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국의 품격 - 작은 섬나라 영국은 어떻게 세계를 지배했는가
박지향 지음 / 21세기북스 / 201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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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의 품격


한 때 영국은 '해가 지지 않는 나라'로 그 영광을 수식어에 붙일만큼 영국의 위세는 대단했다.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는 말이 있듯이, 해가 지지 않는 나라, 대영제국은 그야 말로 지구본을 돌리면 누가 많은 땅을 차지했을까 싶을 정도로 그들에게 많은 식민지가 있었다. 시대가 변하고, 계속해서 새로운 것만 찾다보니 순간순간 우리가 살았던 시간들을 잊게 된다. 우리가 가졌던 강점도, 지난 시간 인류가 이룩해왔던 빛나는 순간들도 잊고 오늘만 생각하며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요즘은 TV를 틀어도 현대극만 있고, 시대극은 손에 꼽을 정도여서 현재의 시간 속에서 세계 여러나라들을 여행하고, 음식만 맛보는 것 같은 착각이 든다. 거리가 멀었던 나라들이 이전 보다 더 가깝게 보이지만 실제 그 나라의 역사와 문화, 언어를 깊이 통찰하지 못하는 우리는 과연 여행자의 발걸음처럼 그저 화면 속에서 발도장만 콕콕 찍어 나가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든다.

정말 있었는가 싶을 정도로 잔혹한 세상이 그려지는 시간 속으로 들어가니 가슴이 두근두근, 언제 긴장을 놓을지 모르는 불안감이 매번 물밀듯이 밀려온다. 요즘 '미스터 션샤인'을 보면서 잔악했던 일본인들의 만행을 보면서 주먹을 불끈 쥐고 있는데, 서서히 밀려드는 시간 속의 암흑기가 찾아와 주인공들이 앞으로 어떤 시간을 살고 있을지 뻔히 알고 있기에 더 가슴을 조리며 보고 있게 된다. 누군가에게는 그저 강력한 힘을 가진 나라가 다른 나라에 들어와 권력을 손에 쥐고 그 영토를 집어 삼키고, 모든 것을 움켜쥐는 일을 우리는 겪어왔다. 제국의 권력을 손에 움켜 쥐었던 나라가 아닌 오랜시간 식민지 통치를 받은 나라였기에 강자의 마음 보다는 약자의 마음을 더 깊이 안다. 어쩌면 서로의 동질감일지도.

한동안 제국주의에 대한 관심은 경제적 측면에 집중되어 있었다. 무엇보다 제국이 얼마나 이득을 가져다주었는가에 대한 논의가 활발했는데, 이제까지의 연구 결과를 종합해보면 식민지들은 적어도 일정 기간 동안은 이득이 될 수 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경제적 이익은 감소했음을 알 수 있다. 영제국의 경우, 그 방대한 제국을 지키는 데 들어간 방위비는 제국이 가져다준 경제적 이익을 훨씬 앞질렀다. 일부 학자들이 주장하듯 19세기 말에 영국인들이 해외에 투자한 돈이 국내에 투자되었다면 영국 경제 쇠퇴를 막을 수 있었을 것이라는 가정도 맞지 않는다. 영국 경제는 자본이 부족해서 쇠퇴한 것이 아니라 기술 혁신과 구조 조정에 실패했기 때문에 쇠퇴했던 것이다. 대조적으로 18~19세기에 영국이 전 세계에 영국 제품을 판매 할 수 있었던 것은 그만큼 영국 제품의 질이 좋고 가격이 저렴했기 때문이다. 제국은 결코 '안전한 피난처'가 아니었다. - p.22~23


박지향 교수의 <제국의 품격>을 읽고 있으니 문득 내가 영국이라는 나라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잘 알고 있는 나라, 라고 생각했으나 떠올려보니 아는 것이라고는 손에 꼽을 정도로 작은 파편같은 지식이 대부분이다. 섬나라인 영국이 가장 거대하고 영향력있는 나라도 발돋움 할 수 있었던 원동력이 무엇인지를 영국사의 권위자인 박지향 교수가 세밀하게 그들의 품격을 다층적으로 보여주는 책이다. 영국은 일본과 같이 섬나라이기에 해상전력이 우위일 수 밖에 없다. 그러나 일본과 달리 식민지를 다루는 방식에서는 너무나 다른 제도와 기술을 심어 주었다. 그래서 그런지 우리는 일본의 식민지였을 시절 치를 떨 정도로 그때의 시간을 기억한다면, 식민지였던 곳은 그들의 잔재를 지우기 보다는 계속해서 이어나가는 사례를 많이 보았다.


20세기 초까지 지도의 4분의 1이 영국의 식민지 였으나 해가 지지 않는 나라였던 영국도 영광을 뒤로 하고 서서히 빛나는 해가 기울기 시작한다. 식민지의 숫자가 줄어들고, 세계적으로 우위를 점했던 힘도 약화가 된다. 영국의 힘이 약화되고 권력의 공은 신생국가인 미국이 받게 된다. 모체라고 할 수 있는 영국의 정신을 받은 미국은 그들의 밑바탕을 갖고 있으면서도 다르게 힘을 구사한다. 유럽 역사에 있어서 종교과 경제, 바다의 지배자였던 시대는 저물고 선진국들이 갖는 문제에 봉착하며 현재를 살고 있는 영국의 시간을 살고 있는 것까지 에필로그로 담아냈다.


아무리 제국의 힘이 강하고, 끝나지 않을 것 같아도 세계를 막론하고, 시공간을 뛰어넘어도 결국 해는 뜨고 진다. 그럼에도 그들이 가졌던 원동력의 힘, 제국을 만들어낸 사람들의 이야기는 우리가 앞으로 어떻게 길을 걸어 가야 하는지를 너무나 잘 보여주고 있는 청사진이다. 영·미가 아닌 영국이 걸어왔던 길을 제대로 느낄 수 있는 시간이었다. 로마를 비롯해 거대한 제국을 건설했던 이유를 제대로 느낄 수 있는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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