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강빵과 진저브레드 - 소설과 음식 그리고 번역 이야기
김지현 지음, 최연호 감수 / 비채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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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가가 들려주는 문학 속 달콤쌉싸름한 맛 

 

 맛있는 음식을 먹을 때면 늘, 기분이 좋다. 익숙한 맛이 주는 반가움과 언제 먹어도 맛이 변하지 않는 고유맛에 자꾸만 그 음식을 찾게 된다. 새로운 맛을 즐기기 보다는 익숙한 맛에 길들여지곤 했는데 어느 순간부터 취향이 변하기 시작했다. 먹지 않았던 도라지와 더덕의 쌉싸름한 맛을 느끼게 되고, 물컹하다고 잘 먹지 않았던 가지도 잘 먹는다. 책 읽는 습관 또한 맛있는 음식을 접하는 것과 같아서 늘 같은 루트로 책에 빠져 든다. 책의 굵직굵직한 가지와 숲을 걸어가는 인물들의 발걸음만 쫓다보니 숲에서 느꼈던 향취나 동물들의 발자국은 바라보지 못했던 것 같다.

 

<생강빵과 진저브레드>는 책 속의 세밀화와 같이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인물이 먹고 마시던 것들을 한아름 꺼내와 이야기를 만들어 낸다. 마치 우아한 레스토랑에 들어온 듯 메뉴에는 빵과 수프, 주 요리, 디저트 외에 그 밖에 부록의 이야기 조차도 이야기 속의 이야기가 탄탄하게 메워져 나간다. 어렸을 때 읽었던 동화 <하이디>와 <소공녀>를 비롯해 미국 문학의 대표적인 <톰 아저씨의 오두막>과 영화 속에서 깊은 인상을 남겼던 스칼렛 오하라의 앙칼졌던 모습이 엿보였던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이야기도 나온다. '단추로 끊인 수프'라는 민담과 함께 주 요리로 나오는 거위 구이, 바닷가재 샐러드의 진귀한 만찬도 등장한다. 인물들이 접하거나 먹을 수 있는 음식에서는 그들의 위치와 배경, 한계점이 드러난다.

 

누군가의 매혹적인 데이트의 매개가 되는가 하면 지금 당장 끼니를 때워야만 하는 비정함이 숨어있다. 누군가의 자부심이기도 하고, 지금 이순간만을 위한 음식이기도 하다. 낯선 제목을 가진 작품 보다는 익숙한 제목들이 주는 친근함이 컸던 책이었다. 그럼에도 그들이 먹고 마시던 음식들은 낯설었다. 어딘가에서도 보지 못했던 음식들과 과자들이어서 차근차근 지은이가 들려주는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대충 만드는 음식은 먹는 이로 하여금 알 수 있듯 정성스럽게 고아온 음식 또한 섬세하고 깊은 빠져든다. 이 책 역시 또다른 책을 읽는 것 처럼 섬세하고 세밀한 글 덕분인지 읽었던 책들을 다시 읽는 기분으로 책을 읽었다.

 

 J. 라이언 스트라돌의 소설 <위대한 중서부의 부엌들>(2018, 열린책들)을 펼치면 천재 셰프인 에바가 어린 시절 이도 안났을 때부터 그의 아버지는 이유식을 만드는 장면이 나온다. 자신이 개발한 최상의 맛을 아기에게 맛보이고 싶어서 이유식 조차도 어느 아이와는 다른 레시피로 만들어간다. 아이에 대한 사랑을 듬뿍 담은 아버지의 맛. 책의 초반에 나오는 내용이었음에도 라루스 열정과 사랑이 에바에게 줄곧 전해졌더라면 좋았을텐데 라는 애잔함 때문인지 잊지 못하고 있었는데 <생강빵과 진저브레드>를 읽고 있으니 다시 라루스의 부엌이 떠올랐다. 누군가에게 그토록 맛보이고 싶었던 맛이었을 만큼 진귀한 성찬의 이야기는 다시 문학 속으로 들어와 그 이야기를 읽고 싶게 만든다.

 

그중 가장 읽고 싶고, 먹어보고 싶었던 작품은 해리엇 비처 스토의 <톰 아저씨의 오두막>과 오 헨리의 <아르카디아의 단기 투숙객들>과 J.M 바스콘셀로스의 <나의 라임 오렌지나무>다. 일러스트를 통해 소설 속에 등장하는 음식들을 맛 볼 수는 없었지만 대체 할 수 있는 것들을 알려준다. 이것이 상상의 음식인지 아니면 지금도 어느 나라에서는 존재하고 있는 음식에 대한 연유에 대해서. 음식과 더불어 어렸을 때 느꼈던 생각들을 넘어 책을 다시 한 번 읽어보고픈 다음 장면에 대한 이야기 또한 책을 더 펼쳐 보고 싶게 만든다. 너무도 유명해 나 한 명쯤 안 읽었더라도 괜찮다고 생각했을 작품 또한 다시금 쳐다보고 싶을 정도로.

 

생강빵과 진저브레드는 같은 뜻을 가진 단어이지만 어감이 주는 맛이 틀리다. 번역을 하는 이가 아니기에 세밀한 것에 대해 기민하지는 못하지만 번역을 하는 이의 수고로움과 적확하고 새로운 단어에 대한 고충을 알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좋아하는 소설을 한층 더 좋아할 수 있는 내밀한 시간이었기에 더 충만하고 든든한 마음으로 책을 덮었다.

 

옛날 이집트에서는 신의 이름에는 신의 정수가 깃들어 있어서 그 이름이 알려지면 신이 힘을 빼앗긴다고 믿었다. 조선 양반들은 본명에 그 사람의 운명이 들어 있다고 여겨서 웬만하면 부르지 않고 자나 호를 따로 지어서 불렀다. 아끼는 자식이나 애인에게는 자기들끼리만 아는 은밀한 애칭을 사용하기도 한다. 너무 신성해서, 너무 귀해서, 너무 사랑해서, 마치 귀중한 물건을 서랍 안에 고이 감추듯이 단어들을 독점하고 싶을 때가 있다. - p.2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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