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든아워 1 - 생과 사의 경계, 중증외상센터의 기록 2002-2013 골든아워 1
이국종 지음 / 흐름출판 / 2018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부디 많은 이들이 이 책을 읽어보기를...


 작년 11월, 한 북한군 병사가 공동경비구역( JSA)내 군사 분계선을 넘어왔다. 북한군의 총탄을 맞고 쓰러져 있는 것을 우리나라 부사관들 2명이 구해와 미군 더스트오프 헬기로실어 아주대학교병원으로 후송되었다. 의식을 잃은 군인을 아주대학교 병원 외상외과 과장이자 경기남부권역외상센터장인 그가 직접 집도하여 어린 북한군 병사를 살려냈다. 한동안 그의 이름을 모를 정도로 뉴스와 신문의 모든 헤드라인이 그 북한군 병사와 그를 집도한 이국종 교수에게 집중 되었다. 그때 나도 그의 이름을 처음 알게 되었다.

여러 발의 총탄은 맞고 사경을 헤메는 북한병사를 더스트오프팀과 아주대병원 의료진은 신속하고 정확하게 데려와 처치했고, 다행히 그들의 노력히 헛되지 않게 살려냈다. 꽤 오랫동안 그들의 이야기가 미담으로 전해졌지만, 한 국회의원의 말이 불씨가 되어 그들을 집어 삼켰다. 외상외과의 수장인 그는 정면으로 날아오는 화살에 분노했고, 그 어떤 가치보다 '생명'이 가장 우선임을 이야기 했다. 더불어 풍전등화처럼 언제 꺼질지 모르는 중증외상센터의 민낯을 알렸다.

유튜브에 가면 2012년에  M본부에서 스페셜로 했던 '골든타임'은 있다 외상외과, 그 한달간의 기록이라는 부제로 쓰인 프로그램과 2013년에 했던 EBS 명의가 올라와 있다. 작년 이맘 때즘 이 두 프로그램을 한 달 내내 봤던 것 같다. 처음에는 이토록 급박하고, 피 튀기는 현장의 모습에 아연실색했고, 분주하게 움직이는 그의 손길에 '중증외상센터'라는 곳에 대해 알게 되었다. 한 순간도 긴장을 놓칠 수 없는 순간. 내가 알고 있는 의사의 모습과 달리 그는 어느 시간, 어느 날씨를 불문하고 환자가 있는 곳이면 헬기를 타고 날라갔다.

어렵게 데려온 환자의 상태는 시간이 갈수록 의사의 손길과는 멀어지고, 그 환자를 보는 의사는 애가 탄다. 우여곡절 끝에 그가 근무하고 있는 병원에 데려와 수술을 하지만 환자의 징후는 좋지 않고, 수술전 보호자에게 최선을 다하겠다며, 보호자를 안심시키는 말 한마디를 지키지 못하고 고개를 떨구고 만다. 고개를 숙이며 비통한 마음으로 연신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를 외치는 의사 선생님. 나는 이런 의사를 한 번도 본적이 없었다.

환자는 몸이 아파 병원을 찾지만 병원은 환자의 아픔도, 시간의 편의를 봐주지 않는다. 환자가 오롯하게 긴 기다림을 몸으로 체득한 후에야 의사를 맞닥들인다. 기다린 시간보다 의사를 마주 한 시간은 고작 몇 분. 대부분의 의사가 그렇지 않겠지만(그렇지 않다고 믿고 싶다) 어떤 의사들은 환자의 얼굴조차 보지 않고 모니터 화면만 보고 질문을 하고 답을 내어 놓는다. 병이 나서 왔지만 이런 병원과 의사라면 더 나아지지도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며 돌아온 적이 많이 있다. 인술과 의술이 맞닿아 떨어지면 좋겠지만 수 많은 환자에게 같은 물음과 같은 대답을 듣는 의료진은 어쩌면 무딜 수 밖에 없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서로의 편의상 마주 보아야 하는 의사와 환자 사이는 그렇게 먼 거리인 동시에 가까운 존재가 아닐까 싶다.

