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절은 회전목마처럼
오카자키 다쿠마 지음, 한수진 옮김 / ㈜소미미디어 / 2018년 9월
평점 :
품절


 

 

만날 수 없는 너와 나의 이야기


 오카자키 다쿠마의 <계절은 회전목마처럼>은 서정적이면서도 어딘가 향수를 불러일으킬만한 이야기가 담겨져 있을 것 같다. 깊어가는 가을에 읽으면 좋은 책이구나 싶어 펼쳐든 책이었으나 읽어보니 회전목마에는 나 혼자 타고 있는 기분이 든다. 좋아하는 감정이 풋풋하게 새겨든다거나 상대방의 등만을 바라보면서도 한없이 애틋한 감정이 느껴지기 보다는 어딘가 '의심'하는 분위기가 싸하게 느껴지는 소설이다. 인간에게 있어서 '의심'은 양가의 감정이지만 좋은 감정이 깃들어 있기 보다는 하나의 의심은 곧 상대방을 바라보며 자꾸만 무엇을 캐내려하고, 재단해서 바라보게 만든다. 그 속에서 사랑의 감정이 솟아난다면, 나는 그것이 100% 사랑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입학식 날 이야기를 나눈 다음부터 나와 후유코는 주로 기묘한 사건들의 계기를 알아내고 절차를 맞게 해명하려고 노력하면서 점점 친해졌다. 그 행위는 우리 둘 사이에서는 어느새 '계절'이란 줄임말로 불리게 되었다. 한자로 표기하자면 계기(契機)와 절차(節次)를 합쳐 '계절(契節)'인데, 이것은 물론 우리 두 사람의 이름에 공통으로 사용된 요소인 '계절(季節)'과도 발음이 똑같았다. 우리는 이 계절이란 단어를 우리 마음대로 쓰기로 했다. 진실을 해명하는 행위를 '계절한다'고 표현하기도 하고, 그 과정에서 우리 둘이 저마다 세우는 가설을 '계절'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그야말로 우리끼리 만들어낸 신조어였다. - p.25


책은 연애 미스터리를 표방하고 있지만 미스터리 속 사랑이야기는 내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다른 방향으로 이야기가 흐르고 있다. 계절과 계절의 의미. 의미를 부여한 그들의 관계는 절친에 가깝지만 일정 이상으로 두 사람이 쳐놓은 선을 넘기지 않고 있다. 어쩌면 둘다 비슷한 인물일 수도 있고, 누군가 적극적이지 않아 둘다 평행선을 걷고 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후유코가 남자친구에 관한 이야기를 하다가 나츠키는 이내 후유코의 남자친구의 행적에 관해 이상한 기분이 든다. 후유코의 이야기를 토대로 이야기의 조각을 맞추다 보니 이내 그가 여자친구인 후유코에게 말하지 않았던 비밀을 알게 된다. 나츠키는 친구에게 이런 이야기를 말하고 이내 두 사람은 헤어진다.

 

살아 있는 한 인간은 무수한 빛을 목격하게 된다. 그중 대부분은 눈을 떼면 기억에조차 남지 않는다. 그래서 우리는 사진을 찍어 그것을 기억하려고 애쓰기도 한다. 그러나 그런 식으로 간신히 사라지지 않고 남은 빛도, 결국 풍경의 아주 작은 일부분에 불과하다. 그런데 반대로 결코 풍경 속에 녹아들지 않고 계속해서 한층 더 밝은 빛을 내뿜는 달과 같은 존재와 마주치는 경우도 있다. 이쪽에서 그렇게 보일 때, 저쪽에서도 똑같이 그렇게 보인다면. 그것은 한낱 소망에 지나지 않는다. 뭘 어떻게 해도 절대로 밝지지 않는 빛이 존재한다는 사실. 그것을 잊었을 때 인간은 미쳐버린다. - p.75


두 사람의 일상 속에서 일어난 일을 그들이 부르는 '계절한다'를 통해 눈치채지 못했던 일들을 밝혀낸다. 진실은 때때로 서로를 기쁘게 해주기도 하지만, 잔혹한 진실을 품고 있다. 후유코는 자신이 있던 곳에서 전근을 가게되고 그렇게 서로의 시간을 흘러 계절을 바꿔 나간다. 그 시간 속에서도 후유코와 나츠키의 관계는 그 누구도 앞장 서서 나아가지 않는다. 그저 멀리서 지켜보던 나츠키의 마음만 짐작 할 뿐이다. 상대방이 뒤를 돌아보지 않으면 절대 알아낸 수 없는 마음으로 나츠키는 그렇게 후유코의 뒷모습만을 바라보고 있다.


연애감정이란 그런 논리적인 것이 아니야. 길을 걷다가 우연히 소나기를 만나는 바람에 흠뻑 젖은 티셔츠가 몸에 달라붙어서 잘 벗겨지지 않는 경우가 있잖아. 그것과 마찬가지야. 어느새 정신을 차려보면 저절로 나에게 달라붙어서 떨어지지 않게 되어 있는 것이 사랑이라고. 이루어질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도 사랑을 포기하지 못하는 거야. - p.111


이야기는 반전에 반전을 거듭한다. 책을 읽는 내내 이질적으로 느꼈던 감정선이 여전히 주효했고, 이야기의 중심축이 아니라고 생각했던 이야기는 두 사람의 관계에서 돌직구로 날아온다. 탐정처럼 파고들던 논리적으로 풀어내던 '계절'을 나츠키가 연신 풀어냈지만 후유코 역시 만만치 않게 그가 말하지 않았던 무언의 이야기를 풀어낸다. 결국 두 사람 다 회전목마를 타지 않았고, 둘다 탔더라도 그 간격은 좁혀지지 않는 관계였음을 작가는 스산하게 알려준다. 어쩐지 책 속의 이야기는 하나의 달콥쌉싸름한 이야기 보다는 쌉싸름만 맛만 보여주는 이야기였다. 아무도 없는 곳에서 고장난 회전목마를 바라보고 있는 기분이었다.

 


리뷰어스 클럽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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