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 더 레터 - 편지에 관한 거의 모든 것에 대하여
사이먼 가필드 지음, 김영선 옮김 / 아날로그(글담) / 2018년 5월
평점 :
절판


편지에 관한 모든 것!


 책장 정리를 하다가 청소도 할겸 책장 위에 소복히 내려 앉은 먼지를 털어내다 한쪽 구석에 한 상자를 발견했다. 운동화 상자에 밀봉하다 싶이 투명 테이프를 칭칭 감아 놓아 공기도 통하지 않게 한쪽 구석에다 올려 두었다. 학교 다닐 때 친구들과 틈틈이 편지를 쓰고, 답장을 기다리고, 각 기념일 때 카드를 써서 마음을 나눈 것들이라 시간이 지나 버리기 아까워 한데 모아 두었다가 이제서야 다시 열어보았다. 상자 겉에는 뽀얀 먼지가 내려 앉았지만 열어보니 모아 놓은 편지들은 예전 상태 그대로 담겨져 있다. 보통 시간이 지나면 없애기도 하고, 잊어버리기도 하지만 마음과 마음을 나눈 편지는 버리지 못해 지금까지도 가지고 있었다. 사실, 사이먼 가필드의 <투 더 레터>를 읽지 않았더라면 오랫동안 방치해 두었던 이 상자를 처분했을지도 모르겠다. 시간이 지나 이제는 다시금 읽을 필요가 없는 글이지만 편지를 나누었던 시간들 속에서는 나는 편지가 오기만은 학수고대하며 기다리곤 했다.


"우리는 편지를 간직해두고는 다시 읽지 않고, 분별력을 읽어 결국 없애버리고 만다. 그래서 우리 자신과 다른 사람들에게 돌이킬 수 없는, 가장 아름답고 가장 즉각적인 삶의 숨결이 사라진다."_요한 볼프강 괴테 (p.7) 


지금은 번지수가 정확해 편지를 잃어버리 일이 적지만 예전에는 곧잘 기다리던 편지가 전달되지 않아 못 받는 경우가 많았다. 여러번 번지수를 알려주고, 이름을 알려주었지만 허공으로 날라간 편지 때문에 여러번 속이 상하기도 했다. 누군가 모르는 이가 그 편지를 읽어본다면 내용은 단순하고, 개인의 은밀한 사연이 오가는 것이지만 그 시간 속의 편지의 주인공들은 편지를 쓰는 과정 하나하나가 다 정성 그 자체였다. 편지지를 고른 것부터 시작해 스탠드를 켜 놓고, 조용히 책상에 앉아 자신의 마음은 손편지를 통해 털어놓다 보면, 마치 일기장을 쓰는 것 같았다. 연서이기도 하고 누군가에게는 알림장이 되기도 하고, 때로는 소식을 전달하는 그 편지는 하나의 기록이자 역사였다.


사이먼 가필드의 <투 더 레터>는 편지의 역할과 의미를 생각보는 글을 시작으로 키케로, 세네카, 플리니우스를 통해 고대 로마 때 최초로 편지를 쓴 이들의 편지를 보며 그들의 기록을 되새겨 본다. 편지는 개인의 은밀한 글이어서 사랑의 증표로서 마음을 전하기도 한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와 프론토는 사제지간이지만 그 관계를 넘어선 격정을 편지로 토해낸다. 아벨라르와 엘로이즈의 편지도 연서의 증표로 이야기가 전해진다. 지금도 많은 글쓰기 책이 나오지만 중세 유럽 시대에도 편지 쓰기에 관한 안내서들이 등장한다. 편지 쓰기의 중요성이 강조 될 뿐 아니라 활자 인쇄를 통해 대중성을 가미한 점도 이 시대에 주목할 점이다.


편지는 시대의 파발과 같은 역할을 하는 동시에 그 시대의 우편제도를 알 수 있다. 15세기의 영국의 모습과 셰익스피어의 편지 활용법도 만날 수 있다. 시간이 지나 역사적 인물들이 써 놓은 편지들이 경매에 나와 그들이 나눈 은밀한 대화의 물꼬를 틀기도 한다. 총 15장으로 되어 있는 편지에 관한 모든 것 모두 각각의 시대와 인물을 만나볼 수 있지만 제인 오스틴, 버지니아 울프, 잭 케루악 같은 작가들의 편지를 보는 맛이 좋았다. 이 책은 누군가의 편지들을 엮은 책이 아니라 2000년 시대를 통틀어 각 시대마다 편지가 주는 의미를 해석한 책이기에 그들의 편지 전문을 다 볼 수는 없다. 다만, 전쟁터에서, 거리가 먼 타국에서의 편지는 편지를 쓰는 이도, 받는 이도 애달프기만 하다. 그래서 더 사랑이 묻어나오는지도 모르겠다.


시간이 지나 손수 글로 쓰는 편지가 시대의 흐름 속으로 물러가고 이메일로 손쉽게 안부를 묻기 시작했다. 빨간 우체통이 소리소문도 없이 사라지고, 그곳에 파인 자국이 났을 때 얼마나 아쉽던지 지금도 마음이 아릿하다. 수퍼에 가면 우표를 손 쉽게 살 수 있었던 시간을 뒤로하고, 이제는 우표 조차도 살 공간이 줄어들고, 편지를 넣을 우체통 마저도 사라진 시대. 그래서 더 아쉽던 시대를 지나 이제는 손쉽게 디지털 기기를 쓰며 무덤덤한 마음으로 전자우편을 사용하고 있다. 하나의 문학작품이 되고, 누군가에게는 잊을 수 없는 증표가 되었던 시간의 역사를, 개인의 역사와 더불어 시대의 역사를 알려주는 책이다. 기대와 달리 각각의 개인의 편지를 많이 읽어볼 수 없는 아쉬움은 들었지만 편지의 역사를 오롯하게 알 수 있는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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