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움의 선
앨런 홀링허스트 지음, 전승희 옮김 / 창비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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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움의 이면.


2009년 크리스토퍼 이셔우드의 <싱글맨>이 처음 출간되었을 때 책을 읽고 나서도 한동안 이야기의 맛을 느끼지 못했다. 어딘가 비어져 나오는 그들의 이야기를 어디에 주파수를 맞춰야 하는지 알 수가 없어 몇 번이나 허둥대며 책을 덮었다. 시간이 더해져 독서모임으로 인해 한 번더 이 작품을 읽을 수 있는 시간이 주어져 읽었을 때에도 여전히 그의 작품이 어렵게 느껴졌었다. 그렇게 시간은 다시 흐르고 작년 여름 안드레 애치먼의 <그해, 여름 손님>(2017,잔)을 만났다. 이전에 느낄 수 없는 섬세한 결들이 손안에 느껴졌다. 남자와 여자의 사랑과 남자와 남자, 여자와 여자간의 사랑을 우리는 색다른 안경을 끼고 다르게 바라볼 필요가 있을까? 이전에도 동성애에 관해서는 싫지도 좋지도 않는 중간의 입장이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들이 좋다면 이 선택도 나쁘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앨런 홀링허스트의 <아름다움의 선>은 안드레 애치먼의 소설 보다 더 섬세하고 감각적이다. 그래서 600페이지가 넘는 이 두꺼운 책을 한 눈에 성큼 읽어 낼 수 없다. 천천히 한 입씩 베어무는 호두파이처럼 천천히 음미해야 한다. 그렇게 천천히 책을 읽어나가면 앨런 홀링허스트가 그려낸 문장들이 눈앞에 일렁이며 철썩같이 나가온다. 옥스퍼드 대학에서 영문학을 전공하고 졸업한 닉은 함께 공부했던 토미 페든의 집에 머물게 된다. 그는 연신 은밀한 시선으로 토미를 지켜보면서 노팅힐에 위치한 아름다운 저택 안에서의 시간을 즐긴다.젊은 나이의 보수당 초선의원인 제럴드와 부유한 은행가 출신의 레이철 사이에서 토미는 상류사회의 일원으로서 탄탄하게 성장해 나가는 모습을 부러운듯 쳐다본다. 


손님으로서 그들과 함께 있는 시간 속에서도 제럴드와 레이철이 자신의 아이들에게 부르는 애칭마저도 부럽다. 그러면 그럴수록 상류사회로 발돋움 하고 싶어 하는 닉의 탐욕과 거머쥐지 못한 아름다움을 향한 욕망을 향해 그는 리오 찰스와 알게 되면서 점점 더 그의 몸짓을 그에게 향한다. 선과 악을 가지고 있는 닉의 모습은 정교하면서도 꿈틀거리는 젊은 남자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그려냈다. 그가 보기에는 모든 것이 두려울 것도 없는 화려한 일상과 부와 존재할 것 같은 이 세계를 움켜잡고 싶다는 욕망을 드러낸다. 그는 그야말로 머리만 비상할 뿐 아무것도 내세울 수 없는 사람이라서 더 그의 부러운 시선들이 부각되며 저택에서의 시간들을 길게 장황하게 보여준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고 페든가의 승승장구했던 시간들이 지나고 스캔들이 일어나면서 화려하고 먹기 좋았던 떡은 누구도 들춰보지 않는 비릿한 냄새를 가진 쓰레기로 전락한다. 닉이 그토록 추구했던 상류사회는 그가 보지 못한 면들을 부각시켜 보여준다. 그들의 웃는 얼굴 뒤에서 보여지지 않았던 민얼굴의 면모가 수면위로 드러나고 그들의 위선이 얼마나 역겹고 타락한 것인지를 너무나 기막히게 보여주는 작품이었다. F. 스콧 피츠제럴드의 <위대한 개츠비>와 닮아있지만 이보다 더 견고하고 평범한 한 남자의 가슴에 여러번 생채기를 그을 만큼 더 명징하게 기억에 남는 소설이다. 맨부커상을 받은 최초의 퀴어소설이라고 띠지에 붙어있지만 그 어떤 수식어를 붙이지 않아도 정교하게 그린 작품이라 더 눈길을 사로잡는다. 이 작품을 계기로 그의 많은 작품을 볼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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