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ook] 그럼 무얼 부르지 - 오늘의 작가 총서 34 민음사 오늘의 작가 총서 34
박솔뫼 지음 / 민음사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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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어디로 가는 걸까?

요즘은 명확함 보다는 모호하게 흐릿한 선을 따라 가는 것 같다. 정확하게 예측을 할 수도 없고, 하더라도 그것이 수학공식 마냥 딱 떨어지지 않는다. 질병과 재해가 얼마나 우리의 삶에 큰 영향을 미치는지 실감하고 있는 요즘 흐릿한 눈으로 바라보듯 텅 빈 세계를 그린 작가가 있다. 박솔뫼 작가는 이전에 <도시의 시간>을 통해 처음 그의 작품을 접했다. 장편의 호흡을 통해 그가 그린 회색빛의 세계를 관통하며 무감하고 차가운 색감을 많이 나타낸 작가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그럼 무얼 부르지> 역시 같은 색깔을 띄고 있다.


누군가는 눈이 안 좋으면 안경을 써서 명확하게 바라보려 하지만, 누군가는 안경을 쓰지 않고 세상을 흐릿하게 본다고 한다. 많은 것들을 명확하게 보는 것이 너무나 피곤하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라고. 때때로 나 역시도 많은 것들을 선명하게 보려 노력하지만 한 편으로는 흐릿한 세계가 더 편할 때가 있다. 박솔뫼 작가가 그린 인물들은 그 어떤 액션 없이 있는 그대로의 삶에서 수긍하며 살고 있다.


2014년에 출간된 이 단편집은 총 7편의 작품을 엮어 만든 책이다. 이전 보다 훨씬 더 멋집 옷을 입고 나온 이 책은 단편이 주는 색다름을 많이 가지고 있다. 단편의 매력은 뭐니뭐니 해도 지금껏 장편에서 느껴보지 못한 실험적인 소설이나 짧지만 강렬한 이야기로 하여금 독자에게 짜릿함을 안겨준다. 박솔뫼 작가의 단편역시 단편의 장점과 더불어 실패한 세계에 대한 사랑과 더해지지 않는 현실의 이야기를 과감없이 그려낸다. 마치 수학공식을 그려내듯 증명을 해 보이는 작품이 있는가 하면, 순간순간 장막을 들춰보이듯 보이지 않는 이면 속 이야기가 등장한다.


마치 안경을 벗고 흐릿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것처럼 그 어느 것 하나 명확하지 않다. 이야기를 읽다보면 파도에 밀려나가듯 그렇게 이야기를 타고 흘러간다. 그리고 생각한다. 박솔뫼 작가가 그리는 의미를 찾는 것이 결코 쉽지는 않겠구나 하고 말이다. 인물의 성격이나 그리고 있는 배경의 면면 까지도 마치 꿈을 꾸고 있는 것 같다. 어딘가로 관통하고 있는 것 같기도 하고 제자리에 서서 그저 상상만을 하며 멈춰있는 것 같다. 그래서 무엇을 해야 할지도 모르는 얼음 같은 삶이 책 속에 숨어 있다.


요즘 같이 모호하고 모호한 삶을 살고 있는 우리에게 맞는 이야기가 아닐까 생각한다. 명확한 이야기를 좋아함에도 어딘지 모르고 관통하는 이야기처럼 우리의 삶 역시 이와 같이 명확히 떨어지지 않는 것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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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전히 나는 모든 게 같다고 생각해. 시간은 천천히 흐르지만 하는 일은 없다. 다른 사람들은 시간이 빠르다고 해. 그리고 그 사람들은 많은 것들을 한다. 언젠가부터 시간은 천천히 흘렀다. 나는 내 시작이 그랬던 것 같다. 시간이 빨리 흐른 적이 없었다. 늘 하루가 길기만 하다. 태어날때부터 지루하고 이미 늙은 사람 같다. 나는 할아버지가 손녀를 보는 것처럼 누나를 보았다. 누나는 사과 같고 오렌지 같고 사슴 같고 토끼 같다. 누나는 내가 보는 것을 평생 보지 못할 것이다. 사장은, 사장도 같아. 이것으로 우리 셋은 똑같다. 우리는 누군가의 삼각형이 되지 못하지만 우리 셋은 같다. 이것으로 우리 셋은 똑같다. -p. 33


해만에서 우리는 문을 열고 인사를 하고 그러다 말이없고 흔들흔들거리고 떠나고 돌아가고 그리고 생각한다. 그처럼 해만에서 내가 보았던 것은 천천히 모든 것이 멀어지고 사라지는 것이었다. 사라지고 나면 무엇이 남나요? 사라진 곳에 대고 묻는다. 결국 텅 비어 버린 자신이 강렬해질 뿡이지. 아, 정말 그렇지? 질문들도 빠져나간 텅 빈 곳에 대고 대답했다. 아, 그렇네 하고. - p.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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