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환화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54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민경욱 옮김 / 비채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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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짊어지고 가야 할 유산 


 히가시노 게이고의 책은 늘 평타 이상의 재미가 있다. 그의 작품을 처음 접했을 때 재미와 감동에 반해 그의 작품을 전작하려고 했으나 한 해에도 몇 권씩 쏟아지는 방대한 양에 손을 들었다. 이제는 조급하지 않게 천천히 그의 작품을 즐기면서 한 권씩 읽고 있다. 많은 양에 숨가빠하지 않으면서. 그의 책은 늘 추리소설의 면모를 띄고 있지만 다양한 주제와 맛깔스러운 필치를 통해 새로운 이야기를 선사한다. 어떤 책을 읽어도 늘, 재미를 추구할 수 있는 그의 글쓰기 실력이 놀라울 수 밖에. <몽화화> 역시 히가시노 게이고다 싶을 정도로 페이지가 쑥쑥 넘어간다.


<몽환화>는 '노란 나팔꽃'을 주제로 한 이야기다. 중학교 때 등교하던 길목마다 피던 꽃이 나팔꽃이었다. 아침마다 청초하게 핀 나팔꽃을 볼 때마다 어찌 기분이 좋던지. 해가지면 잎이 다물어지고, 아침이면 나팔처럼 환하게 피던 나팔꽃의 색깔이 '노란'색이 있었나 잠시 기억을 더듬어본다. 많은 꽃들이 다양한 색을 갖고 있음에도 노란색 나팔꽃은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책의 시작은 누군가의 평온한 일상에 한 남자가 몰고온 날카로운 칼끝으로 시작된다. 피바람이 불러온 야차같은 그들의 시간을 뒤로하고 한 가정의 이야기가 잔잔하게 들려온다. 가모 가(家)의 이야기는 신지와 시마코의 둘째 아들인 소타를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아버지와 형을 어려워하고 매번 가족들의 연례행사로 나팔꽃 시장을 둘러본다. 그들이 관심갖고 있는 것에 관심이 없는 소타는 마침 발을 다쳐 한 곳에 있다가 한 여자아이를 만나게 된다. 그곳에서 자신의 또래인 한 아이를 만나게 되고 연락을 나누면서 관심을 갖게 되지만 아버지 신지가 이메일을 발견하면서 그 아이와 연락을 끊기에 된다.


시간이 지나 수영선수로 이름을 알렸던 리노가 사촌인 나오토의 자살로 가족들과 함께 되고 퇴직 후 식물을 키우는 슈지 할아버지를 돕게 된다. 사진을 찍고 블로그에 글을 올리면서 할아버지를 돕던 와중 슈지가 돌연 누군가에 의해 사망하게 된다. 경찰에 연락해 범인을 쫓고 있지만 가져간 것은 없고 며칠 후 노란 나팔꽃이 심어진 화분 하나만 없어진 상황이다. 손녀딸인 리노는 할아버지를 범인을 찾기 위해 신경을 쓰던 와중 블로그를 본 요스케를 만나게 된다. 소속을 밝히지 않고 만났던 요스케의 만남을 통해 후에 요스케의 이복동생인 소타와 만난다.


탐문수사 중인 형사 가운데 슈지의 도움을 받은 하야세의 아들 유타는 아버지에게 꼭 범인을 잡아 달라고 한다. 불륜을 저질러 이혼을 한 이후 혼자 살고 있는 하야세는 아들에게 속죄를 하는 기분으로 슈지를 죽인 범을 쫓기 시작한다. 각각의 방향에서 갖은 사연으로 슈지를 죽인 범인을 찾는다. 갈길을 잘 가고 있다가 어느 순간 길을 헤메고 있는 리노와 오사카에서 원자력 전공을 했지만 더이상 미래가 창창하지 않는 소타와의 만남은 보이지 않던 사건의 진실 속에 한걸음 더 나아간다.


각각의 상황도 그들의 직업도 겉돌았던 퍼즐이 어느 순간 맞닿아 하나의 그림으로 맞춰진다. 그 부분이 가장 짜릿하면서도 쉽게 퍼즐이 맞춰졌다. 사람에게 해가 되는 잘 지키지 못한 결과로 빚어진 사건을 계기로 전해 내려온 빛의 유산. 노란꽃을 쫓지마라는 이야기 속에서 오래 전부터 내려오는 신비하고도 몽환적인 꽃이 실제 등장한다. 그것이 또 하나의 사람을 살해하는 동기가 되었지만 집안대대로 살피며 '황소개구리'처럼 사람의 목숨을 빼앗는 꽃을 저지하려는 한 가문의 이야기를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무엇보다 그들이 갖는 질곡의 시간 속에서 뼈저리게 겪은 트라우마의 이야기가 환상의 꽃을 통해 그려내고 있는 작품이다.


곁가지들이 많고, 결말이 허무하게 밝혀진다. 잡은 범인이 내가 생각한 이와 달랐다. 한 껏 시동을 걸며 달려갈 일만 남았는데 푸시시 바람이 빠지는 결말이랄까. 그럼에도 드러난 진실을 받아들이고 이어나가려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빛났던 작품이었다. 명확한 색을 띄고 있던 이들은 잠시 걸음을 멈추고, 진로에 대해 고민이 많던 이들은 다시 앞을 내다보며 걷는 발걸음이 활기차 보였다. 어떤 그림자를 품고 다시 뛰어야 하는지를 명확하게 보여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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