 주었다는 뉘앙스이지만 결혼 후 다시 취업을 돕는 그녀의 남편이나 시댁을 보면서 그녀는 자기자신안에 갖힌 유리인형 같다. 결혼과 임신은 남자와 여자의 두 사람의 선택이자 집안과의 결합이다. 결혼을 했다면 당연히 그전과 다른 풍경일 것이고 결혼이라는 결합속에서 잃는 것과 얻는 것은 선택 안에 포함된 일일 것이다. 이런 일을 리리코는 자신이 떨어지는 추락속에서 도피를 하기 위해 선택했다는 점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분명 작가가 그리는 <우울한 해즈빈>은 현대 여성의 딜레마인 결혼과 임신이라는 딜레마를 그려넣으려 했지만 리리코에서 보여지는 모습은 현대여성이 겪는 딜레마는 아니다. 리리코는 가정에서 갖는 '아내'의 역할을 제대로 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바뀐 생활 환경의 적응도 하지 못한다. 마치 물 위에서 둥둥 뜨고 있는 기름 같이. 그녀가 겪는 트라우마는 리리코의 수동적인 면은 제 3자의 입장으로 볼때 자신의 환경을 개선하지 않고 혼자 방어막을 치고 있는 한 여자로 밖에 느껴지지 않는다. 자신에게 쏟아지는 과도한 관심이 불편하고 싫은 십대의 철없는 여고생 같은 느낌이랄까.

사람의 얼굴이 다르듯이 사람의 성격도 다 다르다. 그렇기에 자신의 가치관을 빚대어 니가 갖고 있는 그런 성격은 나쁜거야! 라고 말할 수 없다. 다만 능동적인 면과 수동적인 면에 있어 리리코는 곪고 있는 상처를 갖고 있는 여자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현대 여성이 겪는 딜레마를 리리코를 통해 볼 수 없는 이유는 작가가 그려내는 리리코의 트라우마나 매력이 전혀 없다. 그렇기에 공감대 형성이 되지 않는다. 오히려 그녀의 방어적인 자세가 답답하게 느껴졌다. 그녀와 결혼한 그녀의 남편이 불쌍할 정도로.  섬세하게 파고드는 심리적인 면보다 단조로운 느낌이 든 우울함이었다. 책을 덮고도서 책에서 느껴지는 우울함이 한참을 머물러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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