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든아워 2 - 생과 사의 경계, 중증외상센터의 기록 2013-2018 골든아워 2
이국종 지음 / 흐름출판 / 2018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우리에겐 더 이상의 비상구는 없었다.


 귀순한 북한 병사가 그에게 치료를 잘 받고 다른 병원으로 전원했다는 소식을 끝으로 그와 이국종 교수의 이야기는 더 이상 언론에서 다루지 않았다. 그 이후 중증외상센터에 대한 열악한 현실이 노출되어 많은 국민들에게 관심을 받았고, 그에 다른 국가의 예산도 지원되었다고 했으나 국민들의 많은 성원과 달리 현장에서는 여전히 바뀐 없다고 했다. 작년부터 그의 책이 출간되기만을 기다렸던 나는 그의 이야기를 올해를 넘기지 않고, 그의 책이 출간된 것을 기뻐했으나 그가 써내려간 비망록은 처참했다.


매일 매일 전투를 치르는 것처럼 그와 그의 동료들은 먹는 것, 입는 것, 자는 것 조차도 아껴가며 환자를 구해내고 수술하며 그들을 다시 재건시켰지만 돌아오는 것은 비난 뿐이었다. 시간이 지나고 나라의 수장이 바뀌어도 그들에게는 달라지는 것이 없었고, 오히려 시간이 지나 그들을 든든하게 받쳐주었던 이들은 하나 둘 자리에서 물러나 그 어떤 것도 지킬 수 없는 시간들이 도래했다. 활자를 읽으면 읽을수록 먼 바다의 심해속으로 빠져드는 듯 계속해서 몸이 착 가라앉는 것 같다. 현장에서는 고군분투하지만 위에서는 나 몰라라 하며 그들의 일을 그저 별난 짓이라 생각하는 그들의 이야기들이 눈이 따갑도록 가슴을 친다.


중증외상센터는 특정 누군가에게만 필요한 시스템이 아니다. 누군가 길을 가다가 큰 사고가 났을 때, 일을 하다가 추락하거나 큰 외상을 입었을 때 시간과 장소를 불문하고 신고를 하면 의료팀은 응급환자에게 필요한 기구를 싣고 환자에게 빠르게 달려간다. 1분 1초가 급한 상황 속에서 골든아워 때 도착한 의사가 환자의 환부를 보고 그에 맞는 대처를 한다면 환자가 살 수 있는 확률은 급격히 높아진다. 영국이나 미국, 일본은 전국 어디서나 중증외상센터의 시스템이 정착되어 있어 환자에게 필요한 골든아워의 순간에 그들을 구조하여 보다 빨리 환자의 목숨을 살려낸다. 살릴 수 있는 목숨을 살려내는 것. 의사라고 조용히 의자에 앉아 환자를 받는 것이 아니라 의사의 손길이 필요한 곳이면 헬기를 타고, 레펠을 타고 내려와 현장으로 달려가는 것이 의사의 할 일이자 중증외상센터가 필요한 이유다.


그가 걸어온 길은 처음이라 척박하고, 도무지 내 딛을 수 없는 길을 만들어 걸어왔다. 그의 진정성 어린 행동과 열정이 그를 둘러싼 사람들 속에 이루어 졌지만 걸어오지 않는 길을 만들어가는 만들어가는 자의 숙명처럼 동료들의 비난과 수술을 하면 할수록 기준을 넘어선 의료 숫가와 무전기, 헬기, 의료진등 무엇도 정착되지 않는 지원들이 그의 발목을 붙잡는다. 정책은 뜬구름처럼 떠 있고, 국민의 성원으로 모금된 돈은 현장까지 도달하지 않는 상황과 그를 비롯해 그의 팀들은 잠과 휴식, 먹는 것 조차 제대로 먹지 않아 탈진하고 쓰러지고, 유산하며, 급기야 눈이 실명 위기까지 오르는 상황이 반복. 반복. 반복되었다.


이국종 교수의 <골든아워>는 다음을 기약할 수 없는 배를 타고 가는 것처럼 그가 외과의사로서 일을 하는 그날까지만 이 시스템을 끌어가는 것으로 이야기를 마칠 것 같다. 아무리 노력을 해도 그를 점점 더 옥죄어 올 뿐 어느 곳에서도 돌파구를 찾을 수 없는 한국에서의 중증외상센터는 그의 업일뿐, 그 누구도 이 시스템을 정착시키려는 노력조차 하지 않는다. 우리가 내는 수 많은 세금이 왜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는 이 곳에 미치지 못하는지 이해 할 수가 없다.

지금 당장은 아니더라도 누군가가 내가 될 수 있고, 네가 될 수 있는 상황 속에서도 그들의 안전과 그들의 일, 그가 그토록 뿌리 내리고 싶어하는 센터 하나 조차도 나라에서 지켜주지 못한다니. 누구라고 이야기 할 것 없이 날아오르는 헬기의 프로펠러의 소리에 시끄럽다며 민원을 넣는 이들의 이기심과 먹는 것도, 잠을 자을 자는 것도 하지 못한 채 힘을 들여 헬기를 타고, 레펠을 타고 내려와 수십 시간 수술을 하고도 깨어난 환자에게 욕을 먹는 상황들. 더 이상 이 시스템이 진전 가능성이 없다는 그의 시니컬한 이야기가 계속 귓가에 맴돌았다.

