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습관 - 도리스 레싱 단편선
도리스 레싱 지음, 김승욱 옮김 / 문예출판사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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습관처럼 사랑하는 사람들의 이야기


  도리스 레싱의 책은 서걱서걱한 모래를 씹는 것처럼 입안이 텁텁하다. 읽고 있으면 어딘가 불안하고, 사랑을 하고 있을 때 조차도 다음 그림이 반전으로 물들어 버린다. 콩깍지가 씌여 누군가의 손을 맞잡은 두손은 이내 썩은 동아줄처럼 흐느적 거린다. 평생을 함께 할 이의 품으로 들어간 한 여자는 이내 그가 갖고 있는 것이 쓰러져 갈 집과 황무지 같은 땅을 조금 갖고 있는 무덤덤한 사내가 옆에 있을 뿐이다. 처음 <풀잎은 노래한다>(2008, 민음사)를 읽고 나서 텁텁한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 재밌다기 보다는 생경한 마음과 어딘가 미묘하게 불편한 마음이 공존했기에.


그 이후로 도리스 레싱의 작품을 천천히 한 작품씩 접하고 있는데 단편과 장편 모두 그런 서걱거림이 있다. 한 남자와 한 여자의 사랑이야기를 그저 무지개빛으로 환하고 밝게 그리는 것이 아니라 찰나의 순간에 빛으로 선택해 결국 파멸에 이르기까지 혹은 진절머리 나는 결혼생활의 적나라함. 사회적으로 남자와 여자가 겪는 역할의 차이를 도리스 레싱은 섬세한 붓으로 그려내는 것처럼 그 모든 순간을 담아낸다. 읽기에는 조금 불편해도 읽고 나면 마음이 착 가라앉으면서 많은 것을 생각하게 만드는 힘이 그녀의 작품 속에 있다.


<사랑하는 습관>은 도리스 레싱의 단편선으로 <19호실로 가다>(2018,문예출판사)의 후속작이다. 두 작품 모두 도리스 레싱의 초기 단편을 모았고, 1950년~60대의 유럽 사회의 면면을 날카롭게 그려내고 있다. 개인의 습관이나 오래 이어져 온 관습도 있지만 사회적인 영향으로 인해 개인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다채롭게 바라 볼 수 있다. 단편선의 매력이라면 장편에서 느껴보지 못했던 이미지나 이야기를 다채롭게 느낄 수 있다는 점인데 그런 점에서 도리스 레싱의 단편은 장편과 같은 무게감을 던져준다. 짧은 이야기라도 묵직한 무게의 파편이 마음 속에 쿵하고 박히는 것 같다.


초기 단편 소설의 묶음 중에서도 표제작인 '사랑하는 습관'과 '와인'을 가장 재밌게 읽었다. 사랑이라면 20~30대의 젊은 남녀의 전유물이라고 생각하지만 노년의 삶에서의 사랑은 또다른 색깔을 띄고 있다. 처음 결혼했던 아내와 이혼하고 함께 살았던 연인, 그러다 다시 만난 수 많은 여자들. 나이가 많이 들었음에도 누군가에게 정착하지 못하고 이 여자 저 여자의 살결과 따스한 체온을 그리다가 다시 만난 젊은 여자인 보비와의 관계와 사랑이야기는 어딘가 모르게 보이지 않는 벽이 느껴지기도 했다. 전자가 '사랑하는 습관'의 이야기라면 '와인'은 그야말로 술의 특성처럼 숙성하는 사랑이야기인데 짧지만 강한 인상을 남기는 단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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