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탕에서 생긴 일 비채×마스다 미리 컬렉션 1
마스다 미리 지음, 홍은주 옮김 / 비채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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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소하지만 일상적인 이야기


 마스다 미리의 책은 격한 공감을 일으키기 보다는 잔잔한 파동을 자아낸다. 그녀의 만화나 에세이 모두 같은 결을 갖고 있어서 읽는 내내 이런 감정의 결들이 있구나, 싶을 때가 많이 있었다. 어떻게 보면 시시콜콜하고, 어떻게 보면 잔잔하지만 마음 속 깊은 파동이 수면 아래 넘실넘실 춤을 시간들이었다. 처음 책을 마주 할 때는 때때로 무덤덤하게 읽히지만, 책을 덮고 나면 마스다 미리가 한 이야기가 머릿속에 떠올라 나도 모르게 빙긋 웃게 된다.


어렸을 때는 호기심으로 여탕이 아닌 남탕에서의 모습이 궁금했다. 여탕에서 생긴 일이야 언제나 비슷비슷한 풍경이라 별반 다르게 느껴지지 않았다. 예전에는 많은 이들이 집에서 목욕을 하기 보다는 목욕탕에서 때를 벗기던 시절도 있었지만, 요즘에는 집에서 가볍게 샤워를 하는 공간도 있을 뿐더러 매일 같이 운동하는 이들이 많아 집 주변에 목욕탕이 많이 사라졌다. 사람이 많이 부대끼는 것이 싫어 해가 뜨지 않는 새벽시간을 이용해 목욕을 가던 겨울 날의 발걸음을 더 이상 하지 않아도 되었다. 어린 아이였을 때 엄마 옆에서 비누거품을 내며 장난하던 장소는 사라지고, 다른 건물이 들어선 것처럼 목욕탕은 은밀하면서도 소소한 일상적인 모습이 자주 노출된다.


문득 샤워실에서 운동후 샤워를 하다보니 마스다 미리가 이야기한 '루틴'이 생각나 한참을 웃었다. 목욕하는 것은 같지만 저마다의 씻는 방법은 각자 다르다는 이야기. 그래서 그런지 씻다 말고 주변을 휘익휘익 둘러보며 그들이 씻는 방식을 곁눈으로 쳐다보기도 했다. 밥을 먹는 것 만큼이나 목욕을 하는 방법, 옷을 입기 까지의 과정들, 나이에 따른 옷 입는 방법이 많이 달랐다. 일상적인 이야기라 그저 지나칠 수 있었던 이야기들을 작가는 허투루 놓치지 않고 목욕탕의 이야기와 자신의 유년시절 이야기를 곁들여 보다 풍성하게 꾸며 낸다.


운동을 하고 개운하게 몸을 씻어 내리는 것처럼, 목욕 후 찬바람에 머리를 말리며 시원하게 하루는 보내는 것 만큼이나 찬우유를 입에대고 한모금 쪼옥하고 마시면 그만한 맛이 또 그렇게 매력적일 수 밖에 없다. 소소하지만 일상적인 순간에서 짧지만 강하게 쾌감이 느껴지는 순간이기도 하다. 몇 해전 부터는 센터에서 운동 후 샤워를 하다보니 목욕탕을 갈 일이 없는데 마스다 미리의 책을 읽고 나니 대중목욕탕에 가서 뜨거운 탕 안에 몸을 누이고 싶어졌다.  

  

내 미래가 반드시 여기 있다고 생각했던 젊은 날의 물음이다. 어른이 되면 그대로 이 동네에서 결혼해, 목욕탕에 아이들을 데려오고, 아줌마가 되어 누군가와 서로 등을 밀러줄 거라 믿었던 시절. 이십 년 후의 내 모습을 엿보았더라면 상당히 놀랐겠지. 고양을 떠나, 미혼, 서른일곱 살 여자. 열일곱 살의 나는 지금 내 일상에서 느끼는 행복 같은 건 상상하지 못할 거다. - p.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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