현대에 올수록 우리는 몸이 편한대신 사고가 일어나면 대형 사고로 번지다 보니 인명피해가 크다. 사고가 일어나면 환자의 생사를 결정지을 수 있는 사고발생 후 수술과 같은 치료가 이루어져야 하는 시간은 최소한의 시간은 보통 1시간 이내라고 한다. 이국종 교수는 이것을 골든아워라고 하는데 그를 모델로 한 드라마의 제목이 '골든타임'으로 정해지다보니 모든 언론들이 골든아워 대신 잘못 표기된 이름으로 계속 쓴다고 지적한적이 있다. 그래서 그런지 그의 책이 나왔다고 했을 때 '골든아워'라는 제목의 이름의 낯설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이국종 교수라면 으레 이런 제목으로 그의 이름을 대신하여 썼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1권에서는 2002년부터 2013년까지의 기록을 담았는데 그가 아주대학교 병원에 몸담아 외상외과를 전공하기까지의 지난한 과정과 외상센터를 건립하기까지의 혹독한 이야기가 담겨져 있다. 외국에서 무엇을 배워오고, 중증외상센터를 건립하여 어느 누군지 간에 살릴 수 있는 생명을 살리려는 그의 노력은 강했으나 이 좋은 취지를 위에서, 옆에서, 아래에서, 저 먼 곳에서 들려오는 야유와 화살은 그를 더 밑바닥으로 가라앉게 만들었다. 

2011년 그는 갑작스럽게 아덴만 작전에 의해 부상을 입은 석해균 선장을 치료하러 길을 나섰고, 다행히 그를 구해낸다. 그에 대한 일화는 뉴스를 통해 많이 들어왔지만 실상 그 일의 진실은 더 혹독했다. 정부의 지원으로 차출된 의사가 환자를 실어나를 수 있는 에어 엠블란스가 없어 어마어마한 금액이 들어갈 서류에 사인을 하고서야 겨우 이송을 할 수 있었던 일. 다행히 그 이송에 대한 값은 정부가 지원했지만 이처럼 현장에서 필요한 손길과 지원은 야박하기만 하다. '영웅'이라는 칭호 보다는 그는 의사에 대한 사명감과 철저한 직업의식으로 하루하루 환자를 치료하는 것이 그의 일이라고 한다.

그럼에도 그의 땀과 노력이 수반되고, 희생을 하면서도 중증외상센터를 건립하고 시스템을 정립하는 것이 우리나라에서는 이토록 어려운지 모르겠다. 누군가 이 일을 하는 이가 없다면 외국에서 사람을 데려와 우리의 생명을 위협하는 장치에 대해 논의하고 외국의 좋은 시스템을 정착시켜야 할 판국에 우리는 우리 스스로 안전 펜스를 버리고, 개인의 희생만을 강요하고 있다. 그의 일은 마치 전쟁을 하는 군인과 같아서 최전선에서 가까스로 온 몸을 다해 버티고 서 있는 수장같다. 내일을 기약 할 수 없고, 저녁이 없는 삶을 사는 그들에게 우리는 과연 어떤 이야기로 그들을 위로할 수 있을까.

담장 너머로 그를 존경하고 응원하는 이들이 많다는 것을 알고 있다. 많은 이들의 손길이 갔다는 이야기도 언론을 통해 들었으나 정작 그들이 시급한건 정부의 직접적인 예산이 현장에 가 닿는 것이나 그들은 점점 더 운영비가 부족하고, 인력이 부족하여 쓰러지고, 또 쓰러졌다는 기록들이 빼곡히 남을 뿐이다. 그가 너무도 좋아해 여러번 반복했다는 김훈 작가의 <칼의 노래> 역시 왜 그가 그토록 읽고 또 읽었는지 알게 되었다. 책 속의 이순신 장군의 혹독한 이야기가 김훈 작가가 만들어낸 이야기가 아니라 21세기에도 여전히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그의 글 속에 흠뻑 묻어난다.

그래서 혹 김훈 작가의 필치가 묻어나올 수 있다했지만, 글을 읽어보니 글의 느낌이 깊이 베어나오지는 않았다. 그의 책을 읽고 나니 마음이 더 헛헛하고, 우리가 갖고 있는 사회적인 시스템이 이것 밖에 되지 않았나 하는 회의감이 몰려온다. 매일마다 안전을 부르짖지만 사고는 연일터지고, 터진 사고를 메꾸지 못하는 우리 사회의 민낯을 제대로 보여주는 에세이가 아닌가 싶다. 그의 시니컬한 표정과 깊은 한숨이 절로 이해되는 책이다.

---


- 네가 환자에게 가까이 접근할수록 환자를 살릴 기회가 많아질 거야(The closer you get to the patient, the more chances you'll save the patient).

