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흘 그리고 한 인생
피에르 르메트르 지음, 임호경 옮김 / 열린책들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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빠져 나가면 나갈수록 죄어오는.


발랑틴의 손이 다시 보였고, 자석처럼 끌어당기던 그녀의 존재가 아직 느껴졌다. 그는 너무나도 강렬하고도 고통스러운 불안감에 사로잡힌 나머지 다시금 마음이 급해졌다. 빨리 붙잡히고 싶었다. 빨리 체포되고 싶었다. 빨리 모든 것을 털어놓고 싶었다. 빨리 다 털어 버리고 싶었다. 그리고 자고 싶었다. 그냥 계속 잠만 자고 싶었다. - p.131~132


 한 사람이 평생동안 자신의 고향을 떠나, 다시는 그곳 땅을 밟지 않기 위해 노력한 한 남자가 있었다. 엄마와 아버지 사이가 좋지 않아 엄마와 단 둘이 살았으며, 때때로 그의 아버지가 보내오는 선물은 나이때가 벗어난 것들 뿐이었다. 그런 환경이 소년의 유년기를 형성했고, 때때로 그는 그 나이때의 소년답게 어른으로 가기 위한 과도기였으나 누구도 그의 일렁이는 마음을 잔잔하게 다스려 줄 어른이 없었다. 어쩌면 그에게는 아버지의 부재가, 주변의 이웃들을 보며 그의 롤모델을 찾지 못했는지도 모르겠다.


그는 결핍된 마음을 윌리스라는 이름의 개에게 많은 위로를 받았고, 이웃의 개였지만 그를 잘 따랐다. 그러던 어느 날 윌리스가 차에 치이게 되고, 데스메트 씨는 차에 치여 숨을 헐떡이는 윌리스를 엽총으로 쏘아 마지막 숨마저 거둬버린다. 그 잔인함의 현장을 앙투안은 직접 목도했고, 그는 윌리스를 자루에 넣고 쓰레기 마냥 한쪽 구석에 처박아 놓은 데스메트씨의 행동에 분노하게 된다. 그의 마음 속에 쌓아둔 불씨들이 윌리스의 죽음으로 도화선이 되고, 그가 아지트로 지어 놓은 곳에 온 데스메트씨의 아들인 여섯살 꼬마 레미에게 화풀이를 하게 된다.


화를 이겨내지 못하고 어린 꼬마의 얼굴을 세게 치게 되고 강한 압력에 못이긴 아이는 털썩 주저 앉아 버렸다. 정신을 잃어버리고, 몸까지 축 놓아 버린 어린 몸피를 앙투안은 이내 아이의 시체를 숲에 숨겨버린다. 그 후 그는 불안한 마음을 안고 여섯 살 아이를 찾아 다니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주시하며 고향을 벗어나고자 하는 이야기가 바로 <사흘 그리고 한 인생>이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지만 그는 놀란 마음과 수치심, 질투, 욕망을 이겨내지 못하고 사건을 만들어 낸다. 그의 삶에 있어 난데없는 변화구에 그는 매번 좌절을 하게 되는데 피에르 르메트르는 그런 그의 성격을 소년에서부터 어른이 된 이후에도 변하지 않는 특질로 그려낸다.


레미의 죽음을 처음부터 알렸더라면 그의 삶이 달라졌을까. 소년의 불안함은 시간이 지나도 마음 속의 폭풍이 일어나고, 어른이 되어서도 그치지 않는다. 오히려 그의 어머니가 그곳에 살고 있고, 의학도가 된 그가 다시 그곳을 방문하게 되면서 다시 그의 삶의 파란이 일어난다. 상황이 그의 발목을 죄어 오는 것이 아니라 그가 가지지 못한 한 사람의 마음과 폭력이 더해지면서 일어난 일이기에 어쩌면 스스로 자처한 일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그의 삶을 돌아볼 때면 이디스 워튼의 <이선 프롬>의 주인공과 닮아 있다. 자신이 파 놓은 구덩이를 벗어나기 위해 노력하지만 결국 빠져 나오면 나올수록 다시 그의 발목을 죄어나간다. 과연 그가 스스로 늪을 빠져 나갈 것인지 아니면 늪에 빠질 것인지는 작품을 통해 알 수 있지만 피에르 르메트르가 만들어낸 한 소년의 이야기는 깊고도 진한 한편의 스릴러 같은 이야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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