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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서 이불과 논어 병풍 - 이덕무 청언소품
정민 지음 / 열림원 / 2018년 5월
평점 :
정감어린 이덕무의 문장들
한 곳에만 시선을 두지말고 넓게 두루두루 시선을 펼쳐놓고, 보고 싶음에도 유독 정조를 비롯하여 정조를 보필했던 사람들의 이야기는 끊을 수가 없다. 다산 정약용 선생을 비롯하여 이덕무등 백답파들의 이야기도 정겹고 좋아해서 늘, 그들의 이야기가 나오면 시대를 막론하고 다시 그들의 글을 꺼내보게 된다. 다산 정약용이 깐깐하고, 섬세한 선생이라면 이덕무의 글은 정감이 있으며 때론 웃픈 상황임에도 그의 글을 읽다보면 마음이 푸근해진다. 정조 때 규장각 검서관을 지낸 인물이지만 그는 가난과 서얼이라는 신분 차이 때문에 많은 설움을 받았다. 책을 좋아해 '간서치'라는 별명도 있지만 그는 풍족하지 않는 살림 때문에 많은 제약이 따라 좋아하는 서책을 팔고와 쌀을 사며 속상한 이야기를 친우에게 위트있게 풀어낸다. 지금은 물질은 풍요롭지만 마음이 풍족하지 않는 지금의 우리와 달리 이덕무의 친우는 그런 이덕무의 허심탄회한 이야기에 자신도 서책을 팔아 바꾼 이야기를 하며 생채기난 마음을 달랜다.
가난하지만 풍족한 마음과 서얼이지만 책을 너무도 좋아해 어두운 불빛에서도 희미하게나마 의지하며 책을 읽고자 했던 이덕무의 짧고도 간결한 이야기가 <한서 이불과 논어 병풍>에 실려있다. 하고 싶은 욕망, 잘 할 수 있는 의지에도 불구하고 그는 신분의 제약에 막혀 걸음이 막힐 때 다행히 그들의 재주를 놓이산 정조가 규장각의 검서관으로 등용한다. 이덕무를 비롯해 백답파의 이야기를 좋아하지만 이덕무의 글은 접하면 접할수록 이덕무의 고운 심성과 조그만 것 하나라도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이덕무의 따스한 시선이 느껴져서 자꾸만 그의 이야기를 읽고 또 읽고 있다.
푸른 산허리를 감도는 흰 구림, 곱고도 아름다운 풍경이다. 그 앞에 마주앉아 한참 바라보자니 한입에 꿀꺽 삼켜 내 뱃속에 넣어두면 좋겠구나. 생각만 해도 군침이 돌고 시장기를 느낀다. 저 푸른 산과 흰 구름은 얼마나 맛있을까? -p.76
나 비록 가난하지만 내 가진 것을 천하의 가난하고 병들어 고통 받는 이를 위해 나눠주고 싶다. 나 비록 옳게 읽을 한 권의 책이 없으되 선인들의 피와 땀이 아로새겨진 그 책들을 죄다 읽고 싶다. 아! 이 무모한 욕심, 이덕무야! 이덕무야! 너는 참 바보처럼 살고 있구나. - p.63
위에서 이야기했던 것처럼 이덕무의 청언소품은 짧은 이야기지만 그의 깊은 단상들이 담겨져 있다. 희노애락의 감정들이 들어있는 동시에 학자로서, 글을 대하는 선비로서, 아비로서, 친우로서, 책을 대하는 마음가짐등 다양한 생각들이 담겨져 있다. 짧지만 울림있는 문장에 조용히 책을 덮고 생각하게 만든다. 그의 문장을 읽다보면 모든 걸 갖춘 풍요로움 보다는 가난해서 먹을 것이 없어 늘 허덕이지만 그 안의 결핍 속에서도 긍정적인 내면과 때묻지 않는 심성이 향기로운 난처럼 피어나게 만드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정민 교수의 책을 읽을 때마다 내가 좋아하는 이들의 이야기를 다채롭게 만나볼 수 있어서 언제나 기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