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중국편 3 : 실크로드의 오아시스 도시 - 불타는 사막에 피어난 꽃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유홍준 지음 / 창비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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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감이 실려있는 흥망성쇠의 이야기


 유홍준 교수의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중국편을 재밌게 읽었다. 다음편의 이야기가 무척 궁금했는데 이번 편 역시 유홍준 교수의 필력은 여전했고, 누란, 투르판, 쿠차, 타클라마칸사막등 그가 보여준 현장감은 실로 대단하게 느껴진다. 한 권의 책이 묶이기 까지 그는 여정을 더하며 에피소드를 풀어 나갔지만 이번 편만은 그렇게 할 수 없어서 아쉬웠다고 한다. 부족한 부분을 메우기 위해 그는 자료조사를 세세히 하며 영상과 책을 찾아 그의 여정길을 풍부하게 만들었다. 다른 편과 달리 이번 편은 더 학술적으로 느껴진다. 유홍준 교수의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중국편은 1,2권에서 다룬 부분이 동부 구간이며, 이번 3권의 오이사시 도시 순례 부분이 실크로드의 중부구간(P.7)을 담았다. 교과서를 통해 몇 차례 무역의 중심지였던 실크로드에 대해 많이 들어봤으나 실감이 나지 않았다. 동서고역이 이루어지던 곳.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시간 속에서 누군가에 길이 열리던 곳이다. 유홍준 교수의 책을 읽을 때마다 보는 것을 넘어서 한 권의 책이 꿰어지기까지 얼마나 많은 품이 드는 가를 알 수 있다.

책상머리에서 막연히 실크로드를 생각할 때면 동서교역을 위해 낙타를 몰고 가는 소그드 카라반, 또는 불경을 구하기 위해 황량한 사막을 건너던 현장법사나 혜초 스님 같은 구법승들, 또는 서역을 차지하기 위해 중국인과 유목민이 벌인 무수한 싸움을 떠올리곤 했다. 그러나 막상 투르판에 와보니 그것은 지나가는 자들의 이야기일 뿐 오아시스 도시에 뿌리내리고 오순도순 살아갔던 서역인들의 숨결과 체취가 살갑게 다가왔다. 그네들이 시련의 역사 속에서 남긴 유적에는 아픔과 슬픔, 그리고 애잔한 소망이 서려 있었다. 그것은 오아시스 도시의 숙명 같은 것이었다. - P.56

색채가 드러나기 보다는 황량한 사막의 길이었다. 나무와 돌, 모래의 바람이 물결치는. 그가 보여주었던 석굴의 벽화들이 생경하게 다가왔다. 때때로 생소하게 느껴지기도 했지만 익살스럽게 느껴지는 그림들과 조각상들이 있어 색채감을 더한다. 항상 화려한 색채감이 있는 풍경들만 보다가 색채감이 드러나지 않는 풍경들은 보다보니 나도 모르게 입안에 모래가 저걱저걱 씹히는 것 같았다. 오랜 시간 속에서 무역의 꽃을 피웠고, 장대한 바람을 꿈꾸던 도시의 길이었다.


 

미국의 색면파 추상화가인 마크 로스코는 대형 캔버스에 검은색 혹은 빨간색을 짙게 칠하고 또 칠하면서 색면의 라인은 번지기 기법으로 어스름하게 지워버렸다. 그렇게 해놓고 로스코는 "관객들이 내 그림을 보면서 울음을 터뜨리길 바라며 그린다"라고 했고 실제로 많은 관객들이 그의 작품을 보고 있으면 감정이 복받친다고 고백한다는데, 이와 그대로 통하는 감상이다. 형체가 남아 있으면 그런 감정은 나오지 않는다. 그것은 분명 추상의 매력이자 힘이다. - P.108

마크 로스코의 그림처럼 추상적인 매력이 돋보이는 곳에서 나 또한 오래 전 살았을 사람들을 떠올려 본다. 선명한 유적이 남았더라면 사람들은 곧잘 탄성을 질렀을 것이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흔적이 사라진 곳에서도 사람들은 그것들을 지나가기 보다는 그 시대때 살았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추측하며 그들을 떠올려본다. 그들이 살았을 시절의 이야기를. 그래서 원형이 있는 것 보다 더 큰 감동을 받고 오곤 한다. 그의 또다른 여정의 길은 문화유산답사기이기도 하지만 학술서 같기도 하다. 여정을 더하면서 더 깊게, 관심사를 꾸려나가기 때문이다.

여행이 중요한 이유는 인간의 경험을 확대시켜주기 때문이다. 해외여행에서 우리는 크게 세 가지를 보고 배운다. 문화유산 답사는 인류의 역사와 인문정신을 가르쳐주고, 도시 여행은 인간 삶의 다양한 면모를 엿보게 하며, 자연 관광은 바라보는 시야를 넓혀준다. 이 중 자연 관광에 해당할 천산산맥은 땅덩어리의 생김새에 대한 나의 상상력을 훨씬 뛰어넘어 경이로우면서도 감동적인 장면으로 남아 있다. -P.186

쿠차에서의 이야기가 인상적이었다. 사람의 힘으로는 도저히 만들어 낼 수 없는 장관의 모습이다. 이번 편에서는 그의 필력만큼이나 눈을 사로 잡았던 것은 실크로드의 많은 풍광들 때문이었다. 도저히 누군가가 만들어냈다고는 할 수 없을 정도로 정교하고, 아름다운 모습들이 내내 그의 사진 속에 있었다. 실제 봤다면 더없이 좋았을 모습들이 책 곳곳에 사진으로 실려있다. 보는 것 만으로 좋았다. 단순했던 선들이 그의 손과 입으로 하여금 누군가의 역사가 되고, 시가 되어 흘러간다. 좋았던 호시절의 이야기도 있고, 나락으로 떨어지던 시절의 이야기도 있다. 그리고 그 시절을 넘고 넘어 수세기가 지나 이방인의 발걸음이 더해져 책이 쓰여져 있으니 그저 신기하고 새롭게 느껴졌다.


귀신이 도끼질하고 신이 다듬었다. - P.1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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