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끄러움 비채 모던 앤 클래식 문학 Modern & Classic
아니 에르노 지음, 이재룡 옮김 / 비채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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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리고 싶은 감정의 봉합.


 아니 에르노의 글은 송곳같다. 솔직하고 날카롭다. 침의 날카로운 부분을 만지듯 문장을 읽을 때마다 마음이 따갑게 느껴진다. 그녀의 어떤 책을 읽어도 책이 가지고 있는 무게 보다 더 날카롭고, 무거움이 느껴져 책을 읽고 나면 이전보다 훨씬 더 큰 무게감으로 침잠하게 만드는 작가다. 그녀의 글을 읽고 있다보면 '아니 에르노 화법'으로 글을 쓸 수 있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많아진다. 마치 다른 이들이 레이먼드 카버와 같이 쓸 수 있다고 착각하는 것처럼. 그러나 그저 솔직하고 간결한 문장 만이 그녀의 글을 대변하는 것은 아니다. 이미 그녀의 연인인 필립 빌랭이 아니 에르노와 같은 글쓰기로 책을 펴냈지만 많은 이들로 하여금 혹평을 자아냈다.


놀랍도록 아니 에르노의 글은 자신의 모든 것을 보여주듯 걸리는 것 없이 글로 표현해낸다. 자신에 대한 글을 써도 써야 할 것과 쓰지 말아야 할 것들에 대한 자가검열을 아니 에르노는 하지 않는 것 같다. 자신의 모든 기억들, 가리고 싶은 감정의 봉합을 마저도 글쓰기의 재료로 쓰고 있다. 누군가에게 보여주고 싶지 않는 기억들과 감정들, 상황들을 거르지 않고 간결하게 흑백티비를 보듯 전진하며 아니 에르노의 유년시절을 체감하게 된다. <부끄러움>은 아니 에르노의 각인된 기억들을 시작으로 마모되지 않는 소녀의 열망과 앞으로 더 나아가고 싶은 소녀의 날큼한 눈빛이 더해진 책이다.


부모님의 테두리 속에서 살아가고 있지만 때때로 포용적인 삶 속에서 폭력적인 부모의 두 얼굴을 마주 하는 소녀의 각인된 인상들이 강렬한 생채기를 남긴다. 시간이 지나도 잊혀지지 않는 균열을 어린 아니 에르노가 보았다. 시간의 영역은 때로는 기억을 미화시키지만 간결한 문장과 덧대지 않는 이야기로 시간의 간격을 메워나간다. 안전한 테두리의 양면성과 그 속에서 억눌리는 여자아이의 불온한 응시는 당시 아니 에르노가 어떤 생각을 하고 감정적인 체험을 했는가에 대한 고백이기도 하다.


감정적인 시각을 넘어 어떤 것에도 흔들리지 않는 그녀의 고백은 흔들리지 않는 심지 같다. 어떤 수식어도 넣지 않는 담백하면서도 고독함이 느껴진다. 많은 수사여구 없이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 당당함 때문인지 자꾸 그녀의 글을 읽게 된다. 각각의 나이에 맞는 시간의 연속들. 당시의 나. 나를 만든 당신들의 시간들. 가깝지만 먼 뷰파인더 속에 나를 그리는 것처럼 아니 에르노의 시간은 아직도 식지 않는 감정들이 여전히 그 시간 속에 존재해 있었다. 누군가는 그런 껄끄러운 감정들을 잊고 살아야 한다지만 자신의 모든 시간이 그녀의 글이자 아니 에르노다. 아니 에르노의 세계는 그래서 명징하고, 간결하지만 우아하다. 콕하고 집어주는 감정의 결계가 콕 하고 박힌다. 만나고 싶지 않지만 그녀가 알려주는 상황적 감정의 이야기라면 시간을 돌려 나의 이야기들을 돌려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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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와 아버지가 미소를 짓거나 공범자 같은 폭소 또는 농담으로 서로에게 애정 표현을 할 때면 예전으로 돌아간 것 같았다. 그 사건은 그저 '나쁜 꿈'에 불과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난 뒤 그런 애정 표현은 오로지 그것이 표현되는 순간에만 의미가 있을 뿐 미래에 대해선 어떤 것도 보장할 수 없음을 알게 되었다. - p.29


내게 중요한 것은 나 자신이나 주변 세계를 생각할 때 사용했던 단어들을 되찾은 일이다. 정상적인 것과 용납될 수 없는 것, 심지어 생각조차 할 수 없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그러나 1995년의 나라는 여자는, 조그만 자기 도시와 자기 가족 그리고 사립학교만 알고 있어서 사용할 수 있는 단어가 제한되었던 1952년의 소녀 속으로 다시 들어갈 수 없다. 그 소녀 앞에는 살아야 할 무한한 시간이 놓여 있었다. - p.46~47


(묘사를 하는 데에서 정확성 외에는 아무런 원칙도 세우지 않은 채 유년 시절 무심히 지나갔던 거리를 처음으로 묘사하다 보니. 그것은 그 거리들이 내포하고 있었던 사회적 계급을 보다 명백히 드러내는 일이 되었다.거의 종교적 금기에 가까운 것을 깼다는 느낌. 에들랭의 별장! 푸른 등나무 꽃! 샹드쿠르스의 뽕밭! 색깔이나 이미지로 내 마음에 깊이 악인된 사랑의 지도를 딱딱한 선이 그러진 지도로 바꿔치기하니, 환상은 깨졌지만 그 명백한 진실은 부정할 수 없다. 게다가 기억도 생생한데, 1952년에는 넓은 잔디밭과 자갈을 깐 오솔길이 있는 정원을 둘러싼 높은 담장을 바라보면 대번에 그 안에 사는 사람들은 우리와 같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 p.56~57


그리고 인생의 시간은 '무엇 무엇을 해야 하는 나이'로 구분된다. 영세를 받을 나이, 담배 피울 권리가 있는 나이, 음담패설이 오갈 때 그대로 앉아 있을 수 있는 나이. 직장에서 일하고 댄스파티에 가고 '데이트' 할 수 있는 나이. 군대 갈 나이. 오락 영화를 볼 수 있는 나이. 결혼하고 아기를 가질 수 있는 나이. 검은 옷을 입는 나이. 더 이상 일하지 않는 아니. 죽는 나이. 이쯤되면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게 되고 모든 것이 완성된다. - p.66~67


('사립'이란 단어는 항상 결핍, 공포, 폐쇄와 연관되어 있다. 심지어 '사생활'이란 단어까지도. 글쓰기란 공개적인 것이다.) - p.94


변함없는 인간에게 위안을 주는 자연의 회귀성, 한 여름의 히트곡, 유행했던 벨트, 필히 소멸될 운명의 사물들에 추억이 고착된 나에게, 그리고 필경 내 세대의 모든 사람들에게 기억이란 나의 항구성 혹은 나의 정체성에 대한 어떤 증거도 제공하지 않는다. 그것은 단지 나의 분열, 나의 역사성을 느끼게 하고 확인시킬 뿐이다. - p.103~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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