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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도 일기 (리커버 에디션)
롤랑 바르트 지음, 김진영 옮김 / 걷는나무 / 2018년 11월
평점 :
일시품절
작게 삶으로 81 떠난 사람을 헤아리기
《애도일기》
롤랑 바르트
김진영 옮김
걷는나무
2012.12.10.
나는 어릴 적에는 걸핏하면 울었다. 그렇지만 아버지가 돌아가신 날에도, 사흘 뒤에 무덤에 들어갈 때도, 나는 엄마처럼 오빠처럼 소리내어 울지도 않았다. 마음은 슬프나 눈물이 맺히기만 했다. 아파서 누운 아버지를 보니 차라리 잘 가신다고 생각했다. 세 해 동안 아버지 생각이 날마다 났다. 《애도일기》를 여섯 달 앞서 장만해서 다시 펼친다. 글쓴이는 어머니 죽음을 슬퍼한다.
글쓴이는 슬퍼하는 날이 열여덟 달을 넘으면 안 된다고 말한다. 한 사람을 떠나보내고 잊는데는 빨라도 한 해가 넘고, 어떤 사이냐에 따라 슬픈 너비가 다르다. 가장 큰 슬픔이 아마도 어버이를 잃거나 짝을 잃은 슬픔이 아닐까. 흔들리는 빈자리는 어버이보다 아이를 낳고 보금자리를 이룬 사람이 아닐까. 나쁜 사이로 지냈다면 시원할 테지만 살갑게 지낸 사이라면 빈자리가 크게 느껴지리라.
짝꿍은 짝인 나보다 어버이가 먼저이다. 어제저녁에는 살짝 서운했다. 가게를 언제 넘길지도 몰라 힘이 빠지다가도 시골 친척 땅에서 ‘자연인’처럼 사는 꿈에 부풀었다. 창이 큰 농막을 지어 언덕에서 마을을 내려다보게끔 자리를 이쪽에 할까 저쪽에 할까 마음이 바쁘다. 가끔 어버이를 부르고 어쩌고 하는 말에 문득 언짢았다. 나를 버리고 집을 나가는 듯했다. 집을 나가서 어버이를 태워 와서 놀다가 태워 주는 생각뿐이었다. 나는 컨테이너로 농막을 짓느니, 움막처럼 문이 슬쩍 기울어진 백 년이 넘는, 손때가 묻어 창살 문을 떠올리고, 앞뜰 뒤뜰에 꽃을 심어 꽃길을 내고, 둘이 사귀면서 지내면 좋겠다고 생각에 들떴는데, 이미 생각으로 지어 놓아서 내 자리를 잃는 듯했다.
《애도일기》에는 어머니 죽음을 ‘슬픔, 아픔, 눈물, 근심, 기림, 고비’라는 얼거리로 풀어간다. 어떻게 슬픈지 어떻게 괴로운지 마음 밑바닥 그림이 하나도 없다. 어머니하고 살갑든 섭섭하든 함께한 이야기 없이 ‘슬퍼’한다. 글쓴이는 히치콕 영화를 보면서 여배우 모습에서 어머니를 떠올렸다는데. ‘살빛이며 두 손이며 낯빛이며 여성성’에서 어머니를 떠올린다는데, 나로서는 두루뭉술하구나 싶어서 와닿지 않는다.
책을 덮고서 생각한다. 나는 왜 겉도는 이야기로 여길까. 곰곰이 돌아본다. 글쓴이는 ‘그녀에 대해서는 아무 말도 할 수가 없다. 그녀가 어떤 사람이었다고 말하지 못하고 그녀의 깜짝 놀랄만한 초상을 그릴 수도 없다’고 말하는데, 어머니를 ‘그녀’라 하는 대목부터 엇나갔지 싶다. ‘부드러움 활기 고매함 선함’이라고 그리는데, 글쓴이가 어머니하고 떨어져 지냈기에, 어머니를 모르기에, 한 줄로라도 함께 한 이야기가 없는 듯하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세 해를 보내자 아버지가 생각났다. 내가 아버지와 함께한 나날이 어린 날이고, 어린 날에는 아버지가 일하는 모습을 보면서 자랐다. 아이 어른이 함께 일을 거드는 하루하루가 아버지와 함께 보낸 일이다.
그러나 《애도일기》는 겉도는 이야기 같다. 겉돌며 글로만 슬프다고 밝힐 적에는 와닿지 않는다. 어쩌면 나도 언젠가 누구를 잃은 슬픔을 노래할지도 모른다만, 나는 슬프다고 말하지 않고 하루하루 기쁨으로 노래하는 글을 쓰고 싶다. 나하고 짝꿍은 지난 열한 해를 마치 가겟일에 갇힌 사람처럼 지냈는데, 이제부터는 새롭게 살아가는 길을 써 보고 싶다. 떠나보내기에 새롭게 나설 수 있으니까.
2024.01.22. 숲하루