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루한 이야기 창비세계문학 53
안톤 파블로비치 체호프 지음, 석영중 옮김 / 창비 / 2016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안톤 체홉은 못 잃지.


 나의 또다른 적은 내 안에 앉아 있다. - p.27


 2022년 현재.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이 일어났다. 러시아의 푸틴의 의해 영토는 파괴 되었고, 많은 사상자들이 나왔다. 자신이 살던 곳에서 나와 피난을 가는 사람들의 울부짖는 소리들이 연일 뉴스를 통해 터져 나왔다. 전쟁은 어떤 명분에 의해 이뤄진다. 대의명분이야 말로 전쟁의 한 일면에 불과하지만 현재 나라 밖에 들리는 소식이 슬프고 안타깝다 보니 자연스레 러시아 문학과 멀어졌다. 예전에도 러시아 문학은 좋아하지도, 싫어하지도 않았지만 그들의 이름 때문에 읽기가 수월하지는 않았다. 그럼에도 안톤 체홉의 단편소설은 좋아서 늘, 소설 뿐만 아니라 그의 원작으로 된 작품들을 관람했다.


많은 단편들이 작가의 스펙트럼을 넓혀주는 하나의 단초이자 앞으로 장편으로 쓰여질 하나의 물감으로 쓰여진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간 많은 작가들의 작품은 그들의 다양성을 알아보고 싶어 맛본 이야기라면 안톤 체호프의 단편은 인간에 대한 시니컬함과 냉정한 삶의 철학들이 곳곳에 베어져 있다. 마치 정돈되어 있는 서재에서 무게감 있게 짓누르고 있는 문진처럼 그의 글은 단단하면서도 간결하다. 오래 전 안톤 체호프의 <사랑의 관하여>를 통해 표제작인 '지루한 이야기'를 제외하고 '검은 옷의 수도사'와 '개를 데리고 다니는 부인'을 읽었다. 그는 이 이야기를 '지루한 이야기'라고 칭하며 어느 노인의 수기라는 부제를 달아 두었지만 으레 그렇듯이 그의 글은 전혀 지루하지 않았다.


처음에는 순간 제목 때문에 정말 지루한 이야기가 될 것 같아 겁먹었지만 글을 쓴 이는 다른 누구도 아닌 안톤 체호프다. 그 누구도 아닌 그가 쓴 글이 지루하기란 쉽지 않는 것처럼 3편의 단편 중 2편의 단편은 이미 읽었지만 그 한 편의 이야기가 충만하다. 노인의 이야기는 그야말로 애잔하면서도 겨울의 낙엽마냥 생의 촌음이 얼마 남지 않는 한 노인의 이야기가 중심을 이룬다. 그가 갖고 있는 것들. 보는 것, 느끼는 것들이 마냥 기쁘지 않고 바쁘게, 날카롭게 돌아간다.


젊었을 때의 행복을 어느새 저물고 그에게 남은 것은 속물스러운 아내와 딸, 자신이 아직까지 보살펴야 할 아들만이 그에게 짐처럼 남아 있을 뿐이다. 그에게는 오직 돈. 돈에 대해 관련된 것 뿐이다. 왜 아직도 나는 그 굴레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으며 왜 그들은 나를 이렇게 실망시키는가에 대한 노인의 푸념과 고독함이 그를 사로 잡는다. 어디서 많이 들어봄직한 이야기지만 이야기꾼 안톤 체홉이 쓴 노인의 이야기는 정말 지루하지 않았다. 매혹적이지만 정말 인간의 희노애락의 끝이 결국은 슬픈 정점을 찍으며 살아가는 존재로서 보여지는 무게감이 계속해서 보여준다. 그래서 더 안타깝고 슬프지만 그래서 더 매혹적인 모습으로 그들의 모습을 지켜보게 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