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도 일기 (리커버 에디션)
롤랑 바르트 지음, 김진영 옮김 / 걷는나무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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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 여백이 슬픔으로 느껴지는 책


 그의 책은 늘, 어렵다. <사랑의 단상>(2004, 동문선)을 읽다가 도저히 그가 정의한 의미들에 대한 뿌리를 파악하지 못해 다시 책을 내려 놓았다. 그러다 다시 펴서 읽고, 접었다를 반복한다. 어렵다는 것을 알지만 그의 글이 읽고 싶어 펼쳐든 <애도 일기>는 <사랑의 단상> 만큼은 어렵지 않지만 한 페이지에 한 줄의 글귀 혹은 짧은 메모들이 그의 감정을 응축해 적어 놓았다. 그가 사랑한 어머니를 읽고 써내려간 이야기는 빈 여백 마저도 흐느끼는 눈물로 느껴진다. 많은 말을 하지 않아도 느껴지는 슬픔이 그 속에 깊이 베어 있었다.


짧은 문장, 하나의 시어를 파악하기 어려워 늘 시를 어렵게 생각하지만 롤랑 바르트의 글은 시가 아니지만 짧은 문장이 주는 여운이 굉장하다. 산문을 좋아하고, 소설을 좋아하지만 많은 말을 하지 않아도, 오히려 많은 말을 하지 않아 느껴지는 슬픔이 더 배가 되는 것 같다. 더욱이 이 책은 김진영 번역가의 첫 산문집이자 유고집인 <아침의 피아노>(2018, 한겨레출판)에 관한 소식을 듣고 나니 더 깊이 느껴진다. 애도란 무엇이며, 슬픔의 무게가 무엇인지를 깨달을 수 있는 책이다.


어머니의 부재에 따른 격렬한 슬픔을 표현하는 아들의 모습이, 어머니와 함께 있을 때 둥지를 떠나고 싶은 자유의 갈망이 어머니를 떠나보내고 나서는 다시 자유를 느끼고 싶지 않다던 그의 말이 인상적으로 남았다. 언어로서 우는 슬픔과 비명, 흐느끼는 눈물이 책 곳곳에 느껴진다. 떠나보내는 것에 대해 서툰 나는 죽음이라는 것에 대해 될 수 있으면 피하고, 보지 않으려 했는데 그의 글을 읽고 있으면 슬프면서도 동시에 아름다운 미문이라는 생각이 든다. 슬픈 마음을 담아 비명처럼 써내려간 이의 글을 보고 미문이라니. 모순적인 말이지만 롤랑 바르트는 정말 그 순간 마저도 글이 빛난다.


여백이 많은 책을 좋아하지 않지만 이 책에 있어서만은 여백이 꼭 필요한 책이 아닌가 싶다. 무거운 마음을 다해 읽고, 그의 슬픔을 동시에 느꼈다. 1977년 10월 25일 그의 어머니 앙리에트 벵제가 사망하고 다음날 부터 써내려간 그의 일기. 그의 감정에 따라 각기 다른 필기 도구로 써내려간 쪽지의 글들. 그러다 그는 그의 어머니가 있는 곳으로 갔다. 격렬한 슬픔을 이기지 못한 그의 이야기다 보니 30년이 지난 후에야 그의 원고가 책으로 나왔고, 쪽지의 모습 그대로를 편집해 세상에 나왔다.


어머니와의 깊은 애착과 죽음으로 인해 겪는 상실의 아픔을 잘 보여주는 책이라 읽는 내내 마음이 아팠던 책이다. 그의 죽음이 사고사가 아니라 자살이라는 짐작을 하지만 그 어떤 결론을 내리더라도 바르트의 고통은 참을 수 없는 슬픔이었을 것이다. 누구나 다 겪는 것이지만 그 이별의 끝이 너무 큰 슬픔이기에 바르트의 선택은 어쩌면 당연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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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별로 반갑지 않은 위안들. 애도는, 우울은, 병과는 다른 것이다. 그들은 나를 무엇으로부터 낫게 하려는 걸까? 어떤 상태로, 어떤 삶으로 나를 다시 데려가려는 걸까? 애도가 하나의 작업이라면, 애도 작업을 하는 사람은 더 이상 속없는 사람이 아니다. 그는 도덕적 존재, 아주 귀중해진 주체다. 시스템에 통합된 그린 존재가 더는 아니다. - p.18


내 주변의 사람들은 아마도 곰곰이 생각하는 것 같다(어쩐지 그런 것 같다), 나의 슬픔이 얼마나 깊은 것인지를. 하지만 한 사람이 직접 당산 슬픔의 타격이 얼마나 큰 것인지를 측정한다는 건 불가능한 일이다(이 우습고도 말도 안 되는 시도). - p.20


- "두 번 다시 볼 수 없구나, 두 번 다시 만날 수 없구나!"


-  그런데 이 말 속에는 모순이 들어 있다. "두 번 다시 만날 수 없다"라는 말은 영원할 수 없다. 그렇게 말하는 사람 스스로도 언젠가는 죽을 수밖에 없으니까.

"두 번 다시 볼 수 없다니!" 이 말은 영원히 죽지 않는 그 어떤 존재만이 할 수 있는 말이다. - p.21


우리가 그코록 사랑했던 사람을 읽고 그 사람 없이도 잘 살아간다면, 그건 우리가 그 사람을, 자기가 믿었던 것과는 달리, 그렇게 많이 사랑하지 않았다는 걸까······? -p.78


애도: 그건 (어떤 빛 같은 것이 꺼져 있는 상태, 그 어떤 '충만'이 막혀 있는 그런 상태가 아니다. 애도는 고통스러운 마음의 대기 상태다: 지금 나는 극도로 긴장한 채, 잔뜩 웅크린 채, 그 어떤 '살아가는 의미'가 도착하기만을 기다리고 있다. - p.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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