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인들의 몰락 1 블랙펜 클럽 BLACK PEN CLUB 34
켄 폴릿 지음, 남명성 옮김 / 문학동네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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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대한 서사시의 시작점


 켄 폴릿의 책이 출간될 때마다 족족 사고 있다. 전쟁문학에 관심이 많아 한 권씩 쟁기다보니 시리즈의 책들도 여러권 모였는데 책을 사는 것도, 읽는 것도 진도가 나지 않았다. 정말 재밌을까 싶어 시작하게된 20세기 3부작 시리즈 중 첫번째 책인 <거인들의 몰락> 1권을 펼쳐 들었다. 배경은 세계 1차 대전이 일어나기 전인 1911년부터 이야기가 시작된다. 미국과 잉글랜드, 스코틀랜드, 프랑스, 독일, 오스트리아, 러시아, 웨일스를 대표하는 인물들의 이야기가 그려진다. 마치 국가를 대변하는 것은 물론 그들이 처한 위치에 따라 그들이 하는 역할이 저울의 추처럼 묵직하게 다가왔다.


영국 국왕 조지 5세가 런던의 웨스트민트터 성당에서 성대하게 대관식을 거행하던 날 웨일스에 있는 빌리는 13번째 생일을 맞았다. 13살의 어린 나이인 소년은 학교가 아닌 처음으로 깊은 갱에 들어가 일을 하기도 한 날이기도 했다. 애설과 빌리의 아버지는 노조위원장으로 많은 광부들의 일을 대변해주고 있는 이였다. 가부장적이지만 무엇보다 그들의 권리를 내세우기 위해 노력하는 이로 그려진다. 처음 갱에 들어간 어린 소년의 치기와 무서움, 호된 신고식은 '빌리'라는 인물을 부각시키며 이야기가 나아간다. 빌리의 눈으로 바라본 광부들의 모습은 얼굴만큼이나 각기 다른 성격의 이들을 훤히 비춰준다. 묵직한 이들도 있었고, 야비하면서도 누군가를 골려주는 이들의 천박함도 엿보였다. 무섭지만 누군가의 놀림감으로 평생을 그의 이름 앞에 닉네임으로 불리는 것이 싫어 꿋꿋하게 이겨낸 빌리.


빌리가 사우스 웨일스 애버로언의 일을 전한다면 빌리의 누나 애설은 피츠허버트 백작의 하녀로 일하며, 그들의 일상을 눈에 보이들 그려내고 있다. 아름다운 동시에 영민하고 재치가 있는 애설은 백작을 흠모한다. 이미 피츠에게는 러시아 공주인 아내 비가 옆에 있지만 아름다운 외모와 영특한 재주가 있는 애설을 마음에 들인다. 대외적으로 그는 오랜시간 축적해온 부와 왕실의 교류로 은밀한 정보까지 습득하며 이야기를 논한다. 각각의 인물들이 그려내는 삶들이 신분에 따라 다른 위치를 지정하고 있고, 상류층에 속하는 피츠허버트 백작을 비롯해 그들이 만나는 국왕과 울리히 가문의 발터의 모습은 노동현장에서 투쟁하는 이들과는 다른 격식으로 그들의 이야기를 전한다.


그들이 만든 의식과 권위, 자존감, 명예, 평판만이 그들을 지탱하고 있기라도 한 듯 부를 축척하는 과정을 리얼하게 그려내고 있다. 빌리가 몸담고 있는 광산에 사고가 났을 때 피츠에게 막대한 자본이 들어오는 창구 중 하나임에도 피츠 백작은 스스로 나서서 그들을 돕지 않았다. 상류층과 하류층의 삶의 대비와 그들이 생각하고, 걱정하는 것들이 판이하게 달랐다. 피츠가 백작 지위를 가지고 있으면서 부인과 동생 모드, 험 고모를 데리고 가정과 밖에서의 일을 평온하게 잘 보는 듯 하지만 남자로서 피츠는 바람둥이에 불과하다. 마음에 맞는 여자들과의 하룻밤이 잦은 동시에 하녀인 애설과 사랑하는 사이였지만 그녀가 아이를 갖는 순간 그동안의 애정은 싹뚝 잘라버리는 나쁜남자다.


