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방인 (양장) - 개정증보판
알베르 카뮈 지음, 이정서 옮김 / 새움 / 2018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섬세하게 카뮈의 이방인을 들여다 볼 수 있는 시간.


 톨스토이의 <안나 카레니나>,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설국>, 알베르 카뮈의 <이방인> 공통점은 문학 사상 첫문장이 유명하다는데 있다. 손에 꼽는 그들의 저작들. 첫문장이 주는 매력에 작가들의 묵직한 무게감에 책을 펼치게 되지만 이내 내가 생각한 것 이상으로 그들의 소설은 단순하지만 복잡한 속내로 이리저리 얽혀있다. 표면적으로 보여지는 무엇이 아니라 섬세하게 들여다보고, 읽고 또 읽어야만 보이는 작가가 숨겨놓은 주인공들의 내면이 섬세하게 그려져있다. 겁없이 덤볐다가 단번에 매료되는 책이 있는가 하면, 그들의 이름만큼이나 익히 들어왔던 작가들의 작품을 누군가의 입으로, 글로 접하다 보니 직접 접하지 않아도 그들의 이름이 하나의 '닉네임'처럼 익숙하게 자리잡았다.


 


알베르 카뮈의 <이방인>은 그의 이름만큼이나 그를 떠올릴 때마다 언급되는 책이다. 의도적으로 모으려고 모은 것은 아니지만 카뮈의 <이방인>을 다양한 출판사의 판본으로 갖고 있다. 출판사도, 번역가도 각기 달라 언젠가 무엇이 다르고 같은지 비교하며 보고 싶을 정도로 각기 출판사들은 작가의 멋스러운 얼굴을 내세우며 카뮈의 <이방인>을 소개한다. '오늘, 엄마가 죽었다.'를 첫 문장으로 뫼르소는 자신에게 가장 가까운 혈육인 엄마의 죽음을 인식하고, 양로원에서 지냈던 엄마의 장례식을 위해 회사에 휴가를 내고 그곳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보통 사람이라면 엄마의 죽음에 안타까움을 느끼며, 깊은 슬픔을 느끼며 한시라도 빨리 걸음을 옮기며 엄마가 있는 곳으로 달려가겠지만 뫼르소는 내 생각과 달리 냉소적으로 엄마의 죽음을 대한다.


작품 곳곳에는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이질적인 모습이 많이 엿보인다. 뜨겁게 작렬하는 태양, 아끼고 사랑하면서도 동시에 폭력을 자행하는 남자들의 거친모습들, 거짓, 낑낑대는 강아지, 아내가 있음에도 다른 여자를 품는 욕망, 허무, 외로움이 뫼르소를 둘러싼 환경 속에서 녹아난다. 이질적인 감정 속에서 그는 엄마의 장례식을 앞두고도 마리와 사랑을 나누는가 하면, 그녀와 함께 지내고도 마음은 주지 않는다. 뫼르소 뿐만 아니라 주변인물들은 그들에게 폭력이든 사랑이든 행동을 하면서도 끝내 마음을 품지 않는 냉소적인 인물들이다.


 


 

무엇보다 <이방인>은 뫼르소가 왜 바닷가에서 한 이란청년을 총으로 쐈는지 '태양'과 직접적인 관련이 있는 것처럼 처음부터 끝까지 '태양'에 대한 묘사가 많다. 아무렇지 않은 듯하지만 그의 내면 속 엄마의 모습, 어제와 오늘의 경계선에서 실존해 있고, 없음을 그는 이 작품을 통해 명확히 드러낸다. 새움판 <이방인>은 그런 뫼르소의 모습을 역자의 말과 역자 후기를 통해 세밀하게 카뮈의 <이방인>을 들여다본다. 다른 판본과 달리 번역에 대한 첨언과 불어, 영어, 우리말을 비교한 분석들이 수록되어 있다. 2014년에 출간된 <이방인>을 다시 개정하여 개정증보판 역자노트를 수록한 것이 특징인 책이다. 카뮈를 좋아하거나 <이방인>에 대한 관심이 많다면 다른 판본과 달리 번역에 대해 보다 더 세밀하게 수록해 놓은 역자노트가 도움이 많이 될 것이다.  


창문을 닫고 되돌아오는데 문득 거울에 비친 식탁 모서리가 눈에 들어왔다. 알코올램프와 빵조각이 흩어져 있는 식탁. 언제나처럼 또 한 번의 일요일이 지나갔고, 엄마는 이제 땅속에 묻혔으며, 나는 다시 직장으로 돌아갈 것이고, 결국, 달라진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p.44


한 사람이 사라졌음에도 세상에 변한 것이 없는 뫼르소의 일상들. 책을 읽으면서 자꾸만 이 글귀가 눈에 들어왔다. 누군가에게 마음을 주지 않고 나홀로 문고리를 잡고 마음을 내어주지 않은채 살아가는 모습이 익숙하면서 하염없이 슬프게 느껴졌다. 엄마의 죽음이 그렇게 쉬이 흘러가는 것 같이 보이지만 그는 한 청년을 죽였고, 감옥으로 들어가 자유를 잃어버린다. 평소와 다른 것 없이 일상적인 것 같아도 그는 모든 것을 잃어버렸다.


그의 첫문장이 주는 무게감이 무거워 오래전에 책을 샀음에도 읽어보지 않았던 카뮈의 대표작을 지금에서야 읽게 되었다. 사르르 가슴 속 깊이 뫼르소의 감정이 깊게 와닿지 않았지만 그가 생각하고, 느끼고, 행동하는 것들에 대해 수수께끼를 푸는 것처럼 깊이 살펴보고, 행동하는 이유 하나하나에 의미를 부여하며 읽었다. 뫼르소의 이름만큼이나 반복적으로, 암시적으로 나오는 태양빛이 무척이나 신경이 쓰였고, 앞으로 일어난 일들에 대한 불안감으로 그를 지켜 봤다. 무엇이 그를 행동하게 만들었나. 알듯말듯한 그의 생각들을 떠올리면서 <이방인>의 면면을 깊이 탐독하며 책을 읽었다. 한 번에 뚫릴 수 없는 수수께끼 같은 책이었다. 익숙하면서도 낯선 향기를 품어내면서.


"개가 피부병에 걸린 후 매일 밤낮으로 살라마노는 연고를 발라 주었다. 그러나 그에 따르면, 개의 실제 병은 늙어 가는 것이었고, 늙어 간다는 것은 치유가 불가능한 것이었다. - p.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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