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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톨로지 (스페셜 에디션, 양장) - 창조는 편집이다
김정운 지음 / 21세기북스 / 2018년 8월
평점 :
자신만의 관점으로 새롭게 '편집하는 것!
문화심리학자인 김정운 교수의 <에디톨로지>가 출간되었을 무렵 읽은 사람마다 그의 책이 좋다는 말을 여러번 들었는데, 4년만에 100만부 돌파 기념으로 하드커버 스페셜 에디션이 나왔다. 전부터 찜했던 책이라 꼭 읽어보고 싶었는데 안 읽어봤으면 후회 할 뻔 했다. 왜 많은 사람들이 이 책을 읽고 그토록 재밌다고 입이 마르도록 칭찬했는지 알 것 같다. 똑같이 이야기 해도 쉽게 말하고, 쉽게 쓰는 저자가 있는가 하면, 쉬운 이야기 일지라도 어렵게 말하고, 어렵게 쓰는 사람이 있다. 김정운 교수는 전자의 사람으로, 쉽게 쓰는 동시에 마치 옆에서 말하는 것처럼 그의 푸념 소리가 들리기도 하고, 때론 자신이 이미 줄찰 외쳤음에도 귓등에도 들쳐지지 않았던 이야기를 유명한 누군가가 한 번 딱 이야기 했을 때 사람들이 우와~ 하며 몰려든 이야기를 하며 분개하는 그의 목소리가 생생하게 들리는 책이었다.
김영하 작가의 <보다>(2014,문학동네)를 읽었을 때처럼 그의 이야기는 내가 생각했던 것들을 다르게 볼 수 있도록 '프레임'이 다르게 느껴졌다. 왜 우리가 그렇게 밖에 볼 수 없었는지, 각 나라의 문화적인 정체성을 파악하며 왜 그들이 그렇게 나타내고, 행동을 하는지 본질을 꿰뚫어보게 한다. 누군가는 그런 통찰이 없이 그들이 이끄는 대로 사회의 현상을 따라가는 이가 있는가 하면 누구는 나라의 정체성을 긴밀하게 파악해 또다른 사실에 근거하여 그들의 이야기를 편집한다. 아무것도 아닌 이야기라도 스스로 편집하고, 이야기를 만들어간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김정운 교수는 편집에 대한 이야기를 다층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그렇게 생각해 보지 않아 더 생경했고, 더 센세이션하게 느껴졌다.
독어로 '행위가능성'이라는 개념이 있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단어다. 인간이 가장 즐거울 때는 '주체적'이고 '목표지향적'인 행위를 할 때다. 그리고 이 같은 행위의 가능성이 높아질수록 행복해진다. 정해진 일, 시키는 일만 반복하면 숨 막힌다. 돈을 아무리 많이 받아도 불행하다. '창조는 편집이다'라는 명제보다 창조적 행위의 가능성을 높여주는 것은 없다. - p.4
'이이토코도리', 즉 '좋은 것은 기꺼이 취한다'는 일본식 문화 편집 방식이야말로 일본의 정체성이라고 세이고는 주장한다. 그래서 그는 아예 '방법으로서의 일본'을 주장한다. 일본 문화에는 특별한 주제가 없다는 거다. 따라서 특별한 내용의 일본 정체성이 따로 있을 수 없다. 서로 다른 것들이 대립이나 갈등 없이 서로 공존할 수 있는 바로 그 편집 방법에 일본의 정체성이 있다는 거다. - p.12
편집을 하는 행위는 주체적이다, 라는 것을 그는 몸소 보여준다. 특별 에디션으로 김정운 교수의 서재가 특별 공개되어 있는데 일본의 학자들이 말하고 있는 편집력과 더불어 그가 생각하고 있는 창조의 방법론을 이야기하며 지식과 지식을 어떻게 모으는지를 그는 자세하게 알려준다. 똑같은 것을 바라보더라도 다르게 보는 것이 중요하고, 어떻게 지식을 모으고, 더하고 나누면서 이야기를 할 것인지를 너무나 잘 보여주는 책이라 읽는 내내 새롭게 안경을 다시 맞추는 기분이었다. 기존에 썼던 안경을 벗어 버리고, 다시 새로운 안경을 맞추는 것처럼 내가 평소 쓰던 물건의 원리나 관점이 다르게 느껴졌다. 더 넓게, 더 멀리, 다르게 보이는 것이 마냥 새로웠고, 그의 이야기처럼 이렇게 다층적으로 관찰하는 것이야 말로 우리에게 꼭 필요한 것이라는 깨달았던 시간이었다.
난 그래서 앞뒤 꽉 막힌 '한글 전용론자'들이 몹시 원망스럽다. 한글의 의미론적 배후에는 죄다 한자가 숨어 있다. 그것을 부정하면 안된다. 더욱이 21세기는 동양이 대세다. 실용적으로만 생각해도 한자는 필수다. 영어는 유치원 때부터 배우면서 왜 한자는 필수로 배우지 않는 것일까? 한반도의 문화사적 이해가 배제된 어설픈 민족주의는 정말 위험하다. 한국 사람이 동양고전을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은 정말 큰 비극이다. - p.6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