어떤 환자라도 조건은 같고 환자는 언제나 상황에 우선한다. 원칙이 흔들리지 않았다. 의료진은 원칙대로 환자에게 가능한 한 최선을 다해 더 빨리, 더 가까이 가려고 애썼다. - p.51


한국의 환자 이송 시간은 평균 4시간으로, 제 2차 세계대전 당시 미군의 전투 지역과 다르지 않다.*


* 미국 독립전쟁 때 현장에서 다친 병사를 야전 병원까지 데려오는 데 걸린 시간은 72시간, 제 1차 세계대전 때는 8시간이 걸렸다고 한다. 제 2차 세계대전 때는 현장에서 후방 외상센터까지 4시간이 걸렸고, 한국전쟁에 이르러서는 1시간 30분, 베트남전쟁 때는 30분으로 단축시켰다. 헬리콥터를 사용한 덕분이었다. 선진국에서는 이것이 그대로 외상 시스템에 들어와 지켜지고 있으며 의료진이 직접 사고 현장에서 헬리콥터를 타고 출동하기도 했다. - p.52


사지가 으깨지고 장기가 부서져 의식을 잃고 병원으로 실려 온 환자들은 외상외과적 수술과 집중치료를 받아야 산다. 수술은 한번에 끝나지 않는다. 필요한 생명유지장치와 약품의 수는 너무 많다. 치료에 막대한 비용이 들어가는데 자동차 보험, 산업재해 보험, 각종 사업체 주도의 공제조합들과 국민건강보험공단에서는일반 환자 기준에 맞춰 진료비를 지급했다. 투입된 비용에 턱없이 모자란 진료비만 병원에 지급되므로, 병원에는 심각한 손실이 발생했다. 초대형 병원은 중증외상 환자를 수용할 이유가 없었다. 반면 정규 환자 부족에 시달리는 종합 병원들은 이런 부담을 안고서라도 교통사고나 추락사고 등으로 발생한 외상 환자들을 유치하려 애쓰고 있었다. 이런 현실에서 '중증외상 환자 이송 체계'가 존재하기란 아예 불가능했다. - p.57


'받아야 하는 돈'을 받지 못하게 되는 것'의 원인이 모두 내게 있었다. 나는 틈틈이 심평원에 사정하는 글을 써 보냈다. 환자를 살리기 위해서 약품과 장치들을 기준에 비해 초과 사용할 수밖에 없는 불가피함을 적었고, 교과서의 내용을 통째로 복사해 첨부했다. 그럼에도 삭감된 진료비 회수율은 절반에 미치지 못했다. 사유서는 제대로 읽히지 않았다. 누군가가 읽었다 해도 정상참작은 요원했다. 심평원 내 심사위원 중 외상외과를 전공한 사람은 단 한명도 없었다. 내가 세계적으로 쓰이는 외상외과 교과서의 표준 진료 지침대로 치료했다는 내용의 자료를 수백 번 제출해도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환자마다 쌓여가는 삭감 규모가 수천만 원에서 수억 원에 이르렀다. 결국 교수별 진료 실적에 기반을 둔 ABC 원가분석이 더해져, 나는 연간 8억 원이 넘는 적자의 원흉이 됐다. - P.60


나는 더욱 부끄러웠다. 인생에서 시한부 같은 보직을 가지고 있는 내게 무엇이 남을지를 생각했다. 일상이 반복될 때마다 내 앞을 등록되어 올라가는 환자 명단만이 내 삶의 의미를 더할 수 있을 것이었다. 해가 지날 때마다 새롭게 추가되는 200명 정도의 새로운 환자 명단과 협의 진료 실적이, 내가 세상에서 일을 하면서 존재했다는 유일한 흔적이었다. - P.194~195


떨어지는 칼날은 잡지 않는 법이다. - P.222


외상외과의 특수성은 어디에서도 헤아려주지 않았다. 그동안 병원에서 해오던 통상적인 진료 이외에 해야만 하는 것들은 많았지만 그것들을 하기 위해 한 발만 앞으로 내디뎌도 길을 보이지 않았다. 윗선과의 자리에서 지원에 대해 흘러나오는 좋은 말들은 그 자리를 벗어나면 없는 것이 되었다. 의료계와 관료들의 사회는 고도의 정치판이었고 앞뒤 면상이 판이하게 달랐다. 나는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웃는 얼굴들이 좋은 옷을 입고 맛난 것을 먹으며 화려한 말의 향연을 벌일 때, 현장에서는 비행복 한 벌 신발 한 짝이 없어 몸을 떨었다. - P.319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