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결의 재구성 - 유전무죄만 아니면 괜찮은 걸까
도진기 지음 / 비채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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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보다 더 재밌는 밀도의 이야기.


 소설만큼은 편중을 두지 않고 책을 읽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다 어느 순간 내가 우리나라 소설 보다 외국소설을 더 즐겨읽구나 하는 자각이 들었다. 선호하는 작가들의 작품을 제외하고는 일부러 골라서 읽지 않다 보니 외국의 소설은 풍부한데 반해 우리나라 작가는 손에 꼽을 정도다. 그 중 한 명이 도진기 작가다. <악마는 법정에 서지 않는다>를 시작으로 <정신자살> <카 트라비아타의 초상> <악마의 증명> <합리적 의심>까지 그가 그린 이야기에 매료되어 꾸준히 책을 읽어왔다. 추리 소설 속에서 만나지 못했던 인물의 사건과 특이한 이름들이 인상에 남아 한 권씩 그의 책을 독파하다 보니 어느새 그가 활발하게 써내려간 이야기들을 기다리게 되었다.

<판결의 재구성>은 도진기 작가가 그동안 걸어왔던 판사라는 직무에서 겪었거나, 판결이 난 사건 중에서 '합리적 의심'을 해볼만한 사건들을 다시 해부해 보는 책이다. 이미 공소시효도 지났고, 사람들 기억 속에서 잊혀진 이야기들을 '다시보기'로 깊이 들여다 볼 수 있다. 판사에서 변호사로 된 후에 그가 오랫동안 다양한 매체에 연재했던 원고들을 한데 모아 놓은 책이 바로 <판결의 재구성>이다. 부제로는 유전무죄만 아니면 괜찮을 걸까 하는 물음이 그의 존재한다. 판사로서 재직하는 동안 많은 사건의 판결을 내렸지만, 많은 이들은 판사의 오랜 결정에 실망하는 경우가 많았다. 서로의 법감정이 다르다 보니 '갭' 차이가 많이 났고, 왜 그들은 그렇게 밖에 판결을 할 수 밖에 없었는가에 하는 의문이 평소 들기도 했다.


도진기 작가는 그런 사람들의 의심과 법을 다루었던 판사로서의 고민과 생각을 깊이 고찰한 책이기도 하다. <판결의 재구성>에 나오는 사건은 하나같이 소설 보다 더 소설같은 현실의 이야기다. 책을 읽다보니 너무나 소설 같아 그들의 이야기를 기울이다 보면 어느새 그들의 사건을 다룬 판결의 이야기가 논리정연하게 나와있다. 그러나 내가 생각한 판결과는 달리 심증은 있는데 물증이 없어 범인을 놓치고 만다. 이야기 끝에 나오는 추신이 그렇게 무서울 수가 없다. 뒤통수를 한 방 맞은 느낌이었다.


2004년 사라진 변호사 사건을 시작으로 사건은 시공간을 뛰어넘어 때때로 미궁속으로 빠진다. 판결도 1심과 2심이 서로 뒤바뀐다. 그러나 도진기 작가가 거론한 많은 사건들은 합리적 의심을 추구할 만큼 보이지만 강렬하게 잡을 수 없는 끈들이 꽁꽁 묶여지지 않았다. 어딘가 석연치 않는 재판의 결과들이 지난 날의 사건을 되돌아보게 한다. 무엇보다 이 책의 매력은 어려운 법의 이야기를 법을 하나도 모르는 독자로 하여금 순식간에 사건 현장과 판결을 내리는 현장 속으로 데려간다. 더불어 판결을 내리는 판사의 고뇌와 법의 허점을 생각하게 만든다. 판결을 내리는 판사도 신이 아니며, 인간으로서 법을 공부한 이의 판결이 어떻게 죄를 저지른 이에게 법을 적용하여 내리는 가에 대해 알려준다.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그들의 이야기는 그 어떤 책보다 판사라는 직무를 하는 이의 마음을 생각하게 만든다.


깊은 이야기 너머 판사였던 그가 작가가 되기까지의 글쓰기와 그가 오래 전에 즐겨 읽었던 책들을 맛깔나게 이야기한다. 살인사건, 사망사건등 많은 의혹이 많은 사건들의 이야기를 읽다보면 흥미로운 부분이 많지만 정신적으로 그들의 판결을 보고 어지러울 때가 많은데 그때 그의 이야기가 단비처럼 느껴졌다. 판사의 역량과 작가로서의 상상력이 어디로 나오게 되었는지를 알 수 있는 시간이었다. 소설을 읽을 때도 그의 팬이 되었지만 이 한 권의 책만으로도 더 깊은 팬심을 드러낼 것 같다. 그만큼 소설 보다 더 깊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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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계발애 무관심한 법률가들이 있다. 일생의 젊은 시절에 안정적인 직업을 얻었기에 이후로는 게을러지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사회는 특정 시기에 도달한 개인의 성취를 빛의 속도로 추월한다. 안도감은 발전을 막고, 뒤처지는 건 순간이다. - p.8


 정서적으로 2심 공격하기는 쉽지만, 이런 측면도 있다. 1심과 같은 결론이 1회성이라면 몰라도, 재판이란 그렇지 못하다. 법률 적용으로서의 판결은 유사한 사안에서도 이렇게 판단한다는 일관성이 전제되어야 한다. '다른 범죄를 저질렀다는 강한 의심이 있을 때면, 기소가 되지 않았어도 책임을 물을 수 있다.' 이것을 일반으로 우리 재판 절차에서 채택할 수 있을까. 도무지 불가능하다. 일반의 오해와 달리, 재판이란 원래 최종적인 정의에 도달하려는 목적을 가진 절차가 아니다. 솔로몬 같은 판관이 개별 사안에서 지혜를 발휘해 현명한 판결을 내리는 것이 사람들이 생각하는 재판의 원형적 모습일 것 같다. 하지만 솔로몬이 늘 옳은가? 만일 그가 미친다면? 솔로몬도 감정이 있는데, 미운 놈 오면 괜히 없던 죄도 괜찮은 사람이니까 믿을 만하다고 치자. 그런 판사가 수십, 수백, 수천 명으로 늘어난다면, 그래도 다 개인의 인격을 믿고 맡겨야 할까? 그렇지 못하다. 인간은 믿을 수 없다. 그래서 절차를 만들어놓았다. 형사소송법이라는 쇠사슬을 친친 감아 놓았다. - p.20


철학적, 뇌과학적으로 인간에게 자유의지가 있느냐는 물음에는 달리 말할 수도 있고, 여전히 논쟁거리이다. 하지만 우리 형법은 단호하다. 그런 항변은 받아들이지 않는다. 인간은 기본적으로 자유의지가 있다. 충분히 다르게 행동할 수 있는데도 그렇게 행동했기에 책임을 묻는 것이다. 이것이 형법의 태도다. - p.60


재판은 무죄추정, 마음은 유죄추정. 이것이 법관의 현실일지 모른다. 기소된 사건 대부분이 유죄이기에 객관적 통계에서 우러나는 그 선입견은 완전히 지울 수 없으리라. 그래서 증거 가뭄인 재판에서 공법자의 진술이 나오면 판사는 속으로 쾌재를 부른다. 어쩌면 인간으로서나 직업인으로서나 자연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그것이 단지 증거의 빈자리를 채움으로써 유죄 판결서의 모양을 갖추게 되었다는 안도감이라면 한 번 더 숙고해봐야 할 것 같다. 공범자의 마음은, 인간의 마음은 진정한 미궁이니까. - p.157


법은 '바람직한 인간'이 아니라 '현실의 인간'을 가정해야 한다. - p.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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