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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는 안는 것
오야마 준코 지음, 정경진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18년 6월
평점 :
절판
아름다우면서도 아릿한 감동의 이야기.
새하얀 혹은 분홍빛으로물든 벚꽃 나무아래 고양이들의 우아한 몸짓이 그려져 있는 표지에 눈길이 갔다. 요즘 뭐니뭐니 해도 고양이가 대세인가 보다. 이전에는 고양이를 키우는 사진집들이 많이 나왔다면 요즘은 그 고양이들이 미술책을 넘어 문학책에 자주 등장한다. 나쓰메 소세키의 <나는 고양이로소이다>(2013, 현암사)는 고양이가 등장하는 고전 중의 고전으로 꼽히는 작품이지만 올해 베르나르 베르베르 역시 고양이를 주제로 글을 썼다. 제목 또한 <고양이>(2018,열린책들)다. 이처럼 고양이는 어느 순간부터 우리의 삶에 깊이 들어왔다. 예전에는 주인에게 '충성'하며 인간에게 길들여지는 것이 자연스러운 강아지를 곁에 두었다면, 요즘은 고양이 특유의 우아한 몸짓과 조용한 특질을 가진 고양이의 매력에 푹 빠져 버렸다. 고양이를 멀리한 시절에는 고양이에 대한 많은 편견과 그들의 날큼한 눈빛에 움찔하여 다가가지도 못했다면, 요즘은 고양이가 있는 곳이면 서슴없이 그들에게 다가간다. 혹, 고양이가 놀랠까봐 조심스럽게 부르며 그들과 마주하곤 한다.
오야마 준코의 <고양이는 안는 것>은 도쿄 변두리에 있는 아오메 강의 '네코스테 다리'에서 늦은 밤 고양이의 집회가 열린다. '네코스테'는 고양이를 버린다는 뜻을 가지고 있는 가지고 있다. 각기 다른 색채를 가진 고양이들은 저마다의 사연이 있는데, 사오리와 함께 살던 요시오는 사오리를 만나러 가다가 강에 빠져 휩쓸려 네코스테 다리에 오게 되었다. 책 속에 등장하는 고양이는 러시안블루인 수고양이 요시오와 삼색털 암고양이 키이로, 가을에 태어난 아기고양이로 아직 이름이 없다. 네코스테 다리에서 신비한 존재인 그분을 비롯해 여러 고양이가 나오지만 요시오와 키이로의 이야기의 중심을 잡아준다.
사오리와 요시오가 어떻게 만났고, 러시안블루 수고양이가 왜 '요시오'라는 이름으로 살게 되었는지 그들의 사연들이 애달프게 그려져 있다. 부모님 곁에서 가게일을 돌봐주며 나름 가족의 일원으로서 함께 했지만 늦은 밤, 부모님과 오빠가 한 이야기를 듣고 사오리는 그날 밤 하루의 매상과 함과 금전등록기를 들고 가출했다. 도쿄로 올라온 그녀. 힘써서 일한 그녀의 공을 몰라주고 자신을 짐으로 생각한 그들의 이야기를 듣는 순간 그녀는 오랫동안 그말이 가슴에 맺혀 버렸다. 타지에서 외로움을 느끼던 사오리가 추위에 몸을 녹이려 들어간 공간에서 애완동물 가게를 발견하게 되고, 그곳에서 짧은 회색 털을 가진 홀쭉한 몸에 파란 눈동자를 가진 고양이를 만났다. 자신이 일한 가게에 어떤 사정으로 학교 선생님의 명함을 받게 되고, 그것이 선의로 호감으로 느껴졌던 사오리는 '요시오'라는 이름을 가진 남자에게 호감을 가졌으나 이내 그 남자 곁에 물건을 훔치던 소녀가 팔짱을 끼는 것을 본 사오리는 이내 마음을 내려 놓는다. 그렇게 터덜터덜 집으로 향하던 길에 가게에서 3만 엔에 사서 온 사오리는 그 고양이의 이름을 '요시오'라고 지었다.
아기 고양이는 자신이 고양이가 아니라 사오리와 같은 인간이라고 믿었다. 그러나 숙소에서 함께 살 수 없었던 요시오는 창고에서 사오리를 만날 수 밖에 없었는데 사오리와 더 오랜시간 함께 하고 싶어서 담을 넘다 강에 빠졌고, 그렇게 키이로를 비롯해 여러 고양이를 만나게 된다. 키이로와 그의 주인인 고흐와의 만남은 더 아릿하다. 상자에 담겨진 아기고양이 형제들은 하나 둘 사람들이 선택해 데려가고 자신은 못생겼다는 이유로 아무로 데려가지 않는 종이상자에 홀로 장대비를 맞고 있었다.
누군가의 손길이 아니라면 아기 고양이는 생명의 위협이 있을지로 모를 그 순간 화가인 고흐가 그 아기 고양이를 자신의 품에 안아 작업실로 데려간다. 처음에는 무뚝뚝하고 자신에게 관심도 없는 주인이 이상하게 느껴졌으나 이내 색각이상으로 그림을 그리는데 있어 고민이 많았던 고흐는 매번 그림을 그리다가 만다. 누나가 생활비를 대주고, 틈틈이 조카가 오고, 친구인듯 친구아닌 가타오카와 한 여자 모델이 종종 그의 작업실에 오곤 한다. 가까우면서도 먼 거리의 그들은 고흐의 작업실에 들르면서 그와 교류하지만 애정이 있는 동시에 그를 비난하고 그를 할퀴며 지나간다.
