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을 지나가다 민음사 오늘의 작가 총서 33
조해진 지음 / 민음사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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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과 어둠의 공간 속에서


 올해의 봄은 마스크로 시작해서 끝이나지 않았고, 여름은 기나긴 장마와 함께 여름을 지나가고 있다. 시작점은 있으나 끝이 보이지 않고, 계속 무게감에 피로감이 더해간다. 최악의 나날이다 싶을만큼 중간이 없는 시간들이 야속하기만 하다. 뉴스를 보면 새로운 질병 뿐 아니라 기상이변으로 재난이 발생하고, 우리의 삶의 터전이 비로 인해 무너지거나 씻겨 나간다. 생각하지도 못했던 한 사건이 나비효과가 되어 한 사람의 삶에 크나큰 영향을 미친다. 안정적으로 탄탄하게 기틀을 쌓아가고 있다고 생각했던 평온한 일상이 어느 순간 무너져 내린다. 생각하지 못했던 순간의 누수는 내내 삶의 생채기가 되어 버린다. 그것이 누군가에게는 후회가 되고 누군가에게는 미련의 감정이 남는 것처럼.


요즘처럼 일상이 공간이 거리를 두는 시간이 있었을까 싶을 정도로 생활의 반경이 좁아졌다. 아마도 많은 상흔의 시간이 지나면 우리의 삶은 또다른 형태로 변하게 될 것이지만. 상황에 맞는 선택들이 이전의 자유로움 보다는 제한적인 선택지로 한해 행동반경이 좁아들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현재 우리의 시간의 빛과 어둠의 공간을 제한하는 것처럼 조해진 작가의 <여름을 지나가다> 또한 빛과 어둠의 공간 속에서 인물들이 떠돌고 있었다.


민은 탄탄하게 회사생활을 하며 종우와 결혼을 앞두고 있었지만 연인인 종우의 선택들이 결국 그들이 함께 할 모든 것들을 끊어냈다. 민은 일을 그만두고 공인중개사 일을 하며 사람들이 살아갈 집을 소개하고 있다. 그들에게 집을 소개하면서 짧은 시간이나마 그들이 살았던 집을 돌아보며 마음의 위안을 얻는다. 그 중 폐업한 가구점에서 머물며 자신의 시간을 위로 받고 있었다. 민이 빠져 나간 그곳에 수호는 가구점에 들른다. 아버지의 공간이었던 그곳에 머물며 지나간 시간들을 떠올린다. 가구점을 운영했던 아버지의 폐업은 곧 가족에게 들이닥칠 큰 위험이었고, 그는 이내 빛더미에 오르내리며 신용불량자가 되어버렸다.


아무리 힘을 내어 일을 해봐도 계속해서 도돌이표가 되어버리는 현실에 좌절을 겪게 되고, 그는 아버지의 가구점에 들어가 힘겨운 삶의 무게에 가구점을 방문하게 된다. 잠시 잠깐이지만 누군가의 손길이 위로가 되는 삶. 각박한 현실 속에서 개인의 슬픔과 아픔이 누군가에게 다시 잊혀지고, 다듬어지면서 다시 삶의 정렬을 해나가는 순간이 아닌가 싶다.


잠시 잠깐 머물면서 만나게 되는 개개인의 이야기들. 그 속에서 이어지는 사람들과의 인연들이 이야기를 만들어간다. 개인의 선택이 아닌 누군가의 삶이 더해질 때 순간적으로 삐그덕대는 순간의 나락과 그로 인한 고독함이 느껴지는 소설이었다. 잠시 잠깐이지만 누군가의 삶을 따라 가면서 위안을 받은 민의 모습에 어쩌면 우리는 사람들과 부딪히며 때때로 환멸을 느끼면서도 결국 사람들로 하여금 잊고 다시 살아갈 수 있는 힘을 얻는 것 같다.  


2015년에 문예중앙에서 한 차례 출간되었던 작품이었던 <여름을 지나가다>는 오늘의 작가 총서를 통해 새옷을 입고 나왔다. 전혀 접해보지 않았던 작가의 작품이라 더 좋았고, 여름의 습하고 후덥지근한 뭉근함을 잘 나타내주는 소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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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령 일정 기간 살다가 미련없이 죽고 그 죽음에서 빠져나온 뒤엔 아무것도 모르는 순진한 얼굴로 다시 태어나는, 그러니까 일생이란 개념으로는 규정될 수 없는 태어남과 죽음의 끊임없는 반복. 그런 식의 삶은 기차 같은 거라고 민은 생각했다. 수많은 칸들이 연결된 기차처럼 각기 다른 생애들이 길게 이어져 전체 삶을 완성하는 것이다. - p.9


삶이란 결국, 집과 집을 떠도는 과정이 아닐까. - p.44


삶에도 누수의 흔적은 남기 마련이고, 그 흔적은 좀처럼 복원되지 않는다. 아니, 절대로 복원될 수 없는 흔적도 있다. - p.135


아이가 어른이 되고 어른은 노인이 되는 동안 결핍은 보완되고 상처는 치유되는 것, 혹은 삶이란 둥근 테두리 안에서 부드럽게 합쳐지고 공평하게 섞이는 것이므로 아른 것도 없고 억울할 것도 없는 것, 그런 환상이 가능할까. -p.1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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