이국종 교수와 중증외상센터의 팀원들, 전담 간호사들, 소방구조대의 파일럿들의 희생과 그들의 노력으로 인해 구조되는 사람들의 이야기와 함께 그들의 고단함과 안타까운 이야기들이 담겨져 있다. 1권이 우리가 알고 있는 석해균 선장의 일화를 담았다면 2권은 세월호와 귀순한 북한 병사의 뒷 이야기가 세밀하게 그려져있다. 기울어진 배에 관한 이야기는 도무지 시스템이라고는 작동되지 않는 그 누구도 '알수없다'는 답변만이 그를 울분에 차게 했고, 북한병사의 이야기는 연일 떠들어내는 언론만 시끄러웠을 뿐 그들에게는 더 이상 진전된 행보를 나아갈 원동력을 손에 넣어주지 않았다.


그는 이제 더 이상 동력을 잃고 계속 끝을 맞는 동료들의 뒷모습을 이야기한다. 그가 외과의사로서 끝을 맞았을 때 그는 그이처럼 홀가분하거나 다른 일을 향해 내달리는 그들처럼 달려 갈 수 있을까. 그가 손을 놓았을 때 다른 후배의 의사가, 또 다른 후배들이 이끌어줄 중증외상센터의 앞날을 기대했으나 그것마저도 진정성을 느끼지 못하는 수 많은 이들이 그들의 도전을 '무모하게' 받아들이고 마는 것은 아닌지 진정 걱정이 된다. 바쁜 와중에도 기록만이 그들이 걸어왔던 길을 화석처럼 남길 수 있어서 글을 썼다는 글이 아프게 다가온다. 멀리서나마 그와 의료진에게 응원을 보내는 나에게도 부끄러워 얼굴을 들이밀 수 없을 만큼 치부가 느껴지는 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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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해야 한다, 더 잘해야 한다, 버텨라······. 서광욱의 말은 내게 하는 말이자 스스로에게 하는 말 같았다. 그러나 모든 것이 끝으로 치닫고 있었다. 헐겁게나마 쌓아오던 모든 것이 허망하게 붕괴되는 한복판에서 나는 한 발짝도 떼지 못했다. 침몰하는 배 위가 내 자리였다. - p.212


수술방 안의 모두가 분주하게 움직이며 서로를 도왔다. 죽음으로 가득 찬 칠흑 같은 장막 속이었다. 그 안에서 몇 안되는 사람들이 한줄기 여린 빛을 향해 버티며 나아가고 있었다. - p.217


일부 정치인들이 특별히 생각하는 노동자들 대부분이 몸을 써서 먹고살았고, 몸으로 먹고사는 노동자들은 일하다 사고로 으스러져 죽어가곤 했다. 이런 이들에게 선별적 의료 혜택을 주려면 중증외상 분야를 보완해야만 했다. 그러나 말로 먹고사는 이들은 몸으로 먹고사는 이들의 삶을 깊이 알지 못한다. 아무것도 모르는 이들끼리 말의 잔치만 벌이며 '노동자들을 위한 정책'을 논했으므로, 그들이 만들어내는 정책은 실제 노동자들에게 가닿지 않았다. 부서지고 찢겨져 죽어나가는 노동자들을 눈앞에서 보는 나는 그렇게 느꼈다. - p.224


결국 정책이나 국사 사업은 같은 방향을 보며 의지를 가지고 집요하게 좇는 이들에 기대어 살아남는다. 살아남는다고 해도 무수히 뜯기고 휘둘려 종국에는 유명무실해지는 일도 비일비재했다. 보건복지부 내에서 중증외상센터 설립 사업에 힘을 쏟던 손영래와 응급의료과의 현수엽, 공인식도 떠났다. 나만 홀로 덩그러니 남았다. 국가적으로 중증외상 의료 시스템을 만들어보고자 발버둥쳤던 의료인 출신 관료들은 사라졌고, 중증외상센터 사업은 통상적인 정부 사업 중 하나가 되었다. 사랑에서 밀려오는 물살에 부서진 조각들이 발끝에 채는 광경에 나는 무참해졌다. - p.227


수술방은 피바다였다. 바닥에 쏟아진 피가 더 퍼져나가지 못한게 둑처럼 막아둔 시트들이 붉게 물들었고, 환자가 누웠던 자리는 피에 깊이 젖어 흥건했다. 수술대에서는 여전히 피가 흘러 떨어져 내렸다. 핏방울이 바닥에 고인 핏물에 떨어져 닿을 때 작은 핏물결이 나타났다 사라지기를 반복했다. 나는 그 자리에서 물러나 발 받침대에 주저앉았다. 붉은 피바다 한가운데 위치한 수술대가 전쟁 중 해상 위에 뜬 항공모함과 같아 보였다. 그 아래로 수 없이 쓰고 버린 일회용 수술기구 포장지들이 돛단배마냥 핏물 위를 떠다녔다. 실바람조차 불지 않는 수술방 안에서도 그것들은 끊임없이 부유했다. 내 인생도 그 피바다 위에서 끝없이 표류하고 있었다. - p.245

한 지방자치 단체에서 1,800억 원을 들여 대규모의 안전체험테마파크를 지어놨다. 하루 평균 입장객은 350여명, 연간 적자 규모는 15여억 원이라고 했다. 1,800억 원이면 중증외상센터 전체 건립 비용을 상회하며, 소방항공대 두세 곳을 창설 할 수 있는 금액일 것이다. 세월호와 중증외상에 대한 이슈가 붉어진 이래로 안전과 외상을 테마로 수많은 것들이 벌어지고 있으나, 나는 그 핵심가치를 알 수 없었다. - p.256


최선을 다한다. 그 말의 허망한 실체를 잘 알고 있었으나, 나조차도 그 말에는 달리 할 말이 없는 상황에 계속 빠져들었다. 제대로 된 장비조차 가지지 못하는 난 왜 이 일을 하고 있나······. 갈수록 자괴감은 무겁고도 깊게 나를 짓눌렀다. - p.2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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