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역사 - 언젠가 어디선가 당신과 마주친 사랑
남미영 지음 / 김영사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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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이 맛있으려면 사랑을 듬뿍 넣어야 해요.


 

 어렸을 때 읽었으면 좋았겠다 싶을 정도로 재밌는 샬럿 브론테의 <제인 에어>나 제인 오스틴의 <오만과 편견>, 마그리트 뒤라스의 <연인>은 내가 정말 좋아하는 작품이다. 학창시절에 이런 재미있는 작품을 빨리 접했더라면 내 삶이 많이 달라졌을까? 학생 때 한 드라마에 꽂혀 드라마가 완결이 난 후에도 여운이 젖어 팬들이 만들어낸 '팬픽'들을 오랫동안 사랑했었다. 아마도 내가 로맨스 소설을 좋아하게 된 시초가 이즈음이 아닌가 싶다. 드라마와 같은 이야기를 유지하면서도 각기 다른 변주를 통해 다채로운 사랑이야기를 느끼곤 했다. 그래서 더 그 캐릭터에 빠져 나오지 못했고, 그 인물을 연기한 배우를 더 좋아했다. 사랑이야기에 대한 오랜 짝사랑이 시작되었고, 지금까지도 사랑이야기가 들어간 책을 너무 좋아한다.


<사랑의 역사>는 총 6개의 챕터로 되어있고, 첫사랑, 사랑과 열정, 성장, 이별, 도덕, 결혼까지의 이야기를 맺는다. 책을 통해 책을 소개하는 책을 많이 접했지만 문학박사로서 독서교육에 관계된 일을 하는 저자의 섬세하고 재밌는 설명 덕분인지 읽었던 책도 다시금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정도로 사랑의 결을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주인공들의 풋풋한 사랑을 시작으로 점점 사랑의 온도가 높아지고, 높아지는 온도 속에서 몸과 마음이 한층 더 성숙해진다. 그렇게 무르익은 사랑만이 인간의 가슴 속 깊이 오랫동안 자리잡으면 좋으련만, 사랑은 계속해서 달콤한 맛만 주지 않는다. 어느 정도 무르익은 사랑은 서로가 노력하지 않는다면 한쪽에서 끈을 놓게 되고 결국 너와 나 사이의 거리는 우리가 아닌 타인으로 거리가 멀어져 버린다. 사랑의 모양은 다재다능하다. 새빨간 하트 모양의 사랑 뿐만 아니라 살짝 모양이 찌그러지기도 하고 때론 붉은 색을 넘어 검은 색을 띄기도 한다. 그것이 많은 사람에게는 사랑이 아닌 집착이기도 하고 불륜이라 부르며 사랑에 있어 도덕적인 사랑이 무엇인가를 생각하게 만들다. 사랑의 종착지는 결혼이지만, 동화처럼 '잘 먹고 잘 살았습니다'가 영원한 해피엔딩이 아님을 우리는 누구나 다 알고 있다. 사랑의 시작, 연애, 결혼의 방점은 끝이 아니라 다시 시작이다. 


설레임이 있고, 불타오르는 열정이 있고, 새하얀 깃털 신발을 신은 듯 발이 두둥실 가벼워, 늘 미소 띤 웃음과 함께 서로를 마주하다 이내 잠시 머물렀던 바람으로 스쳐지나가는 인연들을 그린 작품들이 다양하게 소개되어 있다. 사랑의 색깔을 구분짓고, 마지막 종착역에 도착하지만 그들이 우리가 만족스럽게 읽고 책을 덮었던 동화처럼 잘 살고 있는지를 작품을 통해 다채롭게 보여준다. 사랑이야기를 좋아하다보니 소개되어 있는 많은 책들 중에서 이미 읽어본 작품이 많았지만 '어, 이 책에 그런 문장이 있었나?' 할 정도로 주인공의 애절한 사랑고백이 묻어난 작품을 소개 할 때면 그 작품을 다시금 바라보게 된다.