비정하기도 하고, 책임감이 적는 피츠와 비슷한 인물이라면 러시아의 그리고리와 레프 형제의 이야기를 거론할 수 밖에 없다. 형이 온화하고 책임감 강한 남자라면 레프는 그야말로 시정잡배다. 책임감도 일말의 양심도 없는 그의 행동 때문에 미국에 가서 잘 살아려던 형의 꿈을 짓밟아 버리고, 살인을 저지른 후 형이 모아온 돈과 배 티켓을 가지고 떠나 버린다. 모든 책임은 형에게 지어놓고서. 그들의 대척점에 선 이가 독일을 대표하는 인물 발터다. 피츠와 친구인 동시에 피츠의 여동생인 모드와 사랑하는 사이다. 서로에게 끌리고, 사랑하는 마음을 품으며 좋아하던 시기에 그들에게 닥친 먹구름으로 그들은 아슬아슬한 사랑을 한다.


1914년 6월 세르비아의 테러리스트가 오스트리아 황태자를 살해하는 사건이 일어난다. 당시 영국과 프랑스가 식민지 지배의 우위를 점하고 있었고, 후발주자로 독일이 따라오고 있던 상황이었다. 영국와 독일이 서로 맞부딪히는 상황에서 오스트리아의 사건이 시발점이 되어 각 나라의 이익과 충돌되다 보니 서로의 소용돌이로 빠져들게 된다. 세르비아 곁에는 러시아가 있고, 오스트리아에게는 동맹국 독일이 한데 뭉쳐져 있었다. 독일이 나서자 영국과 프랑스가 연합군이 되어 일으킨 전쟁이었다.


전쟁이 일어나기 전, 일어나는 과정이 각 인물의 역할에 따라 세밀하게 그려낸다. 700페이지에 가까운 내용이라 1권의 이야기가 많은 이들의 인생은 물론이고, 각 나라의 운명이 미친 폭풍 속으로 빠져드는 것을 실감나게 보여주는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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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은 공동의 적에 맞서 온 나라를 하나로 뭉치게 하고 들끓는 사회적 불만을 잠재운다. 전시에는 파업도 일어나지 않을 테고 공화주의를 외치는 주장은 비애국적인 행동으로 보일 것이다. 심지어 참정권을 요구하는 여자들의 목소리도 잠잠해질지 모른다. 그리고 개인적으로도 그는 이상하리만치 그 전망에 이끌렸다. 전쟁은 그가 쓸모 있고 용감하다는 걸 증명해줄 테고, 국가에 이바지함으로써 평생 누려온 지나친 부와 특권을 되갚을 수 있는 기회였다. - p.106


"우리가 그래도 된다고 용인할 때만, 노동자는 지배계급보다 수적으로 우세하고 힘이 있어. 지배계급은 전적으로 우리에게 기대고 있지. 그들을 위해 음식을 만들고 집을 짓고 옷을 만드는 건 우리야. 우리가 없으면 그들은 죽어버릴걸. 우리의 용인 없이 지배계급은 어떤 것도 할 수 없어. 항상 그걸 명심해라." - p.176


국제관계만큼 끌리는 분야도 없었다. 우호와 적대, 동맹과 전쟁. 십대 시절 그는 아버지가 위원으로 속해 있던 상원외교위원회의 회의를 여러 번 참관했다. 연극 관람보다 훨씬 흥미진진한 체험이었다. 아버지는 말했다. "이제 바로 국가들이 평화와 번영을 이국하는 방식이야. 전쟁과 파괴, 기근일 수 있지. 세상을 바꾸고 싶다면 외교야말로 네가 세상에 가장 큰 공헌을, 혹은 해악을 남길 수 있는 분야란다." - p.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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