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0호
움베르토 에코 지음, 이세욱 옮김 / 열린책들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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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널리즘의 세계


 움베르토 에코하면 절로 떠올려지는 작품이 <장미의 이름>(2002,열린책들)이다. 몇 번을 읽으려고 해도 자꾸만 튕겨져 나가는 덕분에 책을 읽다, 읽다 덮어 버렸다. 그렇게 그와의 만남을 뒤로 하고 학회나 간담회에서 발표하거나 잡지로 묶었던 것을 모은 <적을 만들다>(2014,열린책들)를 읽기도 했지만 그의 책은 여전히 어려웠다. 그의 이름 앞에 붙어 있는 많은 수식어들이 그가 얼마나 넓은 저변을 갖고 다채롭게 글을 써오고 있는지 알았던 터라 그의 책이 진입장벽이 높아도 그럴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의 책만은 항상 내공을 갖은 후에 읽어야지 하고 뒤로 미루고 있었기에 한 번도 그가 책을 내고 동시적으로 그에 대해 찾아보고, 생각할 시간을 잃어 버렸다. 그의 마지막 소설<제0호>를 받아들고서야 그간 읽지 못했던 그의 책을 조금 더 열심히 읽어볼 걸 하는 후회가 남았다.


더 이상 그가 써내려간 책을 다시는 볼 수 없는 숫자 '0'이 의미심장하게 다가온다. 예전에는 매체가 TV에 나오는 3사 방송의 뉴스가 큰 비중을 차지했고, 아저씨들의 손에는 늘 가판대에 팔고 있는 신문만이 세상을 볼 수 있는 창구였다. 커다란 신문을 펼칠 때면, 신문 주인을 제외하고 옆에서 앞에서 활자를 향해 눈길이 가곤 했다. 그때만 해도 거기에 담긴 뉴스만이 '진짜'인줄 알고 살았으나, 시간이 지나면서 다양한 매체로 펼쳐진 정보의 늪은 더 이상 진짜와 가짜뉴스 사이에서 진실을 찾기마저 어려워졌다. 3사의 뉴스 대신 종편방송의 채널을 이리저리 돌리면서 뉴스를 보곤 한다. 그럴 때마다 패널들이 입김으로 전해지는 뉴스들의 분위기는 사뭇 다르다. 이쪽, 저쪽 귀를 기울이고, 다른 방송을 보기도 하고, 뉴스 기사를 찾아 보지만 이마저도 누군가의 손에 뽑혀진 헤드라인 뉴스여서 실상 사건의 중심으로 나아가기는 쉽지 않았다.


<제0호>는 그런 우리들의 실상을 과감하게 보여주는 작품이다. 시간이 갈수록 매체를 통해 사건을 볼 수 이쓴 입구는 넓어졌지만, 누군가의 사견이 들어간 사건은 그때부터 '본질'이 흐려진다. 갑을논박 사이로 있지 않는 사건이 야기되고, 그로 인해 퍼져버리는 소문들은 안개낀 미로처럼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다. 다행히 <제 0호>는 <장미의 이름> 보다는 수월하게 읽힌다. 1992년, 이탈리아에서 큰 스캔들이 퍼지고, 부패청산을 하겠다는 물결이 넘나들고 있었다. 독일어 번역을 하거나 소년의 과외를 하거나 출판사를 기웃거리며 원고를 읽고 의견을 말해주는 등 다양한 글쓰기를 하며 살고 있는 남자였다. 그런 그가 창간을 앞둔 신문사인 '도마니'의 연락을 받게 되고, 그는 창간되지 않는 예비 판을 쓰기 위해 달려든다. 엄청난 사건의 파장을 생각해 주필의 대필작가로서 활동을 해야 한다는 이야기에 그는 손을 내민다.


그러면서 마주하는 기자들의 기사와 글을 통해 찾아든 권력을 가진자들의 이야기는 이보다 더 깊고 부패하게 느껴졌다. 그러나 사람들의 눈에 들기 위해서는 진실을 찾아서 날카로운 펜촉으로 사람들의 심장을 꽂기 보다는 원색적인 기사를 싫기 위한 방법을 강구한다. 우리가 생각하는 언론의 시작점이 아닌 그것들을 감추기 위해 자꾸만 품어내는 매연이 가득든 글들이 세상에 가득차 있었다. 움베르토 에코는 가짜 뉴스가 세상 속에 얼마나 깊이 파고 드는지 과감없이 보여준다. 뉴스를 볼 때마다 가짜뉴스, 가짜뉴스 하지만 그것이 실제 현실 속에서 일어나는 일이며, 많은 이들이 놀랍게도 '그렇다더라'하면서 믿어버리곤 한다.


그럴 때마다 우리는 사건의 본질 속에서 길을 잃고 다른 영역에서 개미다리를 긁듯 긁다가 시간이 지나면 잊어버리곤 한다. 막대한 자본력과 조직력으로 진실의 눈을 감게 하고, 그들의 영향력 아래 있는 이들은 아무렇지도 않게 사건의 흔적 조차 지워버린다. 무엇이 진짜일까, 거짓일까 하는 논의 조차 힘들만큼. 진짜 저널리즘이 무엇인지, 우리는 어떻게 언론을 봐야 하는지 움베르토 에코는 작품을 통해 이탈리아의 부패한 이들을 꼬집고 있다. 심심한듯 그 무엇도 애착이 지워지지 않는 콜론나의 성품이 사건을 행해 나아가면서 점점 더 진한 색을 띄고 있다. 시간이 지나도 어느 나라 할 것 없이 매체는 더욱더 많아지고, 사람들은 자신이 보고 싶은 것만 보는 세상이 되었다. 그런 사람들의 편향적인 시선이 주는 시간 속에서 우리는 어떻게 생각해야 하는가. 비단 이전의 이탈리아의 문제 뿐만은 아닐 것이다. 그의 소설 속 세계는 지금도 현재진행형일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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