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씨가 좋으면 찾아가겠어요
이도우 지음 / 시공사 / 2018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굿나잇 책방 일원이 되었습니다, 로저!


 좋아하는 작가님의 신작이 나왔다. (야호!) 빨리 읽고 싶은 마음과 천천히 아껴가며 읽고 싶은 마음이 공존하였으나 이내 전자의 마음이 이겨버렸다. 6년만의 기다림 끝에 나온 소설이었고, 읽는 내내 반가운 마음과 더불어 <사서함 110호의 우편물>과 <잠옷을 입으렴>과 결을 같이 하면서도 다른 인물의 등장에 눈을 반짝이며 강원도 혜천시 북현리에 있는 굿나잇 서점의 책방지기 은섭에게 빠져들었다. 있는 듯 없는 듯 하지만 그는 어렸을 때부터 조용히 호두하우스 펜션에 살았던 해원의 페이지 속에 보이지 않는 그림자로 살며시 등장한다. 예전에는 미처 눈치채지 못했으나 도시에서 아이들에게 그림을 가르치던 해원은 어떤 일을 계기로 지친 마음을 안고 호두하우스로 내려온다.


가장 가까운 거리에 있음에도 해원은 중고등학교를 함께 다녔던 소년 은섭을 제대로 알지 못했고, 은섭은 보이지 않는 그림자처럼 해원의 곁은 맴돌았다. 자그마한 공간의 굿나잇 책방은 몇몇 사람들이 다녀가지만, 그의 온화한 성품이 만들어낸 온기는 동네 사랑방으로서 자리를 잡는다. 일기를 쓰듯 굿나잇 책방 블로그 비공개글을 쓰는 은섭의 이야기는 그의 내밀한 속내를 드러낸다. 굿나잇 책방의 일원들만 알 수 있는 소근거리를 속삭임이 애틋함을 자아내는 동시에 그가 얼마나 해원을 오랫동안 봐 왔는가를 알 수 있다.


해원은 부모님의 사건으로 인해 이모 곁에서 지내야 했고, 그 사건이 자신의 유년시절의 꼬리표로 맴돌아 또래 아이들의 입에 오르내렸다. 가장 친했던 친구에게만 비밀을 털어놓았지만 해원의 믿음을 깨져 버렸고, 그렇게 사람과 벽을 쌓아가던 그녀였기에 곁에서 맴돌던 애달픈 그림자를 보지 못했다. 비록 자신의 몸에 생채기가 나더나도 오랫동안 한 곳에서 머물러 있던 소년이 아니 이제는 한 남자로 성장한 은섭으로 인해 해원은 지치고 지쳤던 마음을 그가 몸담고 있는 굿나잇 책방 매니저로 몸담게 된다.

 

어렸을 때 불을 환히 밝히며 사람들의 쉼터가 되어 주기도 하고, 때론 늦은밤 불을 비춰주는 등불 역할을 했던 동네 책방들은 하나 둘 사라져버렸다. 그렇게 책방들이 없어져 버린 후로는 대형서점 가서 직접 책을 사기도 했지만 이제는 손쉽게 온라인 서점에서 책을 산다. 요즘에서야 하나 둘 생겨나는 작은 책방들의 소식은 듣고 있지만, 한 번도 발걸음을 옮기지 않았는데 은섭과 해원이 하는 일들을 보니 독립책방을 둘러 대형서점에서는 볼 수 없는 책방지기만의 감각으로 고른 책들을 읽어보고 싶다. 유년시절의 동화들, 책 속에서 만들어진 책들을 직접 물성으로 만나보고 싶다.


책이 주는 위안, 굿나잇 책방에 오는 사람들의 온기가 두 사람을 감싸고, 함께 책을 읽고 글을 읽으면서 자신들의 마음을 표현한다. 누구하나 모난 구석이 없다고 말하고 싶었지만 명여이모가 떠올랐지만 각기 사연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마음을 아릿하게 만든다. 사서함에서 건이 할아버지 이필관옹의 팬이듯 <날씨가 좋으면 찾아가겠어요>에서는 명여이모의 친구 수정에게 마음이 간다. 나이가 들었다고 좋은 어른이 아니듯 우연히 벌어진 사건으로 인해 너와 나 우리가 함께 멍이 들었고, 꼭꼭 싸매놓은 보자기의 끈이 풀어지기 까지 나는 오랫동안 상처 받았음을 그들은 고백한다.


