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의 말이 들리나요? - 숲으로 떠나는 작은 발견 여행 지식은 내 친구 18
페터 볼레벤 지음, 장혜경 옮김 / 논장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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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게 삶으로 83 서로 들려주는 말


《나무의 말이 들리나요?》

페터 볼레벤

장혜경 옮김

논장

2020.6.15.



《나무의 말이 들리나요?》는 숲이 집인 나무가 살아가는 이야기가 흐른다. 숲에 몸을 숨기며 먹고사는 짐승과 벌레 이야기가 나온다. 나무가 뿌리내린 바닥에서 버섯이 하는 일을 다루고, 나무에 깃드는 새 이야기를 두루 다룬다.


짐승과 새도 말을 하고 짝을 찾는다. 사람들은 새가 하는 말을 울음으로 여긴다. 나무는 나뭇잎으로 냄새를 퍼뜨리고, 나무냄새는 바람을 타고서 먼 이웃나무한테 스민다. 땅밑에서는 뿌리끼리 서로 이야기를 한다. 그러나 사람들은 나뭇잎이나 나무뿌리가 주고받는 말을 알아듣지 못 하기 일쑤이다.


도시에 집이 잔뜩 들어서고 찻길을 닦느라, 숲이 야금야금 잘리고 사라진다. 숲에 사는 나무를 도시 한쪽에 옮겨심고서 공원을 꾸민다. 찻길을 따라서 한 그루씩 드문드문 심은 나무는 외로워 보인다. 잿빛이 가득한 높다른 마을에는 나무를 조금 심어서, 사람도 쉬고 새도 깃든다.


겨울이 떠나고 봄이 찾아오는 3월에, 나라 곳곳에 꽃구경 이야기가 올라온다. 오늘 수목원에 가 보았다. 잎을 떨군 가지에 갓 새싹이 눈을 틔우는 나무가 몇 있다. 며칠 흐리고 비가 오락가락 왔는데, 이 찬바람에 움츠리는데, 손이 시린 추위인데, 매화는 꽃망울을 맺는다. 더 따뜻할 때 피워도 좋겠다고 여기지만, 매화는 해마다 이런 찬바람 부는 날을 골라서 꽃을 내놓는다.


땅바닥에서도 풀꽃이 오른다. 누가 먼저 깨어나는지 잘 모르겠다. 아마 서로 말을 주고받으면서 나란히 올라오리라. 풀꽃이 피고, 나무꽃이 핀다. 나무꽃이 피고, 풀꽃이 핀다.


털옷을 입은 할미꽃이 나온다. 노랗게 복수초가 나온다. 풀꽃이 돋는 봄이면, 맨흙을 밟을 수 없다. 자칫 내 발바닥에 새싹이 뭉개질까 걱정스럽다. 멧길을 거닐더라도 바닥에 어떤 풀꽃이 있는지 살핀다.


"나무는 누가 나뭇잎을 뜯어 먹는지 알고 껍질이나 가지에 물린 자리에 쓴맛을 내거나 독을 흘려 보낸다. 다친 나무는 이웃나무한테 "딱정벌레야, 조심해"라고 소리지는데 말을 냄새로 한다.(30쪽)" 같은 대목을 돌아본다. "같은 나무가 아니면 이야기를 주고받지 못한다.(31쪽)" 같은 대목도 되새긴다. 《나무의 말이 들리나요?》에서 짚기도 하지만, 참말로 나무도 다 알리라 본다.


곰곰이 생각해 본다. 나무도 풀꽃도 냄새가 말이지 싶다. 바람은 나무가 하는 말을 태워서 나누어 준다. 아니, 베푼다. 바람은 풀꽃말도 실어서 퍼뜨린다. 아니 베풀어 준다.


대구 시내를 걸을 적마다 길거리에 있는 나무를 보면, 나무가 아파서 끙끙 앓는 소리를 듣는다. 멧골집에서 태어나고 자라서 그런지, 숲나무를 보거나 길나무를 볼 적에, 어쩐지 마음으로 나무말이 스며든다.


나무를 가만히 보면, 줄기와 껍질과 가지로 말을 건넨다. 잎과 꽃으로도 말을 들려준다. 버즘나무도 벚나무도 다 다르게 말을 건넨다. 사람들이 나무에 건 걸개천으로 앓는 말을 들려주고, 거리에서 나무에 매단 쇳덩어리 탓에 아프다는 말을 뱉는다. 뿌리를 뻗을 틈이 없는 길바닥 때문에 고달프다는 말도 한다.


나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고작 손바닥을 펴서 나무줄기를 쓰다듬는다. 손바닥으로 줄기나 가지를 가만히 어루만지면서 속으로 말을 건넨다. 기운을 내라고, 해를 보라고, 속말을 들려준다.


숲에 가면, 나무가 지르는 소리를 곧잘 듣는다. 삑삑거리는 소리에 놀라서 두리번거리면, 나무끼리 붙어서 바람에 흔들려 부딪치는 소리 같지만, 천천히 쓰러지면서 내는 앓는 소리 같다. 어느 나무는 마치 엄마나무처럼 작은나무를 받친다. 어느 나무는 마치 엄마한테 안기듯 살살 감거나 기댄다.


《나무의 말이 들리나요?》는 "한 그루 나무가 너도밤나무에 에워싸여 있다면 참나무는 겁에 질러 벌벌 떤다.(40쪽)" 하고도 들려준다. 홀로 자라는 나무는 두렵거나 무서울 수 있다. 그러나 나도 나무도 굳이 둘레에 휘둘릴 까닭은 없다. 숱한 사람들 사이에서도, 힘들게 일을 마친 저녁에도, 그저 나를 바라보면 될 노릇이라고 본다.


나무는 온몸으로 말을 한다. 바람이 거들고 비가 돕는다. 우리가 잘 알아듣지 못하더라도 나무는 말을 한다. 나도 나무한테 말을 한다. 나무가 부디 기운을 차리기를 바라면서 손바닥으로 입술로 마음으로 말을 들려준다.



2024. 3. 4. 숲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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