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가 되었지만 잘 살아보겠습니다
니시다 데루오 지음, 최윤영 옮김 / 인디고(글담) / 2018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노년의 홀로서기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내고 일흔의 나이로 홀로서기를 시작하려는 남자가 있다. 오랜 세월 안과의로 살아왔고, 강연과 출장으로 힘든 점 없이 아내의 내조로 편안하게 생활해 왔던 니시다 데루오는 암으로 아내를 잃고 홀로 살아간다. 1년간 아내가 투병하면서 그녀가 남겨놓은 편지와 소소한 정리들을 해 놓았음에도 데루오는 한몸같이 그의 생활에 맞게 모든 것을 준비해준 아내의 빈자리가 크게 느껴졌다. 홀로 남아 집안일을 하려고 해도 어디에 무엇이 있는지 알 수가 없어 물건을 찾아다니기 일쑤였다. 그렇게 여러번 시행착오를 겪고 나서야 집안에 어디에 무엇이 수납되어 있는지를 파악했다.


사람이 생활하면서 필요한 가장 기본적인 것들을 행하는데 있어 손쉽게 해결되었던 일이 아내의 부재로 인해 모든 것이 마비 되었다. 옷을 입는 것에서 부터 출장이나 학회를 가기 전에 입어야 하는 와이셔츠며 아침 식사, 저녁준비, 쓰레기 분리수거, 은행 업무등 최대의 난관으로 다가왔다. 사랑하는 아내가 쓰던 유품을 정리하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텅 비었을 순간에도 그가 맞닥뜨려야 하는 것들이 너무나 많았다. 아내에게 말을 하지 않아도 척척 자신에게 주어졌던 것들이 사실은 아내의 배려였고, 사랑이라는 것을 그는 많은 것을 경험하면서 알게된다. 혹, 자신의 빈자리가 느껴지면 남편이 길을 잃을까 싶어 주변의 많은 이들에게 남편을 부탁하고, 자신의 컴퓨터로 힘을 다해 편지를 남긴다. '당신은 아직 해야 할 사명이 있어요.'


그녀의 목소리가 곳곳에 묻어나듯 남편은 아내가 떠난 후 밀려드는 외로움과 쓸쓸함을 뚫어 내고 노년의 홀로서기를 시작한다. 집안일을 하면 할수록 자꾸만 밀려드는 집안일에 혀를 내두르기도 하고, 아내가 했던 배치를 바꿔 자신의 동선에 맞게 다시 맞춰 나간다. 꾸역꾸역 밀려드는 쓰레기와의 전쟁도 시작되고, 아내가 정성스레 챙겨주던 식단도 바뀌어 있는 대로 차려 먹거나, 조리하기 쉬운 음식으로 먹고 나갔다. 가전제품 사용법에 대해 알아가는 과정과 건전지 교체, 다리미질, 지인들과의 연락등 그야말로 자신이 하는 일을 제외하고 오롯하게 집안일을 홀로 해야 하는 시간들이 늘어났다.


그는 이전에 한 번 가정을 갖고 있다가 전처 사이에서 세 아이들과의 사이가 이혼하면서 자연스레 멀어졌고, 아내 역시 전남편과 사별했다. 그 사이에 아이들이 있었지만 두 사람이 재혼하면서 아이들과의 연락이 소원해졌다. 그렇게 두 사람은 서로를 의지하면서 같은 일을 하는 동료로서 함께 삶을 살아가는 동반자로서 오랜 세월 함께 지내왔다. 자궁경부암을 진단 받고 치료를 하는 시간 동안 아내는 남편에게 많은 것을 가르쳤지만, 그럼에도 그녀가 미처 손 쓸 수 없었던 것들을 니시다 데루오는 하루하루 경험하고 있었다. 홀로 살아가는 시간동안 사랑하는 사람과의 추억 너머 자신이 얼마나 사랑받았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홀로서기와 곁들여 그의 다채로운 감정을 소회로 담은 책이기도 하다. 그는 홀로서기에 대해 중년에 한 번 사십대 후반의 나이에 이혼을 한 후 경험했으나 그때는 젊은 나이로 모든 것이 나름 활기차게 홀로서기가 된 반면 20년이 지난 후에 홀로서기는 배우는 것도, 하는 것도 쉽지 않다고 토로한다.