난 당신을 보면 이상한 기분을 느껴요. 내 왼쪽 늑골 밑의 어딘가에 실이 한 오가기 달려 있어서 그게 당신 작은 몸의 같은 곳에 똑같이 달려 있는 실과 풀리지 않게끔 단단히 묶여 있는 것 같은 생각이 들거든······. 그래서 당신이 먼 곳으로 떠나버리면 그 실이 끊어질 것이고, 그렇게 되면 내 체내에 큰 출혈이 일어날 것 같소. -p.148


저자의 이야기를 읽고 다시 바라보게된 작품은 샬럿 브론테의 <제인 에어>였다. 2번 정도 책을 읽었음에도 로체스터가 제인에게 이렇게 애절하게 고백했을 줄이야. 너무 오래 전에 읽어서 기억을 못하는 것이라고 되네이지만 로체스터의 절절한 고백을 다시 접하고 싶어 책을 덮자마다 책을 빼들었다. 어느 시기에 마음 속 깊이 세찬 소나기가 붓듯 뜨거운 감정을 느낀 투르게네프의 <첫사랑> 역시 진한 감정을 전해주는 동시에 사랑의 색깔이 결코 각기 다른 모양이라는 것을 그의 작품을 통해서 보여준다. 소년의 열병은 갑작스럽게 누군가의 모습을 목도하면서 꺾였고, 그것이 훗날 지나가는 바람이었음을 느끼는 작품이라 읽고 나서도 오랫동안 여운이 짙었던 소설이었다. 소개된 많은 작품 가운데에서 그 다음 이야기가 궁금해 당장이라도 펼쳐보고 싶은 사랑이야기는 박완서 작가의 <그 남자네 집>과 트레이시 슈발리에의 <진주 귀고리 소녀>, 라우라 에스키벨의 <달콤 쌉싸름한 초콜릿>, 로버트 제임스 윌러의 <메디슨 카운티의 다리>와 존 파울스의 <프랑스 중위의 여자>였다.


낯선 제목의 책은 아니었지만 관심을 두지 않았던 작품이었는데 그들이 속한 배경 속에서 남자와 여자의 사랑이야기는 손에 확 당겨오는 이야기가 아니라 조금씩 애가 타는 이야기였고, 때론 주변의 많은 환경들이 그들의 관계를 떨어뜨려놓았고, 오랜 세월동안 인내하며 기다려야 했다. 그 시간 속에서 남자와 여자는 각기 다른 방식으로 사랑을 전달하고 내뱉는다. 서로 가까운 거리에서 마주하며 사랑을 속삭이는 것도 사랑이지만 한 번의 스침과 한 번의 인연의 끈이 평생에 놓을 수 없는 마음 속 정인이기도 하다는 것을 작품 속에서 다층적으로 보여주고 있어 읽는 내내 작품 속으로 깊이 빨려 들어갔다. 설레임과 환희와 연민과, 슬픔과, 안쓰러움이 공존하지만 여전히 로맨스 소설을 끊을 수 없다. 함께 희노애락을 느끼며 사랑하고 또 사랑하는 것만이 우리가 사랑의 본질에 대해 꿰뚫을 수 있는 방법이 아닌가 싶다. 서로의 사랑을 배우고, 타인의 삶을 느끼고, 사랑을 더 완전하게 이어나가는 것. 그것이 우리가 사랑을 이야기하는 문학을 통해 배워야 하는 것인지도.


삼팔선 근처의 비무장지대를 구경한 적이 있다. 달리던 철마가 멈추어 서고, 어느 젊은 병사가 썼던 철모가 나뒹굴고 있는 풀밭에 노란 민들레 꽃이 피어 있었다. 그 꽃은 어느 부호의 정원에 핀 꽃보다 찬란했다. 그 꽃이 나에게 말했다. " 전쟁은 당신들 인간만의 것이에요. 우리 꽃들하고는 아무 상관 없어요." - p.41~42


"음식이 맛있으려면 사랑을 듬뿍 넣어야 해요. 인생이 맛있으려면 사랑을 듬뿍 넣어야 해요." - p.87


"내 사랑의 8할이 슬픔이었지만 그 슬픔은 불행과 동의어는 아니었소. 마음의 뿌리가 깊어서 옮겨 심을 수 엇는 나무가 된 사랑은 슬픔인 동시에 또한 환희라오. 사랑 속에 들어 있는 보편적 감정인 슬픔은 당신 영혼의 능력에 따라 불행이 될 수도. 기쁨이 될수도 있다오." -p.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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