외로운 소년과 벽을 치는 소녀, 굿나잇 책방지기와 매니저의 사랑이야기는 서서히 리트머스 종이에 잉크가 번지듯 사랑이 점점 번져 나간다. 아릿하면서도 달큰한 은섭의 책방일지 때문인지 사람들에게 상처받고, 엄마의 이야기가 못내 아프며, 어딘가 모르게 결여되어 있는 명여이모 때문에 속이타는 해원 보다는 미처 마음을 드러내지 못하고 은은하게 그림자를 비춰주는 은섭이 좋았다. 그런 사랑스러운 그림자를 이제 해원의 마음 속 깊이 데리고 올 때 그녀는 은섭의 사랑스러움을 몇 번이고 나타내는데 그는 표정이나 행동 뿐 아니라 글 속에서도 다감하다. 연인에게 팔을 내어주고 희붐한 새벽까지도 저린 팔을 어쩌지 못해 고생하는 한 남자의 이야기라니.


덧. 책방지기님! 그 사실을 연인에게 부디 알려 주셔서 깃털 같은 베개에 고이 재우시길. 

무더운 여름날에도 좋아하는 작가님의 책은 여전히 반짝입니다. 로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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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쎄··· 잘 자면 좋으니까. 잘 일어나고 잘 먹고 잘 일하고. 쉬고, 그리고 잘 자면 그게 좋은 인생이니까."

"인생이 그게 다야?"

"그럼 뭐가 더 있나? 그 기본적인 것들도 안 돼서 다들 괴로워하는데." - p.54


가끔 생각한다. 열 권의 책을 한 번씩 읽는 것보다, 때로는 한 권의 책을 열번 읽는 편이 더 많은 걸 얻게 한다고. 내겐 이 책이 그랬다. 두더지가 떠나왔던 자기 집을 눈밭에서 만나는 장면은 사랑하지 않을 수 없으니까. 사실은 패트릭 벤슨의 삽화 버전을 가장 아낀다. 다시 만난 집 처마 밑에 등불 하나가 걸려 있는 그림. 그 삽화가 그립지 않았다면 나도 이 마을로 돌아오지 않았을지 모르지. 하지만 책들이 듣는 데서는 그런 말을 하지 않는다. 셰퍼드의 삽화도 좋다. 황희 정승이 검은 소 이야기를 귓속말로 했던 것처럼, 책에도 그림에도 귀가 있다. - p.63


진실과 거짓을 섞어서 말하는 사람들이 가장 어렵다. 그렇게 섞여 있는 진짜와 거짓은 알아차리기 쉽지 않으니까. 언젠가 장우 녀석이 자기는 진실과 거짓을 칠 대 삼 정도로 섞어서 말한다고 했다. 그러면 곤란할 일이 생겨도 그런대로 해결할 수 있다고. 과연. 친구에게서 인생의 좋은 지혜를 배웠다. 그날 밤 나도 진실과 거짓을 섰어 말했다. 그리고. 망했음. H는 그보다 더 무심할 수 없는 대답으로 미천한 나를 쓰러뜨렸다. 장우 녀석, 묻어버릴까!

···사실 유사 이래 모든 과거는 한 번도 완료된 적이 없다. - p.119


혼자일 때 더 잘 모이는 것들이 있고, 외로움에서 배우는 일은 생각보다 나쁘지 않다. 기대하는 바가 적을수록 생활은 평온히 흘러가니까. 진정으로 원하는 게 생기는 건 괴롭다. - p.191


"아마도···가출하시던 날이겠지요, 아가씨."

해원의 눈동자가 커졌다. 심장이 쿵 소리를 내는 것 같았다. 뭐지. 이 묘한 느낌은. 그녀는 그의 미소를 아지랑이처럼 바라보았다. 어쩌면 그는 내가 알고 있던 것보다 더 많이. 내 인생의 어떤 페이지에 등장했는지 몰라···. 마치 한밤에 푸는 두근거리는 수수께끼 같다고. 그녀는 생각했다. - p.208


알퐁스 도데의 《별》에서는 아가씨가 목동에게 머리를 기댔을 때, 밤하늘을 스쳐 가는 별 하나가 목동의 어깨에 내려와 앉은 것 같았다고 말했지만··· 나도 별이나 어여쁜 새 하나가 내 팔에 내려와 앉았다고 말하고 싶지만··· 그렇지는 않았네요. 팔이 저려 끊어지는 줄! 하지만 새벽 창이 밝아 올 때까지 나는 참고 또 참았습니다. 굿나잇클럽 여러분. 이것이 그녀와 한 이불을 덮고 잔 첫날 밤의 이야기. - p.256


잘 자요, 내 침대에서 잠든 사람.

인생은 그리 길지 않고 미리 애쓰지 않아도 어차피 우리는 떠나. 그러니 그때까지는 부디 행복하기를.


눈이 와. 너는 자는데.

나 혼자 깨어서 이 함박눈을, 밤눈을 보고 있네. -葉(p.2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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