중년의 산문집이기도 하지만, 홀로서기에 대한 부분에 많이 공감이 되었다. 가족의 구성원으로서 함께하고 있지만 엄마에게 때로는 남편에게, 아내에게 내가 생활하는 것들을 온전히 맡기는 것은 당장 몸과 마음이 편할 수 있지만 그것이 나에게는 독이 될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믿고 맡길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행복한 일이지만 그만큼 스스로 할 수 있는 줄어드는 것과 같은 말인지도 모르겠다. 책을 읽으면서 몇 달 전에 읽었던 존 그레이의 <화성 남자와 금성 여자를 넘어서>의 인용문으로 쓰였던 예언자의 문구가 귓가에 어른 거렸다. 인간에게 있어 누구나 홀로서기를 해야 하지만 때때로 본분을 잃게 마음이란.


그는 서서히 홀로서기를 하면서 혼자 살아가는 방법에 대해 터득하고 있다. 가진 것에 감사하고, 내가 만난 사람들이 곧 나의 인생이었음을 기억하고, 죽을 때까지 배우면서 즐겁게 살며, 설렘을 포기하지 말고, 언제 닥칠지 모르는 위험에 늘 대비하라고 충고하고 있다. 요즘은 대부분 맞벌이를 하다보니 서로 집안일을 나누어 하는 집들이 많지만 이전 세대에서는 대부분 밖의 일은 남편이 집안 살림은 아내가 모든 일을 전담했다. 그러다 보니 노년의 시간으로 접어들었을 때 남편은 아내의 손을 빌려 했던 모든 것들을 하지 못 할 때가 많이 있다. 혼자 밥을 해먹는 것부터 모든 것이 제대로 돌아가지 않는 상황이 초래하게 된다. 시공간을 떠나 홀로서기란 아이에서 어른으로 성장하는 시간에만 필요한 것이 아니다. 누구나 다 필요하다. 지금 이순간부터도.


함께하는 자리에 공간을 두라. 두 사람 사이에 천상의 바람이 춤추게 하라.(···) 함께 서 있으되, 너무 가까이 붙어 있지는 말라. 신전 기둥은 서로 떨어져 있고, 떡갈나무와 사이프러스는 서로의 그늘에서 자라지 않으니. (칼릴 지브란의 <예언자> 중에서) 


---


'사람이 살아간다는 것은 이렇게나 많은 쓰레기를 내놓는 일이구나'하고 이상하게 감탄했습니다. - p.64


지금 살고 있는 집을 구입했을 때만 해도 거실은 아무것도 없는 살풍경이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아내와의 추억을 이야기할 장식품으로 넘쳐나지요. 언제 샀는지, 어디서 구했는지 장식품 하나하나가 아내와의 추억을 말해줍니다. 종종 유리컵이며 꽃병들을 빠짐없이 바라보며 그걸 사던 당시의 상황을 떠올립니다. 그러나 이런 물건도 내가 죽으면 남겨진 자에게 잡동사니에 지나지 않겠지요. 추억처럼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은 내 마음속에 존재할 뿐 입니다. - p.68


태어날 때 알몸에 빈손으로 왔으니 죽을 때도 빈손이어야 하지 않을꺼 생각합니다. 기념이나 증표로 소중하게 여겼던 많은 메달과 상장도 인생의 이 단계에서는 별 의미가 없구나 싶습니다. 눈을 감을 때는 아내와의 즐거웠던 추억이 다긴 사진 몇 장만 있으면 충분할 테니까요. - p.69


부끄럽게도 일흔이라는 나이가 돼서야 처음으로 현금 자동입출금기를 사용할 수 있게 됐습니다. - p.86


혼자가 됐다는 쓸쓸함과 공허함으로 한동안은 행동이 지극히 무뎠는데 늦으면 늦을수록 오히려 일이 힘들어집니다. - p.160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