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라는 남자 비채×마스다 미리 컬렉션 4
마스다 미리 지음, 홍은주 옮김 / 비채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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닮아 있는 모습


아빠는 알 것 같으면서도 모르겠다.

가까운 사람일 텐데 몹시 먼 사람 같기도 하다.

딸을 편하게 대하지 못할 때면 좀 안됐다는 생각도 든다.

관심과 애정을 원하는데 자꾸 헛짚는달까. 애정 표현이 때때로

이상해서 오해를 부르기도 한다.

아빠는 알 것 같으면서도 모르겠다.

그리하여 살짝 성가실 때도 있다.


그래도 내 몸의 절반은 아빠한테서 왔다. 생각해보면 참 신기한 일이다.

아빠는 대체 어떤 존재일까? - p.4


 마스다 미리의 글은 좀 독특하다. 음식을 하면서 나물을 무칠 때와 같은 맛이 난다. 나물을 무치다보면 심심한 맛이나 간을 더한다. 간을 보면 이제서야 맛이 삼삼하다. 삼삼하게 무친 나물은 짭조름한 맛이 나 입에 딱 맞았다면, 다음 날 냉장고에서 꺼내 먹어보면 방금 했던 맛이 나지 않는다. 다시 심심하게 느껴진다. 그녀의 글은 심심한 나물 맛 같다. 비교적 글밥도 많지 않고, 그림 또한 단순하게 그려져 있다. 어딘가 모르게 심심하게 느껴지면서도 그 맛에 중독되어 먹는 것처럼 마스다 미리의 글은 그런 여백 속에 톡하고 건드리는 작은 공감이 매력적으로 다가온다. 화려한 데코 없이 과하지 않는 모양이 사람들의 시선을 불러 일으키고, 소소한 이야기들이 시공간을 뛰어넘어 공감하게 만든다. 책을 펼칠 때만 해도 '아빠'와 '남자'라는 테두리 속에서도 국가간의 문화적인 차이가 많이 날 줄 알았다.


그런데 막상 책을 읽어보니 시공간을 뛰어넘어 아빠라는 이름의 폴더는 국경을 뛰어넘어 닮아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같은 동양의 문화권이라서 더 그런 것일지는 모르겠지만 어딘지 서툰 애정의 표현도 그렇고 좋아하는 것들도 닮아있다. 아마도 나이차대로 편차가 있겠지만 마스다 미리의 나이 때의 아빠라면 어딘가 모르게 닮아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성별이 다르고, 유년시절 살았던 시절이 달라서 그런지 그동안 형성해 온 가치관이 때때로 대립이 된다. 서로 닮은 꼴이면서도 다른 마음이 존재하고, 서로의 생각들이 달라 어색한 표현들이 서로에게 닿지 않고 빗겨 나가기도 한다. 어렸을 때는 이보다 조금 더 가까이 친근함을 유지하며 맞닿아 있었을텐데. 어느 순간부터 닮음이, 다름이라는 이름으로 바뀌어 버렸다.


어느 순간 어색해진 공기가 정화되지 않고 흘러가고 있지만 순간순간 내가 아빠의 이런 모습은 닮았구나 하는 자각이 들 때가 많다. 마음의 거리는 조금 멀어졌을지 모르지만 마스다 미리의 글처럼 내 몸의 절반은 아빠에게 있으니 어쩌면 닮은 것은 당연한데 느끼는 순간순간이 생경하기만 하다. 서로 다른 성별을 갖고 있어서 더 이해하기가 어려웠던걸까? 아빠의 소소한 즐거움이 나에게는 소소한 즐거움 보다는 마냥 보는 것 같은 착각이 들게한다. 그래서 어렸을 때 봐왔던 것들이 이어지고, 또 이어지다 보니 어른이 되고 나서는 그 시절에 만난 것들을 벗어나고 싶을 때가 많았다. 마스다 미리 역시 그런 아버지의 소소함을 이해 못하는 대목들이 나온다. 아버지의 성격이 급하지만 취비는 그와 대비된다. 낚시와 독서인 그의 모습들. 애정표현이 달디 달지는 않지만 자신만의 애정모드가 있는 남자. 마스다미리는 그렇게 아버지를 표현했다. 가족이기에 장단점을 모두 알고 있고, 그 안에서 겪는 희노애락의 모습들이 엿보인다.


시간이 지나면서 어느덧 나는 한 남자가 한 여자를 만나 아이를 닿던 시간을 훌쩍 넘는 시간 속에서 살고 있다. 내가 아니라 한 가정을 책임지는 가장으로서의 무게를 느끼며 살아가는 것 또한 많은 인내와 노력이 닿아야 했을텐데. 그것을 내가 많이 느끼고 있지 못하는 건 아닐까. 서로에게 애정은 있지만 표현하는 법을 몰라서 엇갈리는 시간들을 줄여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수많은 오해의 시간들이 아니라 조금 더 정겨울 수 있는 시간의 즐거움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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