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랜드 캉티뉴쓰 호텔
리보칭 지음, 허유영 옮김 / 비채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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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장하는 인물들 모두 용의자!

 

 천혜의 요새와도 같은 그랜드 캉티뉴스 호텔에서 살인 사건이 일어났다. 5성급 호텔답게 최신식 시설과 캉티호를 내다 볼 수 있는 자연경관이 아름다운 곳이었다. 캉티호를 둘러싼 산책로에서 그 곳의 수장인 바이웨이더가 총을 맞고 숨진채 발견되었다. 과연 범인은 누구일까? 큰 호텔의 규모답게 오가는 사람과 일하는 사람들이 즐비한 가운데 살인사건을 조사하러 온 낯선 사람들이 그랜드 캉티뉴쓰 호텔로 발걸음을 옮겨온다. 죽은 이는 한 명. 그러나 등장하는 인물은 각기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많은 인물이 바이웨이더의 장면 속에 등장한다. 수 많은 장면과 관계 속에서 누가 과연 마지막으로 바이웨이더를 만났을까.

한 공간 안에서 서로의 머릿속을 훔쳐보듯 밀당을 벌이는 밀실추리를 좋아하지 않는다. 기존의 밀실추리가 돋보기를 들여다 보듯 섬세하게 들여다보는 매력을 가졌다면 리보칭이 쓰는 이야기는 브레이크 없는 엑셀만 밟을 수 있는 자동차를 타고 달리는 것 같았다. 각 장에서 드러나는 인물들의 목소리를 통해 당시에 일어난 사건을 재현한다. 단순한 사건은 아니라고 생각했지만 거미줄 같이 얽힌 이야기들이 마구 쏟아진다.

웨이바이더 살인 사건이 일어나기 전 샤이엔의 장녀 위빙과 화원야의 장남 웨이즈 군의 약혼식이 열렸다. 웨이즈의 약혼식을 축하해주러 온 푸얼타이 교수를 시작으로 뤄밍싱 경관, 거레이 변호사, 인텔 선생의 삶의 이야기들이 그들의 시선으로 시공간을 뛰어넘어 그들의 이야기를 그린다. 마치 옴니버스 식으로 그려진 이야기들이 아무 이야기도 아닌 것처럼 느껴지지만 마지막에 맞아 떨어지는 이야기들이 어찌나 찰떡같은지.

누구지? 누구지? 하며 그들을 손가락을 짚을 때마다 작가는 마치 '이 사람은 아니야'라고 뒤통수를 치는 것처럼 내다보지 못한 다른 이야기를 꺼내 놓는다. 범인을 찾았다고 안심하는 순간 또다른 문제에 봉착한다. 그것이 리보칭의 <그랜드 캉티뉴스 호텔>의 매력이 아닌가 싶다. 어디로 튈지 모르는 이야기라니. 천혜의 공간을 갖고 있지만 이전에 살던 이들이 어떤 이유로 모두 죽게되고, 그곳에서 살아남은 이들이 갖는 원한과 누군가의 사랑과 욕망으로 인한 손길이 모두 그랜드 캉티뉴스 호텔에 가득 모여 있었다. 경관이나 검사를 넘나드는 추리력으로 초반 푸어타이 교수가 유머로 큰 재미를 주었다면, 거레이의 차분함과 지혜가 돋보였다.

지난 날 누군가의 과오로 인해 마음의 상처를 받았던 일들을 시간이 지나 다시금 마주쳤을 때 드러난 진실의 이야기가 매콤쌉쌀하게 느껴졌다. 지난 과오와 현재, 미래의 이야기는 그렇게 네 사람의 이야기로 귀결되었다가 다시 하나의 큰 조각으로 맞추며 끝이 난다. 책을 읽는 내내 타이완 소설이 낯설어 그런지 이름이 매번 헷갈렸다. 그들이 먹는 음식, 차,술, 거리의 이름 조차도. 곡예 운전을 하다가 끝에 다다러서야 선 자동차의 궤적을 따라 처음부터 다시 사건의 퍼즐을 맞추고 싶었다. 다시금 돌이켜보면 그들이 하는 행동, 말투, 지나가는 풍경 조차도 누군가를 손짓하고 말하는 것인지를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페이지가 쉬이 넘어가기도 했지만 넘어가는 페이지 만큼이나 세밀하게 인물들을 들여다보지 못한 것은 아닌지 아쉬움이 드는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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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을 하루아침에 변화시키는 방법은 세상에 없어. 천천히 설득해야 해. 그 과정이 무척 고통스럽고 실망스러울 거야. 예수님은 일생 동안 제자를 일흔 두 명밖에 얻지 못했어. 그나마도 그중 한 명은 예수님을 팔아넘겼지······. 자넨 똑똑하고 유능해. 자네가 지금 하고 있는 일은 세상에 있지도 않은 성니콜라스 십자가를 찾는 것과 같아. 정말로 이 세상을 바꾸고 싶다면 자네에게 필요한 건 뜨거운 피와 땀이라네. 남의 것이 아니라 바로 자네 것 말이야." - p.326

모든 행동에는 동기가 있고, 모든 동기는 그 사람이 처한 환경과 연관되어 있다. 하지만 모든 행동에는 결과도 있다. 성인이라면 그 행동의 결과에 책임져야 마땅하지 않은가? - p. 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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