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하맨션
조남주 지음 / 민음사 / 2019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익숙한 이야기의 메들리.


우리 시대의 이야기를 <82년생 김지영>으로 그려냈다는 평가를 받은 작가의 다음 이야기가 궁금했다. <사하맨션>으로 그려낸 이야기는 쉬이 잘 읽혔으나 기업의 인수로 탄생한 사각지대에 놓인 사하의 공간은 우리가 뉴스만 틀었다 하면 나오는 뉴스의 연장선상의 이야기였다. 모든 것이 안정되어 있는 타운에서의 삶과 그 삶을 빗겨져 있는 삶은 천지차이다. <사하맨션> 속의 인물들은 높은 경제력과 안정된 위치 속에서 주민권을 획득한 이들과 달리 비밀스럽고 폐쇄적인 공간 안에서의 삶을 사는 이들을 그리고 있다.

마치 비구름을 안고 사는 이들의 모습은 그 어떤 국가의 혜택 없이 그저 나고 자란다. 음습한 기생식물처럼 저마다의 비밀을 안고 살지만 그 마저도 녹녹치 않았다. 미래의 사회 속에서도 계급은 존재했고, 윤택한 타운 사람들과, 주민권이 없지만 간단한 자격 심사를 통해 받을 수 있는 2년간의 체류권을 받은 이들은 건설현장과 물류창고등 정리하고 청소하는 일을 맡는다. 그마저도 자격이 없는 이들이 사하맨션의 사람들이었다. 고립된 삶을 사는 이들의 이야기는 고립된 섬을 사는 것처럼 조용하며, 은밀하다.

함께 살다가 의료적 혜택을 받지 못하고 부모는 죽고 맨션에 살고 있는 할머니에게 의탁을 하는 경우도 있고, 진경과 도경 남매처럼 살인을 저지르고 몰래 숨어사는 이들도 있다. 마치 경계를 두듯 음습한 공간의 이야기는 절망과 피로와 고통이 쌓여있다. 무엇 하나 그들에게 내어줄 것이 없는 것처럼 무자비한 고통이 만연되어 있었다. 그들에게 과연 빛이 있는걸까. 도경도, 진경도, 우미도, 꽃님이 할머니도 함께 사는 공동체의 이야기지만 밝은 세상으로 나오지 못한 이들의 이야기는 더 이상의 진전이 없다. 고여있는 물처럼 한 곳에서 계속해서 맴돌아서 나중에는 이 이야기가 어디까지 뻗어나갈까 하는 생각만 들었다.


밤이 지나자 절망과 피로와 실제의 고통이 뒤섞여 시위대는 나른한 기운이 퍼졌다. 무리는 눈에 뛰게 작아졌고 구령에는 힘이 없었다. 담장을 향하는 사람들의 속도도 느려졌다. 그때 낡은 남색 트럭 한 대가 시위대 끄트머리에 와 서더니 뭔가를 내려놓고 떠났다. 얼기설기 사람 모양을 만들어 가면을 씌운 일곱 개의 허수아비 인형, 회장과 총리단 대변인의 사진, 국회 모형. 시위대가 갑자기 흥분했다. 약속한 듯 이형과 사진을 들어올려 머리 위로 빠르게 빠르게 전달해 인파 한가운데에 패대기치듯 쌓더니 라이터를 당기기 시작했다. - p.130


이야기는 각각의 사하맨션에 사는 이들의 미스테리 같은 이야기를 실타래같이 풀어나가지만 공간을 건너 건너 가다보면 이야기의 끝은 우리가 상상하지 못한데 가서 뻗어나간다. 이야기의 변주가 갑자기 훅하고 튀어나간다. 지금까지의 모든 이야기가 가상세계를 그리고 있지만 이들이 처한 상황이 우리의 상황과 닮아있어 조남주 작가가 그려낸 이야기가 다르게 느껴지지 않았다. 다른 공간 안에서의 이야기지만 우리에게는 늘 빛이 있다면 그늘의 공간이 있음을 잘 알고 있다. 맨션 속 사람들의 이야기는 우리가 살고 있는 공간과 다르지 않았고, 그들이 겪는 면면 속에서는 우리 또한 그 경계 속에 있다.


그러나 후반부의 이야기는 그들의 모든 이야기가 상반되어 갑작스런 이야기의 전개와 결말이 무엇을 이야기 하는지 잘 모르겠다. 진경과 사라, 만, 이아, 수, 도경, 은진, 꽃님이 할머니, 우미의 이야기를 읽는 순간마다 보여지는 사하맨션의 존재는 사그러지고, 모호한 공간 속에서의 이야기만 남을 뿐이었다. 이야기가 잘 읽혀진다는 장점을 제외하고는 그 어떤 것도 마음에 담아지지가 않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