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나의 페르시아어 수업
마리암 마지디 지음, 김도연.이선화 옮김 / 달콤한책 / 2018년 3월
평점 :
품절
정체성을 찾아서...
마리암 마지디의 <나의 페르시아어 수업>은 처음부터 책을 놓는 순간까지도 정체성을 찾아 문을 찾아 나선다. 마리암이 엄마의 뱃속에 있을 때부터 그녀는 무자비한 폭력을 행사하는 남자들로 하여금 숨가쁘게 도망치는 엄마의 불안을 읽어왔다. 아기를 가지고 있었음에도 그들의 손길이 닿지 않으려 높은 곳에서 몸을 날린 엄마 때문인지 마리암은 종종 분리불안 증세를 겪는다. 혼돈의 시대였던 이란을 떠나 아빠가 있는 프랑스에 가려는 마리암과 마리암의 엄마는 공항에서 그들을 저지하는 세력을 만나 여권을 빼앗긴다. 다시 출구가 막힐무렵 여섯 살의 마리암은 무엇을 알고 있는 듯 온 몸을 다해 울었고, 그녀의 깊은 울음이 여권을 빼앗은 남자의 마음을 흔들었다. 비행기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시각 남자는 빨리 떠나라며 두 사람에게 여권을 던지듯 건네준다. 불안과 두려움을 가슴에 안고 모녀는 서로를 의지해 인파를 헤치고 비행기에 오른다.
이란에서는 은행원으로 번듯한 직장을 갖고 일했으나 그는 남들이 탐내는 그 자리에 흥미가 없었다. 다른 동료들의 자리에 전단지를 은밀하게 넣어두는 일을 반복하던 중 상사에게 일을 들킨 후에 그는 해고된다. 모국인 이란을 떠나 프랑스로 망명하지만 공간만 다를 뿐 삶은 여전히 피폐하다. 불안정하고, 힘든 노동을 하는 마리암의 아빠는 그럼에도 모국어를 잃어버리지 않으려 노력한다. 그와 반대로 마리암은 자신의 유년시절이 있던 이란에서의 삶을 지우고 프랑스어를 익히고 배우면서 새로운 문화에 적응해 나간다.
그녀의 아빠는 이란에 대한 향수가 아직도 남아있다. 그런 마음에 마리암이 새로운 언어를 익히는 것을 용인하지만 페르시아어도 함께 배우고 쓰기를 원한다. 그러나 그녀는 이란에서의 불안과 두려움이 존재했던 그곳에 대한 기억이 싫다. 부정하고 또 부정하며 페르시아어를 배우는 것을 거부한다. 한줄기 희망처럼 마리암에게 가르쳐주고 싶은 언어를 딸은 거부했고, 아버지는 자신의 마음 속에 담아있던 언어를 딸아이에게 건네지 못한다.
너무나 악몽같은 시간을 살고 있지만 그곳에는 나의 핏줄이 있고, 나를 이루는 모든 것들이 존재한다. 다른 곳에는 평화가 있고 또다른 언어가 있지만 나의 정체성을 일깨워주지 않는다. 기피하려고 해도 여전히 나는 이란 사람이고, 그곳에는 사랑하는 이들이 살고 있다. 마리암은 다시 어두운 그늘 속으로 들어간다. 사랑하는 이들을 만나고, 아버지가 그토록 배우라고 한 그 언어를 아버지가 없어진 다음에야 누군가로부터 배우기 시작했다. 살던 곳에서 살 수 없는 암울한 시대, 망명생활, 잃어버린 언어, 정체성을 찾아나가는 문은 모순적이면서 생동하게 느껴졌고, 언어라는 것이 어떤 것인가를 새삼 느끼게 해 준 작품이었다. 빠르게 읽히지만 동시에 어둠이 존재하는 긴 터널같은 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