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애의 기억
줄리언 반스 지음, 정영목 옮김 / 다산책방 / 2018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단 하나의 이야기


 언제부턴가 '사랑'이야기를 달달함만에 취해서 읽지는 않는다. 20대에 다가왔던 느낌과 30대에 읽었던 느낌이 다르듯이. 예전에는 사랑이야기의 결말이 해피엔딩이면 내 일 마냥 발을 쭉 뻗고 잘 수 있었으나, 결말이 세드엔딩이면 어딘가 이야기를 들 읽은 것 같은 찜찜함이 마음에 남았다. 그러나 시간이 갈수록 달달한 이야기 보다는 끝맺음이 쌉싸르한 결말을 놓고 자꾸만 생각을 돌이켜 본다. 왜 그이가 그렇게 밖에 행동을 할 수 밖에 없었는가에 대한 대답을 찾아 나선다. 때대로 이해 할 수 없는 물음들이 생각을 가로 막았고, 그럴 때면 시간의 여유를 두고 여러번 그들의 이야기를 반추해 나갔다. 처음에는 두 사람을 둘러싼 이야기에 초점을 맞춰 작가의 목소리를 따라갔다면, 다음에는 각기 남자의 사랑과 여자의 사랑을 나눠 그들의 이야기를 등반한다.


두 사람이 사랑을 하지만 시작하는 순서도 다르고, 좋아하는 타이밍도 다르고, 함께 있다가 이별을 하는 순간도, 깨달음도 다르다. 시작은 운명처럼 우연으로 다가왔다가 나이에 불문하고 19살 청년 폴과 48살의 유부녀 수전은 테니스 클럽에서 만나 사랑에 빠졌다. 수전은 폴 보다 나이도 더 배로 많고 두 딸과 남편을 가진 이였지만 지울 수 없는 사랑의 시작점을 향해 맹렬차게 길을 걸어간다. 줄리언 반스의 <연애의 기억>은 나이가 든 백발의 노인이 오랜 시절 자신의 겪어왔던 단 하나의 이야기를 회상하며 이야기를 시작한다.


부드럽고 따스한 온기가 느껴지는 문체가 아닌 꺼끌꺼끌하고, 융통성이 없는 사회의 초년생이 겪을 만한 청년의 말투로 폴과 수전의 이야기를 과감없이 털어놓는다. 어릴 때는 남자와 여자의 사랑을 그저 꽁냥꽁냥하게 지내는 단편적인 모습으로 사랑을 키워나가는 모습을 보았기에 그것이 사랑의 전부라 생각했었다. 시대적으로 남녀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그린 작품들을 과감하게 꺼내들지 않는 시기이기도 했다. 지금은 나이를 불문하고 환상의 연애보다는 현실을 직시 하도록 현실성있는 작품들이 많다보니 환상을 가지고 싶어도 가질 수가 없다.


그런 두 사람의 이야기는 19살 소년의 이야기로 되어 있고, 사랑의 끝을 짐작하게 만든다. 모든 것은 시작과 끝이 있다지만 처음 사랑을 시작한 두 사람에게 끝이 있으니, 조심하시오 혹은 후회할 행동을 하지 말고 적당한 속도로 상대방을 사랑하라면 과연 그들은 그렇게 할 수 있을까. 나같아도 할 수 없을 것 같다. 결혼하지 않는 남녀가 사랑을 시작하고 걸어가는 과정도 만만치 않는데, 남편과 자식이 있는 수전과의 사랑이라면 말해서 무엇할까.


사람들의 시선과 그들의 부모님, 그들이 가진 특질적인 성격이 그들의 사랑을 멈추게 하기도 하고, 사랑이라는 이름에 힘입어 한걸음 더 도약하게 만들기도 한다. 사랑이야기가 이렇게 심오하고, 어렵고, 날카롭고, 적나라한 것이라면 나는 그렇게 불길을 뛰어들듯 사랑을 할 수 있을까. 사랑을 하고 사랑에 실패하고, 사랑을 완성해 봤던 이들이 모두 공감 할 수 있는 이야기지만 줄리언 반스는 두 사람의 사랑만을 놓고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 그 이야기를 주축으로 더 많은 세계의 이야기들이 나타나고, 둘이 애써 감췄던 상황들이 한걸음 더 성큼들어 가면 반전처럼 다시 두둥실 떠오른다. 알면 알수록 더 심오한 관계의 늪이.


햇살이 좋은 날, 선선하게 두 사람의 사랑이야기를 깊이 느끼고 싶었는데 오히려 사랑에 관한 근원적인 물음에 빠져 버렸다. 이야기를 읽다보면 자연스러운 문장보다는 삐그덕 거리는 문장이 많아 여러번 멈춰 서기를 반복했다. 일부러 그런 것인지 아니면 원문 그대로의 이야기인지 궁금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