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것도 아닌데 예뻐서 - 일상, 그리고 쓰다
박조건형.김비 지음 / 김영사 / 201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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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 일상을 그리는 남자와 쓰는 여자의 이야기


 삶은 저마다 결이 다른데 일상적으로 주고 받는 인사말에 상처를 받을 때가 많다. 그저 보기에는 단순한 인사말인 것 같아도 인사말의 범주에 들어서지 않는 이들에게는 어딘가 그들의 인사말을 피하고 싶을 때가 한 두번이 아니다. 모르는 이라도 한 두마디 말을 거쳤다면, 시작되는 호구조사들. 나이는 몇살이냐, 결혼은 했느냐, 아이는 있느냐, 둘째를 가져야지 등등의 인사말이 끊임없이 쏟아진다. 같은 레일을 돌지 않는 이들에게는 그야말로 곤혹스러운 말이지만 그 모든 것을 뚫어내고 자신만의 색깔로 삶을 살아가는 이들의 이야기는 특별하다.


<별것도 아닌데 예뻐서>는 취미로 그림을 그리고, 생활 밀착형 노동자인 남편과 글을 쓰고 번역하는 아내의 이야기를 글과 그림으로 담은 책이다. 남편이 그들의 생활을 찰칵하고 찍어 놓은 듯한 한 페이지를 그림으로 그리고, 그에 관한 이야기를 살짝 곁들여 놓으면 아내는 조근조근 남편의 생각과 그날의 일상에 대해 이야기 한다. 평범한 일상이 별것도 아니라고 하지만, 평범한 일상이야 말로 가장 평범하면서 편안하고 안온한 하루를 만들기란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를 우리는 누구나 잘 알고 있다. 그래서 그런지 두 사람의 이야기는 서로 다른 환경 속에서 살아가다가 우연히 서로 만나 사랑을 하게 되고, 함께 살면서 '우리'라는 이름 속에서도 각자 너와 나의 개성을 존중하며 살아간다.


무조건적인 희생이 아니라 서로를 향한 애정과 마음, 결핍, 밥벌이에 대한 녹녹찮음을 책 속에 담았다. 책 속에는 부부의 단란한 일상과 나를 이루는 가족들의 모습과 함께 웃음과 위로를 주고 받는 이웃들의 모습이 있다. 하하호호 깔깔거리며 서로에 대한 애정을 느끼게 해주는 지난 날의 찰나 순간은 보는 이로 하여금 웃음짓게 하다가도 무더운 여름 날, 혹은 추운 겨울날 마주 하는 극한의 노동은 사람을 얼마나 기진맥진하게 하는지 그의 표정과 손짓, 몸 여기저기에 난 생채기들이 지난한 시간들을 말해준다. 


투박하지만 섬세한 그림은 그들의 일상을 옆에서 보는 것처럼 색채를 드러내고, 그림 후에 덧붙이는 아내의 글은 잔잔하면서도 긁힌 상처를 덮을 수 있을 대일밴드처럼 그의 마음의 상처를 아물게 한다. 그림도 좋았지만 잔잔한 글들이 더 마음에 와닿았다. 아무래도 나는 그림보다 문장을 더 좋아하나 보다. 좋은 날에 좋은 일들만 이야기한다면 좋겠지만 남편인 박고건형은 25년간 우울증을 앓아왔고, 때때로 그 우울증 때문에 움츠러들기도 했고, 일을 하면서 겪는 차별에 분노하기도 했다.


노동을 한 만큼 돈을 받는다지만 일을 하면 할수록 몸은 축나고, 안전을 대비하는 장치없이 저렴한 임금으로 노동자의 노동력을 착취하려는 회사의 이야기는 화가난다. 그럼에도 그들은 그 모든 것을 짊어지며 평범한 일상을 꾸려 나간다. 우리가 일상적으로 묻는 안부의 인사와는 다른 삶의 결로 삶을 살아가면서. 남편은 아내를 그리고, 아내는 남편을 글로 보듬으며 서로 사랑하며, 살아간다. 이것이야 말로 별것도 아니지만 별것이기에 더 인내하고 예뻐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작품을 완성하면 원고를 제본해 가장 먼저 신랑에게 건넨다. 책이 나와도 제일 먼저 신랑의 이름을 적고  신랑에게 건넨다. 신랑이 아니었다면 나는 소설을 쓰고 있지 않았을 것이다. 황당한 수사라는 걸 알지만 나에게 문학은 이 사람이고, 이 사람을 만난 일이다. - p.54


한 가정의 모든 구성원이, 부부는 물론이고 아이들까지도 모두 본인이 해야하는 집안일이 있어야 하며, 힘들고 서툴더라도 끊임없이 배워나가도록 노력해야 한다. 집안의 모든 일이 원활하게 돌아가도록 힘을 모으는데 예외는 없다. 그것이 바로 부부이고 가족이다. 공존이며 또한 함께 살아남는 방법이다. - p.96


'산복 도로'는 산의 배, 즉 '산의 중턱을 지나는 도로'를 가리키는 말이라고 한다. 부산에는 유독 이리저리 꼬인 골목이 많은데, 산 중턱에 능선을 따라 많은 집이 다닥다닥 붙은 광경을 자주 목격한다. 그중에 몇몇 마을은 관광지로 개발되어 많은 관광객을 불러 모으기도 하지만, 개인적으로 나는 시내버스를 타고 산복도로 둘러보기를 추천한다. 몇 년 전에 <부산의 바깥>이라는 부산의 외곽 동네들을 둘러보는 여행기를 짧게 연재한 적이 있었는데, 산복 도로뿐만 아니라 부산 곳곳에는 아름다운 골목과 바다를 조망할 수 있는 특별한 풍경이 숨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물론 그곳에 거주하는 주민들의 삶에 불편을 끼치지 않도록, 항상 조심스러운 마음을 잊지 않는 것은 기본. - p.153


노동과 사람이 어우러져 성장해야 할 텐데, 그건 그저 꿈같은 이상에 불과했다. 신랑이 몸담던 곳이 소규모 업체라 더 그랬다. 왜 우린 누군가의 희생을 당연하게 여기며, 미래를 그리고 꿈꾸어야 하는 걸까? 그게 정말 꿈꿀 만한 미래인가? - p.182


사람의 본성은 변하지 않는지 모르지만, 몸은 끊임없이 변한다. 우린 젊고 보기 좋은 몸만을 기억하고 떠받들며 살아가지만, 우리가 말해야 하는 몸의 일생은 훨씬 더 길고 복잡하지도 모른다. 주름진 손과 발은 고귀하다고 추앙하면서, 우리는 얼굴의 주름 하나조차 용납하지 않으려 한다. 한 사람의 살아온 일생의 자서전은 차고 넘치지만, 몸의 자서전은 또 다른 이름으로 쓰이고 또 읽혀야 하리라. - p.247~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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