무채색이던 고흐와 키이로의 이야기는 서로 닮아있어 애정 가득한 손짓을 바라본 그의 조카 호노의 악의로 키이로와 헤어진다. 사람의 말과 행동 하나하나가 고양이의 생과 사를 좌우 할만큼 그들은 그렇게 이별한다. 주인이 자신을 좋아한다는 이유만으로 그를 다리에 내다버렸고, 키이로는 길고양이로서의 삶을 살아간다. 주인이 있는 고양이는 이름이 있는 동시에 안전하지만, 그 안전 또한 언제 바뀔지 모른다. 메여 있어서 더 좋기도 하고 나쁘기도한 그들의 몸짓을 보면서 길고양이와 집고양이 중 어느 쪽이 더 행복할까?라는 물음이 들었으나 키이로의 말처럼 그들의 인연은 운명이니 결국 정답을 없다. 길고양이의 자유와 집고양이의 이름과 안전 그 둘을 비교 할 수 없으니.
서로가 서로를 길들인다는 것은 서로를 사랑하는 동시에 서로가 없으면 살 수 없음을 의미한다. 외로운 사람과 외로운 동물과의 교감은 아름다우면서도 아릿하고, 감동적인 동시에 인간의 악의와 숨어있다. 가슴 따듯한 동화를 읽는 것 처럼 아련한 느낌과 슬픔이 동시에 느껴져 나도 모르게 여러번 책의 표지를 매만지곤 했다. 아마도 옆에 고양이가 있었더라면 포근하게 안아주었을 것이다. 따스함과 씁쓸함. 슬픔, 기쁨, 행복의 순간들이 옴니버스식으로 이어져 있어 읽는 내내 감동적이면서도 눈물이 났다. 일본의 애니메이션을 보는 듯한 교훈과 감동의 이야기처럼.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과 '메종 드 히미코'를 만든 이누도 잇신 감과 사와지리 에리카 주연의 영화 원작인 <고양이는 안는 것>은 나쓰메 소세키의 작품 만큼이나 오랫동안 기억하게 될 작품이다. 동화처럼 혹은 만화처럼 읽히지만 동시에 인간의 선의와 악의가 함께 그려져 있어 행복한 결말이 그려진 그림 사이로 그들의 이야기가 쌉싸름하게 혀끝에 맴돈다. 원작만큼이나 영화에서는 이 이야기가 어떻게 그려져 있는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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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에게 밥을 얻어 먹어 온 고양이들의 역사에서 수렵의 기술은 더 이상 대단한 가치가 아니다. 아름다우면 아름다울수록 인간에게 사랑받고 더 오래 살아남는다. 미(美)에 대한 집착하는 것은 생존 본능인 것이다. 여자 고양이는 남자 고양이만큼 외모에 연연하지 않는다. 아름다움보다 몸짓의 사랑스러움이 인간의 마음을 더 끈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 p.33
읽어버려서 마음 아픈 것은 손에서 놓아서는 안 되는 것이다. 소중한 것은, 보통은 하찮게 보인다는 것도 알았다. 하찮은 것을 소중히 여겨야 한다고 생각했다. - p.55
"됐어. 막으면 고양이가 못 돌아올 거 아냐."
"돌아오지 않을 거예요."
"돌아온다고 주인이 믿어야 돌아오지."
"······."
"믿지 않으면 영원히 만날 수 없어."
관리인의 눈을 거칠고, 그 안은 공허했다. 사오리는 관리인의 눈에서 늙음을 느끼고 문득 쓸쓸해졌다. - p.75
"키이로는 나와 같은 세계를 보고 있어. 나의 색각은 고양이의 색각과 같아. 사람에게는 드문 증상이지만 소수라고 해서 그걸 비정상이라고 치부하는 건 좀 그렇지 않나? 너희들하고 보이는 게 다른 건 확실하지만, 나는 내 나름의 방식으로 세상을 보고 있어. 빨강도 파랑도 초록도 내 방식으로 보고 있어. 많다고 정상이라 하고, 적다고 비정상이라 하는 건 다수의 오만이 아닐까?" - p.117
어떤 일이 있어도 대립하지 않고 공생함으로써 생명을 유지한다. 이것이 바로 백로가 계속 번식할 수 있는 비결이라고 철학자는 생각한다. 철학자로 불리게 되면서 사물을 철학적으로 생각하게 되었다. 이름의 영향은 대단하다. - p.168
"호기심은 자립을 위한 첫걸음이야. 자립을 지켜보는 것도 엄마의 일이잖아?" - p.227
"살면 살수록 나 자신이 미약하다는 걸 느낍니다. 알면 알수록 겸허해지지요. 머지않아 소년도 이 마음을 이해하게 될 겁니다." - p.276
인간과의 거리를 이해하고 있는 거죠. 그 거리감을 갖는 것, 즉 인간과 고양이 사이에는 경계선이 있다, 이 지점이 굉장히 중요해요. 포기하는 것의 반짝거림이랄까. 저는 어릴 때부터 '모두 함께하자' '우리는 하나다', 이런 생각을 강제적으로 주입하는 것에 거부감이 있었어요. 경계선이 있는 편이 자연스럽다고 생각했죠. - p.28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