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에 대하여 비채 모던 앤 클래식 문학 Modern & Classic
도리스 레싱 지음, 김승욱 옮김 / 비채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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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 것 그대로의 이야기


 <풀잎을 노래한다>를 통해 도리스 레싱의 작품을 접한 이후부터 꾸준하게 읽고 있는 작가군 중에 하나다. 그녀의 글은 전작주의를 하고 싶을 만큼 매력적이다. 책장 가까이에 두고 여러번 반복해서 읽고 싶은 작가는 아니지만 그녀의 책을 펼쳤다하면 다시 닫기까지 여러번 가슴에 생채기를 낸다. 책의 재미를 떠나서 글의 흡입력이 뛰어나다 보니 나도 모르게 도리스 레싱이 그려낸 이야기 속으로 빠져든다. 언젠가 느꼈을 미묘한 감정들을 끌어내고, 상황과 공간 속에서 갖는 이질감과 날 것들을 편집하지 않고 그대로 드러낸다. 그래서 더 도리스 래싱의 글에 심취하지만 여러번 반복해서 책을 읽고 싶지는 않다. 너무나 많은 감정의 결계들이 남아 잔상처럼 머릿속을 떠돌아 다녔다.


책을 펼치기 전에 황인숙 시인이 책의 소개를 했을 때만 해도 여러 산문집이 그러하듯 '고양이에 대한' 이야기가 시인의 말처럼 포근하고 따듯할 줄 알았다. 그러나 이 책은 도리스 레싱의 산문집이라는 것을 까맣게 잊는 나는 과감하게 책을 펼쳤다. 책의 첫문장을 읽고, 또 읽는 순간 아! 하는 탄성이 나왔다. 도리스 레싱의 책이라는 것을 간과한 죄(?)로 날 것 그대로의 고양이에 대한 이야기가 한 눈에 들어왔다. 내가 상상한 것 이상으로 그녀의 이야기는 고양이들의 희노애락을 넘어 몇 십년전 우리가 생각한 고양이들과의 혈투에 가까운 이야기이기도 했다. 총만 안들었을 뿐이지 '도둑 고양이'로 명칭되었던 길고양이들이 갖는 수모와 핍박, 고양이에 대한 이해가 없던 시절의 이야기는 더 날 것 같았다.


내가 살았던 시절 보다 더 오래 살았던 도리스 레싱의 시골에서의 이야기는 더 깊은 고양이들의 역사가 그려졌고, 사람과 동물의 대립은 결국 사람 손에 의해 생과 사가 좌지우지 되었다. 가족 중 누군가가 나서서 집안을 둘러싸고 있는 길 고양이의 개체수를 줄이기 위해 나쁜 역할을 자청 할 수 밖에 없었다. 대개는 그런 역할이 살림을 맡아서 하는 엄마나 바깥에서 일을 하는 아버지들이 맡아서 했다. 그래야 주변에 길 고양이들이 키우는 가축을 해코지 않지만 그것을 지켜보고, 일을 해야 하는 인간으로서는 참담했을 것 같다. 글 속에서는 도리스 레싱의 어머니가 그 일을 맡았고, 여러해 동안 어쩔 수 없이 길고양이들을 죽여나갔다. 그런 시간 속에서 길고양이, 집고양이의 수난이 계속되었고, 아끼는 고양이가 피해를 본 적도 있었다. 살림살이를 지키기 위한 최후의 방어막이었지만 고양이들 나름의 삶이었으니 글을 읽는 내내 눈을 감고 싶었다.


그러고 보니 책을 읽는 내내 고양이를 좋아하고 사랑하는 것 같지만 몇 십년전만 해도 고양이를 좋아하지 않았다. 어렸을 때만 해도 고양이들에 대한 인식이 너무 나빴고, 야옹~하고 울어대는 고양이 울음소리가 아이의 울음소리와 같다하여 불길하게 생각하기도 했다. 당시에는 고양이보다 강아지를 더 좋아했고, 더 예뻐 했었다. 시간이 지나 이렇게 고양이를 애틋해하고, 좋아하기까지는 시간이 지나야 했고, 사회적인 인식 또한 바뀌는 과정을 거쳐야 했다.


고양이를 죽이고, 잡아야 하는 날 것 그대로의 모습 뿐만 아니라 고양이의 출산과정이나 다정하게 고양이를 예뻐하고, 사랑하는 모습이 그려져 있다. 고양이가 태어나는 순간이나 함께 몸을 부비며 생활한 적이 없어 더 생경한 모습 마저도 도리스 레싱의 날카로운 필치로 그려져 있다. 산문집 마저도 도리스 레싱 답다는 생각이 들어 책을 읽는 내내 키우는 고양이 마저도 아름답고, 부드러운 필치를 그려내는 것 보다 더 깊은 피의 역사를 그려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고양이와 인간, 시골과 도시에서의 모습들 마저 다른 고양이의 이야기들까지. 벽과 벽 사이의 공간 속에서 살아가는 고양이들의 모습을 다채롭게 바라볼 수 있었다. 암흑의 시대를 넘어 충만한 아름다움을 함께 하기를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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